만왕의 왕의 성탄 기념일을 엿 바꿔 먹어 놓고서.

메리하지 않은 크리스마스가 뭐가 그리 놀라운가?


성탄절치고는 너무 조용하다는 ‘불만’

올해 성탄절은 별로 놀라울 일이 없었다. 징검다리 연휴로 전사 휴무였던 24일에 단지 내가 가장 회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로 뜬금없이 불려나가 웹사이트 긴급 패치를 진행한 일이 있었고, 모든 언론과 여론이 입을 모은 바 실제로 올해 성탄절은 유난히 조용했으며, 임시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는 교회 목사님은 성탄예배에 성찬식을 열어 버렸지만, 그것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내가 대수롭게 느꼈던 것은, 크리스천들, 특히 평소에는 퍽 온순한 주변 기독교인들의 섭섭해하는 태도, 배신감과 분노로 이어지려고까지 하는 그 상실감들이었다. 말이 그렇지 실은 죽는소리인데, 뭐냐 하면 이번 성탄은 싫을 정도로 캐롤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들 제사정을 모르지도 않는다. “저작권 땜에 요즘은 안 되잖아요.” “아니 그래도 이게 성탄인지 뭔지 모르겠어. 24일날도 TV가 다 조용하고 심지어 기독교 방송도 아무것도 안 해. 기독교가 이렇게 무시를 받아도 되는 거야?”

같은 성가대원들이 잡담 시간에 그런 얘기를 주고받는 걸 가만히 옆에서 들으면서는, 글쎄,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었었다. 뭐가 그렇게 놀랍고 불만이신가요? 원래 이랬어도 이상할 거 없는데.

세상은 더 이상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일단 캐롤송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저작권은 핑계다. 웃기는 소리지. 막말로 예컨대 지난 3월 18일이나 11월 4일에는 과연 온 세상의 방송이며 상점들이 저작권료 걱정이 없었어서 ‘멜론탑100’을 틀어놓고 장사했나? 아니거든. 상황은 이렇다. 사실은 안 그래도 별로 틀고 싶지 않던 캐롤이었는데, 마침 저작권료가 어쩌고 하는 구실이 생기니, 그냥 안 듣고 안 틀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너무 잘 개시된 눈치 게임처럼, 모두가 우연히 동시에.

별로 틀고 싶지 않았다고? 크리스마스 노래를? 12월에? 놀랍게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략 10년쯤 전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는 것이, 해가 바뀔수록 그 물이 빠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는데 우선 첫번째 이유인 세속적 요인부터 설명해 드리겠다. 상업적으로, 갈수록, 크리스마스는 특별할 것 없는 날이 되어 온 것이다.

세상은 크리스마스를 왜 기다렸던가? 코카콜라가 보낸 소비주의 복음의 사도 산타 클로스가 가져다주는 값없는 선물의 은혜 때문(만)이었다. 혹시나 이 사실에 충격을 받으신 분들이 있을까 봐 한 번 더 반복한다. 세상은 산타를 기다려는 보았을지언정 예수님을 기다려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연말연시를 맞아 모두가 모여 (왜인지 몰라도) 뭔가를 기념하는 전통에, 은근슬쩍 선물이 추가되고, 그걸 위한 “특별 할인”이 정착하면서, 크리스마스는 따뜻하게 세속화한 지 오래였다.

2008년의 월가 점령 이후 세상은 일 년에 한 번 자기 자식들의 산타가 되어 줄 여력이나 시간, 낭만 등을 잃고 말았다. 대신 ― 돌이켜 보면 이때쯤부터인데 ― 블랙 프라이데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전히 소비 주체 성인을 위한 날이었고, “크리스마스 정신” 따위를 벗어던진 순수한 초특가 할인 그 자체가 메시지였으며, 실제로도 그 메시지는 과감한 딜로 이루어진 복된 소식이었으므로, 오늘날 세속은 크리스마스를 ‘블프’로 깨끗이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이제 세속 사람들 입장에서 크리스마스는 굳이 그렇게 기념할 필요까지는 없는 또 하나의 연말 초특가 할인 시즌이다. 봤던 영화 또 보고 들었던 캐롤 또 들어 가면서 (어쩐지 저 일부 기독교인들이나 좋으라고 있는 것 같은) 기념일을 우리까지 덩달아서 즐길 일인가 싶은 것이다. 법정 휴무 하루가 있는 건 좋은데 솔직히 그 이상을 잘 모르겠는 거다. 마침 남들도 캐롤을 안 틀고 장식을 안 한다. 저작권 때문이라나 불황 때문이라나? 그래? 우리도 하지 말자 그까짓거.

교회는 더 이상 “성탄”을 전달하지 않는다

법정 휴무 하루 이상의 의미를 모른다고? 놀랍게도 그렇다. 세속의 입장에서, 성탄은 세상에서 가장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기념일 중 하나다. 여기서 두 번째 이유, 종교적 요인이 나온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과 그의 탄생의 의미를 모른다. 모리나가 제과 같은 일개 군것질 제조사도 기념일의 의미와 할일을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는데, 교회라는 대조직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인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어 테러리스트를 배출한 이슬람 국가에 하나님의 뜻을 폭격해 준 이후로, 각개 교회는 주변 이웃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 차마 떳떳이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그냥 그 임무를 포기했다. 대신 메가 처치라는 이름의 보호 구역을 둘러치고, 똑같은 노래를 시대에 뒤떨어질 때까지 몇 년이고 을궈먹어 그 음반을 저들끼리 완판하고, 세상의 정치/경제/사회 각 영역에 대한 선택적이며 집합적인 취사(取捨)를 서로에게 무제한으로 허용했다.

그 결과 그 구역은 어떤 도전도 주거나 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냥 가끔 스스로 순순히 투항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환영해 주고 나서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게 “구별”(ㅋㅋ)해 주면 될 뿐이거든. 그리고 그 도전 중에는, 세상에 지금까지 그렇게 쉬울 수 없던 과제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숱하게 희생하고 노력해서 세계 기념일로 기껏 제정해 놓은 그들의 구주 탄신일에, 그 구주에 대해서, 이웃들에게 친절히 정확하게 알리고, 함께 즐긴다는 과제 말이다.

그렇다. 언젠가부터 교회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집중적 상고나 교습, 기념이며 전승, 기타 일체의 의미 부여를 안 하기 시작했고 대신 그냥 선물과 노래와 공연을 주고받으며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 연휴를 보냈다. 대체 예수가 누군지 왜 하필 처녀가 어떻게 애를 낳았는지 구주께서 식민지 국민 호적 등록을 하러 가던 길의 모텔 차고지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는 스토리는 오늘날 무엇을 시사하는지 등을 알려줘도 모자랄 시간에, 교회는 그냥 산타가 예수님 복음을 얘기해 주는 김에 선물도 얹어주는 식의 연극을 유년부 아이들에게 시키고 말았다.

상황이 이쯤 되면, 과연 이게 “기쁘다 구주 오셨네”인가? “만 백성 맞으라” 할 이유가 있는가? 4/4박 노래로 10박에 걸쳐 “여-엉광을” “높이 계신 주께” 드리자고 할 구실이 서는가? 그 가사에 내용이 없고 전달하는 맥락도 없고 거기서 피어나는 감동도 없는데 왜 그걸 굳이 개그맨들이, 연예인들이 또 다시 불러서 공연하고, 그걸 취입해서 세간에 틀어야 하는가? 이래도 사람들이 캐롤 가사를 굳이 또 들어야 하는가? 이래도 성탄절에 캐롤송이 안 들리는 것에 교회가 불만할 자격이 있는가?

“메리 크리스마스”에 기대지 말고 이제는 성탄을

결론은 간단히 짓고 끝내고 싶으므로 일단 요점만 요약을 하자면… 그러니까, 2000년대에 정점을 찍은 세속의 소비주의와 교회의 내적 번영 추구는 크리스마스라는 공통의 관심사 아래 은밀하고도 느슨하게 영합해 있었고, 캐롤로 대표되는 그간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전통(?)들은 오로지 그 영합에 근거해 있었는데, 이제는 국제 정치 경제 여건으로 인해 둘의 밀월이 영속 불가능한 것임이 명백해졌으므로, 그 소산이었던 캐롤송이며 화려한 분위기 자체가 일소되었다는 게 현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교회에게 간곡히 요청하자면, 성탄을 회복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성탄을 기념했다. 우리가 다짜고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건네었을 때 세상이 순순히 “메리 크리스마스” 해주었던 것은, 단지 온 세상이 아직은 살 만했고 우리가 그렇게 밉지 않았을 따름이다. 이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특가 할인과 연말연시만 있으면 크리스마스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도 (더 뜨겁고 제도적으로) 기념할 수 있으며, 기독교에 대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냉랭한 탓이다.

교회에 따져 묻고 싶다. 혹시 지금 우리는 인큐베이터가 없어 말 구유에서 태어나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천하의 질서를 지켜볼 들녘의 새벽 불침번은 없어도 되는가? 만왕의 왕이 나셨을 때 그분을 경하할 예물과 예법은 알고 있는가? “참 신과 참 사람이 되시려고 동정녀의 몸에서 나시었”다는 신비를 가르치기는 하는가? 대체 지금 우리끼리 칸타타를 준비하고 우리끼리 감사 헌금을 돌리는 건 무슨 한가로운 수작인가? 그냥 죽을 때까지 뻔한 찬송가나 들리고 눈이나 예쁘게 내려 줬으면 좋겠는가?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