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든지 못하든지 하여간 좀 시원스럽게 하고 싶다.

잘 하려고 하지 말기


#1

요즘 회사에서는 일을 하고 있는데 영 못 하고 있다.

내가 봐도 어딘가 시원치 못하고 좀 갑갑하게 한다. 출근해서 앉아서 컴퓨터를 켜면 ― 오늘은 블루스크린이 뜨지 않게 해 주십사 기도 아닌 기도를 올린 다음 ― 매일 실행하는 프로그램들 ― VirtualBox, DBeaver, VS Code, 파이어폭스 ― 을 쭉 실행하고, 버추얼박스에 올려 놓은 CentOS 6.10 가상머신이 로컬 서버로 뜨면 localhost:8200 을 열어서 주 업무인 코딩을 막 하는데… 실은 여기까지만 능숙하다. 그 다음부터는 번번이 멈칫거리면서 일을 한다.

사무실 첫 자리
첫 자리가 이렇게 생겼었고 지금은 이 배치 거의 그대로 자리만 바꿨다.

무슨 외계어를 듣고 타이핑 치는 것도 아닌데 라인마다 오타가 나서 백스페이스를 누르느라 시간을 버리고 있고, 분명 아는 로직이고 아는 함수인데 번번이 StackOverflow 뒤져서 찾아야만 쓰고 있고, 지난 주에 내가 만든 파일인데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커밋 로그 뒤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도대체 어느 DB에 어느 자료가 있고 무슨 역할을 하는 어떤 메소드가 어느 파일에 짱박혀 있는지 모르겠어서 하나하나 다 파악해 가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하여간 “PHP”란 말 나오는 업무는 거의 죄다 나한테 돌아오고 있는데, 이 회사에서 개발자란 사람들은 웹 인프라를 대충 만져본 터라, 전체 업무 지형에서 나만 ‘어리버리’를 까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나는 지금까지의 습관대로 “평소 하던 거 잘 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며 업무 마감 스케줄을 호언장담해 놓고 있으니, 결국 그 마감은 하루, 이틀, 심지어는 1주 정도까지도 딜레이가 된다. 이런 식으로 뭘 못하고 있자니 사람이 점차로 성이 마른다. 정신을 차려 보면, 뭔가 정말 부질없어 보이는 동작으로, 지가 쓴 코드에 대고 욕을 한 다음 뭔가 좀 고쳐서 F5를 누르고는 또 뜨는 오류 앞에서 또 욕을 하고 있는 내가 거기에 있다.

#2

회사 일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는 게임을 켜는데 이 게임이란 것도 도대체 영 못한다.

최근에는 KOF 올스타(넷마블 배급 한국판)를 시작했고 ― 그 약간 전에는 EA 테트리스(블리츠 아닌 거)를 시작했다. 원래는 승패랄 게 없는 게임만 굳이 찾아다니던 사람인데 ― 왜냐면 정말 게임뇌라는 게 지독하게 없는 인간이므로 ― 어째서인지 승패가 있달지 요령이 필요하달지 하는 그런 게임들이 구미가 당겨서 별로 안 어려워 보이는 것 위주로 두어 개 잡아본 것이다. 그리고 도무지 못 한다. 오죽하면 테트리스를 가지고는 김어진쇼 한 편을 몽땅 갖다 써서 못마땅함을 성토했겠냐고.

김어진쇼 #65 세계못마땅기행 ~O-테트로미노~

여기서는 KOF 위주로만 풀자면… 나는 너무 오토만 돌리는 아재가 되기 싫어서 Semi Auto 모드로 하고 있고 지금 꾸준히 따라잡아서 대충 96년도 스토리 중후반에 와 있다. 그야말로 격투겜 첨 해 본 사람이라 세미오토에 넷마블식 RPG를 가지고도 “와 이거 사람 패는 맛이 있네?” 하면서 맛을 들이고 있는데, 사실 이미 이 게임들을 오락실에서 오리지널로 경험해 본 회사 개발팀 상급자들은 “이게 무슨 격겜이야”, “크 이 필살기가 쩔었었다고” 하면서 오토로 몇 판 해보다가 거의 접는 분위기다.

그래서 그런가 정말 내가 봐도 한심하게 뚜까 맞고 있다. 한심한 이유는, 어떡하면 안 맞을 수 있는지 대충 알기 때문이다. 이오리, 쿄 같은 인기 캐릭터로 스탯 만땅 찍어서 오토 돌리고 방향만 적 쪽으로 맞춰 주면 된다. 근데 그 뻔히 아는 걸 안 하거나 못 한다. 일단 편성을 여성팀 위주로 하고 있고, 그들의 스탯이나 특징이 나쁘지 않다는 것도 잘 알면서 항상 기껏 모아 놓은 기를 가지고 엉뚱한 방향에다 갈기고 있다. 그러고 나면 뭐 CPU가 통제하는 좁밥 몹들한테까지 뚜까 맞고 있는 거다. 그걸 보고 있으면 또 원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못 하는 거냐고.

#3

주중이야 뭐 그렇게 회사 가서 일 못하고 집에 와서 겜 못하고 산다지만 주말에는 김어진쇼를 찍고 제작을 하는데 이마저도 대체 뭐냐 싶게 못하고 있다.

김어진쇼는 내가 기획하고 내가 출연하고 내가 진행하고 내가 편집하고 내가 발행하고 내가 행정을 본다. 할 수는 있는데, 이걸 매주 매번 하고 있자니 점점 그 모든 게 나사가 풀리는 기분이다. 다음 에피소드 기획이라는 것이 맨 처음 단계에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지인들에게 전화 돌리는 것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대충 화~목쯤에 와서 근일의 스케줄과 아이디어 구상을 대충 비벼 볶는 과정이 되었고, 출연과 편집은 워낙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어떡하면 더 짧고 간편하게 할 수 있을까만 궁리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전반적으로 내용이 너무 빈궁하게 뽑혀 나온다.

김어진쇼 제작 폴더
대충 4~5회분 또는 보조 드라이브 용량이 허용하는 데까지 최근 김어진쇼 편집 자료들을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바이두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잊고 있다.

사실 결과물이 빈곤하다는 것, 콘텐츠 제작이라는 퍼포먼스가 영 못하다는 것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조회수와 댓글 수와 재생 시간만 보아도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열을 받으려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그걸 ‘취미인데 아무렴 어떠냐’는 식으로 애써 외면하며 살았(고 살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외적인 것 외에도 내부적(?)인 판단 근거가 발견이 되었다. 지금 이게 아무 야마가 없는 것이다. 무슨 반전도 없고 노림수도 없고 콘텐츠라면 당연히 가지고 가야 할 펀치라인이나 그걸 위한 줄거리가 없는 거다. 그냥 꾸역꾸역 푸티지를 잘라 붙이고 말을 올려서 렌더링 구운 것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솔직히 이걸 직면한 지난번인가 지지난 번쯤의 제작 세션(?)에서는 좀 화가 나더라고. 사실 김어진쇼는 그래도 내가 영상 독특하게 만드는 센스는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갈고닦기 위해 시작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뭐야? 뭘 갈고닦어? 존나 먼지만 두껍게 덮이고 싸공 한 번 수입 안 했구만. 그리고 사실은 내일 존나게 편집할 푸티지 역시 정말 일단 찍어오기만 했지 아무 야마가 없는 것들이라 결국 브이로그가 될 예정이다. 브이로그에 야마가 있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로서는, 최소한 취미 생활이랍시고 하고 있는 이거라도 좀 잘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는 게 너무 눈에 보이니까. 그러니까 울컥하고, 그래서 애꿎은 ‘업종’에다가 분노의 타자를 갈기고 있는 것이다.

잘하지 못한다는 그게 정말 문제일까

하여간 그게 최근 얼마 전까지의 상황이었고, 그러고 있다가 며칠 전에는 문득 조금 궤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잘하게 되면 좀 나아질까?

놀랍게도, 그게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어떤 목표를 위해 뭔가 행동을 취함에 있어서, 나란 사람이 겪는 주된 장애 내지 방해 요소는 퍼포먼스보다는 나의 포즈 내지 표정인 경우가 많았다. 요컨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 차장님의 평가를 빌자면 이런 식이다. 나는 시킨 일은 대충 곧잘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뭘 너무 조급하게 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평가된 그 ‘조급하게 하려’는 것은, 뭐 실은 이를테면 아까까지 보고 있던 소스나 DB 테이블을 다시 찾아서 바로 보여드리려고 허둥거리던 꼴을 가리키는 것일 텐데.

말하자면, 잘 하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잘하냐 못하냐 여부와 전혀 관계 없이, 잘 하려고 빨빨거리고 버둥거리고 악쓰는 것, 나는 실은 그걸 하고 있는 거다. 여기서는 아주 우스운 질문이 되물어진다. 뭘 잘 하려고 해? 그냥 잘하고 말면 되잖아.

양재 호랑이펍 커피 컵

잘하고 말면 될 일 아니냐는 말은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내가 세미오토로 컨트롤하고 있는 킹오파 여성 캐릭터들은, 좀 미안하다 싶을 정도로 빨빨거리고 있다. 쉼 없이 스킬을 쓰고 도망을 다니고 가드를 올리고 필살기를 날리는데도 계속 뚜드려 맞으면서 “피격 회수 20회 이하로 클리어” 미션에 실패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달밤에 오로치의 피에 눈뜬 이오리’ 같은 (누가 봐도 사기캐인) 파이터를 “서포터”로 불러다가 세워 놓고 같이 스테이지를 돌면, 이 서포터는 필요한 때 휙 날아와서는 보스에게 초필살기를 툭 날려놓고 다시 휙 날아 사라지는데 보통은 거기서 판이 끝이 난다.

걘 그냥 싸움을 잘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하는 싸움 잘 하고 게임을 끝낸다. 그러면 내 캐릭터는 보스에게 주먹 한 번 못 대어 보고 경기 중단을 하는데, 그건 마치 이 게임 캐릭터들마저 나를 한심해하는 것 같은 순간이다. 아니 뭘 그렇게 열심히 이기려고 해? 그냥 이기면 되지. 그러게 말이다. 사실 해결로 가는 과정은 으레 거기에서 막힌다. 아니 누군 못하고 싶어서 못하나, 잘하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도망을 친다. 자신을 원망하거나, 뭔가 덧없는 스택을 계속 찍어 보거나, 멋진 핑계를 하나 만들어 그걸로 모든 의문을 돌려막거나.

‘잘하기’보다는, ‘시원스럽게’ 하기

요즘은 그 도망(?)의 방법에 하나를 더 추가해 볼 여지를 생각하고 있다. 왜 나는 잘하는 방법을 아는데 못 하는가, 에 대하여, “잘해도 좋고 못해도 좋으니 뭘 하든 좀 시원시원하게 하기”라는 방안은 검토해 볼 가치가 있을까? 그런 정말 궤변적인 것을 요즘은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원래의 나라면 기껏 써놓은 코드가 어디서 꼬였는지 알 수가 없어 어느 시점부터인가 작동을 안 할 경우에 ― 그야말로 엉켜 버린 상황에 ― 는 아마도 어디서 뭐가 꼬였는지를 굳이 찾아내서 그걸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부터 생각하기 시작하느라 정작 필요한 문제 ― 어느 시점부터 작동을 안 한다는 문제 ― 의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게 될 것이다. 이게 잘 하려고 하는 행동이다.

그러면 시원스럽게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조금 생각하고 조금 시도해본 뒤, 못 하겠으면 바로 팀장님을 찾고, 할 수 있겠으면 정말 바로 해 버리고, 할 수는 있겠는데 지금 것 살리는 방식으로는 안 될 것 같을 경우엔 바로 아까까지 본 기존 코드를 싹 날리는 것이다. (주석 처리니 별도 파일이니 하는 것 없이 말이다.) 뭐가 됐든 바로 바로 약간 좀더 기계적으로 주어진 플로우차트에 의한 다음 단계로 진행한다. 이게 시원스럽게 뭔가를 하는 것이다.

KOF 올스타 킹 승리 모션
ⓒ SNK, Netmarble Neo

사실 시원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뭔가 잘 하는 것을 할 때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다. 문제는 뭔가 잘 못하겠는 것을 할 때다. 보통 사람은 못하는 걸 못할 때도 시원스러워지기가 힘들다. 해 봤는데 안 된다 싶으면 재시도를 하지, ‘어 안 되네’ 하고 쫑내지는 않는단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시도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걸 해 보다가 ‘어 안 되네’ 하고 관두는 시점이 너무 늦는 것이다. 미련을 갖고 계속 이렇게 해 보고 저렇게 해 보고, 사실은 똑같은 방식을 반복하며 실패를 반복하는 건데 이상하다 왜 실패하지, 그러고 있는 거다.

못하는 걸 못할 때 시원스럽게 못하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된다. “아 네 나 이거 못해요 다른 수를 찾아보죠” 하고 호쾌하게 그만두고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근데 지금 당장은 그게 어려우니, 일단은 그 앞 단계, 재시도하는 짓, 그러니까 잘 하려고 하는 짓을 하지 말아 볼까 하는 것이 현재 상태이고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다. 솔직히 나 자신이 되도 않는 짓거리를 어떻게 혼자 알아서 해보겠답시고 아둥바둥 하고 있는 꼴은 나 자신이 보고 있기도 힘들다. 못 봐주겠으면, 그런 짓 안 하면 되잖아.

근데 또 구체적인 행동 요령은 사실 잘 모르겠다. 회사 일이고 우선은 내 업무인데 나보고 뭐 어떻게 하라면 억지로는 하겠지만 솔직히 말했을 때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하는 게 더 나은 일이면… 난 그걸 다른 팀원 ― 다 나보다 상급자다 ― 에게 요청할 수 있을까? 그것조차도 시원스럽게 못 해서 우유부단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김어진쇼 다음 에피소드는 결국 또 어떻게 하게 될까? 나는 나 자신을 잘 푸시해서 필요한 컷을 따서 계획대로 딱딱 제작을 할 수 있을까? 전에 했던 ‘발컨’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는 쓰는데, 도대체 언제쯤이면 같은 실수를 안 하고 지나갈까? 일단 싹 다 만렙부터 찍어주고 볼까?

아무튼 또 뭔가 해나가야 하기에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한동안은 주중에 회사 가서 못하는 일을 또 막 할 거고, 집에 와서는 못하는 겜을 또 막 할 거고, 주말을 맞아서는 못하는 쇼 제작을 또 막 할 거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은,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정말 돈이라도 받은 것처럼 착실하게 서투른 행동을 해 주는 나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이걸 알고 있으면서도, 또 뭔가를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러 가야 한다는 건 참 고역이다. 내가 너무 힘들게 사나?

어차피 할 일들이면 스트레스를 좀 덜 받고 싶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이 ‘내가 너무 무식이고 겜알못이고 요령 없음’이라면 지식과 요령을 키우든지 거기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방법을 찾든지 해야 해결이 되는데… 알고는 있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 또 노력을 할 생각을 하면 또 피곤하고 그러기 싫어서 그냥 하던 습관대로 대충 하고 그러니 또 뭘 성에 안 차게 못하고 그래서 스트레스 받고 그럴까봐 겁이 난다. 이 얘기를 지금 몇 번째 하는 거람? 이젠 이런 갑갑한 소리 갑갑한 짓거리 좀 그만두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