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나쁘고 못돼먹은 게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모르겠다고? 그건 틀린 질문이다.

나쁜 것이 돈이 된다


남 밑에서 일하고 그 품삯을 받아 본 시절보다는 아무래도 내가 직접 뭔가를 만들어서 팔고 그 대금을 받아 본 삶이 좀더 길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고 항상 나 혼자만의 결론이 나 있던 생각이 하나 있다. 좀 이상하고 분명히 unpopular한 의견인데, 그냥 간단히 적고 지나가려고 한다.

무엇이 돈이 되는가?
극히 대부분의 경우, “나쁜” 것들이 돈이 된다.

1. 뭔가 잘못된, 부족한, 완벽하지 않은

바로그찌라시를 만들고 트탐라를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외주 업무 홍보 콘텐츠를 만들면서 항상 해 온 생각이다. “뭔가를 정말 기깔나게 잘 만들면, 품질 수준이 완벽하면 고객이 거기에 만족하고 돈을 더 흔쾌히 빨리 많이 내 줄까?” 이 생각 자체는 딱히 이상한 점이 없다. 정작 이 생각이 현실에서 실현된 적이 없었는데도 이런 생각을 별 근거도 없이 견지했던 나의 기대야말로 이상한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어떤 물건의 질이 좋기 때문에 그 물건을 사지 않는다. 퀄리티는 결정적이지 않고 부차적인 요소다. 어떤 물건이 어떤 욕구를 자기가 예상한 딱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실현해 준다는 약속이 있느냐, 또는 그 약속이 실현될 것을 이미 아느냐, 오직 그것만이 돈을 내고 뭔가를 살 이유가 된다. 영화관에 가거나 웹툰 최신편을 결제해 읽을 때를 생각해 보라. 비주얼이 완벽하고 스토리가 완벽하고 연출 완급 센스까지 다 완벽해야만 작품에 돈을 내던가? 그게 아니란 말이지.

오히려 사람들은, 이 부분은 좀 이상한 의견인데, 약간 제약이 걸려 있는 뭔가를 더 신뢰하면서 구입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일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좋다”[too good to be true]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라. 사람들은 뭔가가 마냥 좋기만 하면 그걸 사실로 간주하기 어려워하며 그걸 자기의 현실에 도입하기를 꺼려한다. 소비란 결국 타협인데, 적당한 타협이란 필연적으로 적당한 수준, 적당한 편리, 적당한 정성을 암시한다. 꿈에나 그리던 옷이며 중고 매물,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과연 꿈 속에서 했던 것처럼 즉시 달려들었던가? 그렇지 않거든.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굉장히 많은 중소기업들이 오늘도 갖은 마케팅 채널을 동원해 “세계 최초(〇위)”, “99.998%”, “오직 당신만을 위해 전문가가 하나하나” 운운하는 퀄리티 중심의 어필을 한다. 뭐 상품 자체를 그렇게 훌륭하게 잘 만드는 건 대견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하면 당연히 자동적으로 고객의 마음이 돌아서고 그들이 그간 의존했던 대체재가 순식간에 포기될 거라고 믿어서는 곤란하다.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2. 비도덕적인, 지독한, 사악한

뭔가를 만들어 파는 영세 사업자들이 또한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도덕적 수준의 문제다. “양심적으로 윤리 경영을 하면 고객들한테 좋은 이미지로 보일 테니까 매출에도 도움이 되겠지?” 또는, 하다못해, “다른 경쟁자들은 양심이고 도덕이고 다 팔아치워 돈을 벌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워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그 양심을 견지해 나가는 사업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여정과 전혀 무관하게, 소비자들은 오히려 그 의도나 내용이 악하고 비도덕적인 것에 이끌리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 이 믿기 어려운 현상의 원리는 그러나 사실 간단 명료하다. 악이란 원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나쁜 것, 잘못된 행위, 사악한 무엇인가는 정말이지 사람 눈에 아주 잘 보인다. 그리고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데 성공하고 나면, 매출이 발생하는 횟수란 어떤 식으로든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온갖 ‘병크’가 터지는데도 꿋꿋이 뭔가를 해나가는 회사나 공인 따위의 소문을 여러분은 많이 보고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럼에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바로 그것, “병크”의 이름 아래 전달되고 갱신되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말소되지 않는 정보들 덕분인 것이다. 흔히 ‘미담 뉴스’가 부족하다는 불평들을 하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훈훈한 소식과 “정치인 연예인 대형 교회 목사가 한 모텔에서?!” 같은 가십을 내어주면 대체로 후자부터 열어보는 법이다. 별 문제 없고 별 논란 없는 것들은 정상적이고 흔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신속하게 관심을 잃는다.

관심에 대해서 조금만 더 말하자면, 이것도 나 혼자서만 주장하는 썰인데, 나는 사람들이 악에 관심이 있다고 믿는다. 아니, 좀 생각해 보니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악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기를 미워하는 자유 의지가 자기를 선택하게 만들려면 부지런히 똑똑하게 매력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이런 의미에서 악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것은 사실 필연이다. 그리고 “아 배고프네 어디 가서 밥사먹어야지” 정도만 생각하고 사는 필부들은 그냥 부지런해 보이고 매력 있는 걸 대충 고른 다음 내라는 돈 내고 숟가락을 들지, 번번이 이 정도 윤리학적 고찰을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악이 태연하게 구입될 수 있는 이유다.

당신의 상품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결말을 어떻게 지을까 조금 고민하다가 이렇게 끝내 보기로 한다. 혹시 당신은 뭔가 아주 기깔나고 훌륭하고 착한 상품을 파는 사람인데 그게 왜 생각만큼 안 팔리는지 모르겠는가? 간단하다. 당신의 그 상품이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그 상품이 구체적으로 뭐냐 하는 것은 볼 것도 없는 문제이다. 당신이, 그리고 당신의 상품이 지나치게 좋고 선하고 착해 빠져서, 만만해 보이는 것이다. 이거 뭐 딱히 돈 안 줘도 되겠네 싶을 정도로.

한번 악랄해져 보라. 욕심을 내고 오만해져 보라. 돈이란 바로 그 악랄함, 오만함, 조악함이, 악(惡)이 벌어다주는 것이니까! 물론 이건 전부 통째로 하나의 궤변이고 현실 상황에 대한 역설적인 자조에 가깝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분명 마주치고 있는 당신의 부조리에 이 부조리를 덧대는 일은 여전히 시도해 볼 가치가 있겠다고 진지하게 믿는 바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제안한다. 당신이 속한 업계 최고 양아치들을 한층 더 잔인하게 이겨먹어 보라. 당신의 상품을 이용해 당신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의 순수한 탐욕을 백주대낮에 늘어놔 보라. 그러고 나면 수치심에 빠진 당신은 망할 준비를 하기 시작하겠지. 그런데 만약 웬일인지 그런데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매출이 오르기 시작하거든, 그땐 놀라거나 좋아하지 말고 대신 잠깐 기도해 달라. 사랑을 교환하기를 쑥스러워하다 못해 기어코 돈을 발명해 버린, 이 가엾은 인류의 최후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