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수록 괘씸하고 안타깝고 애절하고 그렇다

[마요이가] 유감


길게 쓸 생각은 없고… 그럴 일이 있어서 마요이가 OST를 좀 듣다가 문득 현타가 와서 조금 메모를 남긴다.

이 아래로는 심각한 작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요이가]를 감상할 계획이 없거나 이미 감상을 끝낸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분들은 진행하시고, 나머지 분들은 자기 책임으로 읽거나 다른 글로 이동해 주세요.

개인적으로 [마요이가]는 2016년 2분기의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다.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오컬트 미스터리물이었고, 심지어 캐릭터 조형이나 분위기도 정말로 공포 호러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게다가 오컬트라 해도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장소나 이상한 경험에 관한 오컬트가 더 취향이다. (편의상 이런 오컬트를 “현장/돌격 오컬트”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다른 신작 라인업은 별로 성에 안 찼다.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1화를 봤다. 차라리 내가 그걸 아예 보지 못했더라면.

ⓒ 横山克

혹시 [마요이가]를 본 적이 없으시다면 딱 제 1화만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몰입감과 미스테리 감각은 1화가 가장 미쳐 있고 나머지는 갈수록 힘이 빠져 있다. 심야 전세버스, 서른 명이 넘는 다 다른 사람들의 괴상한 자기소개, 어디로 가는지 뭘 하러 가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 서로 묘하게 엇갈리며 붕 떠 있는 불길한 공기, 모두의 얼굴이 한 번씩 나왔는데도 이상하게 익명화된 그 집단 그리고 이 모든 게 기본적으로는 리얼타임.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이 2채널 ‘돌격스레’라도 읽고 감을 잡은 것인가 싶었다.

[마요이가]는 적어도 전반부까지는, 현장 돌격 오컬트라 통칭 가능한 바 “오컬틱한 장소에 무작정 찾아가 괴기한 경험을 하는 이야기”들이 갖는 필수 요소들을 충실히 공유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안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고 일반 사회 상식이 좀 덜 통한다는 것, 설명이 필요 없는 불온하고 불길한 분위기, 그리고 전체 타임라인의 시간 흐름이 너무도 리얼타임인 나머지 오히려 엉망진창처럼 보인다는 점.

마지막은 설명이 약간 필요한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좀비 전쟁 생방송을 인용해 볼까 한다. 이 노컷 시퀀스는 처음에는 그냥 다 어정쩡하던 것이 뒤로 갈수록 슬슬 당혹스럽고 섬뜩해지는데, 그건 뒤로 갈수록 좀비가 많아져서가 아니다. 좀비가 튀어나오고, 도망다니고, 싸우고, 건물 안에서 숨을 죽이는 등의 사건들이 단 한 번의 끊김도 없이 그냥 주어지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 등장인물들만큼이나 어찌할 도리가 없는 신세이고, 그래서 몰입하면 할수록 속수무책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튼 [마요이가]는 전반부는, 그리고 확실히 1화는 바로 그 현장감 충실한 오컬트 미스터리물의 왕도 연출을 조심조심 배운 대로 걸어간다. 그리고 그 결과는 완벽까지는 아니라도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사실 돌격 오컬트에는 왕도가 있어서, 적당한 떡밥이 철저한 리얼타임의 타이밍으로 주어지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게 심지어 주작일지라도 섬찟한 기분을 즐기며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건 새로운 발견도 아니다. 숱한 ‘주작스레’를 돌려 보며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피드백을 받아 본 “2채널 VIPPER”들은 이 연출 기법의 진실을 몸으로 배운 바였다.


그리고 [마요이가]는 중간에 결국 주작 포기 선언을 해 버린 허접 VIPPER에 다름아니었다.

마요이가 키비주얼
© diomedea・Ponycanyon/project迷家

나나키가 무엇인가 하는 명확한 설명은 결국 끝까지 제공되지 않았어야 했다. 투어 참가자들이 저마다 다 다른 나나키를 본다는 사실은 좀더 불친절하게 제시되거나 시청자에 의해 추리되는 진실이었어야 했다. 이 마을이 왜 이렇게 깨끗하게 버려져 있는가, 저 여자는 뭐 하는 여자인가, 애초에 이 투어의 진짜 목적은 뭔가 같은 ‘인간의 무서움’과 ‘미지가 부르는 공포’가 좀더 메인이 되었어야 했다. 적어도 이게 물리적인 것에 대한 공포여서는 안 되었다.

더 좋은 썰이 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빡치는 부분은 더 있다. 누가 누구이고 누가 더 중요한 인물인지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어야 했다. 카메라는 좀더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며 길을 잃고 있어야 했다. 내 기억에 이 작품의 전체 타임라인은 대략 2~3일인데, 이건 그보다 훨씬 더 길든지 더 화끈하게 짧았어야 했다(“모든 게 이 하룻밤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장소 특정적 공포가 더 필요했다. 이를테면, 하다못해 ‘터널’ 정도는, 일체의 앞뒤가 맞지 않는 기괴한 체험만이 가능한 곳이어야 했다.

가장 근본적으로 빡치는 부분은, 왜 처음에는 알아서 잘 하는 것 같더니 뒤로 갈수록 게임의 룰을 무시하고 모든 흥을 혼자 다 깨버리냐는 거다. [마요이가]를 시청하며 이 작품에 기대를 걸었던 그 누구도 설명을 원하지 않았다. 사실 납득이 가는 해설이란 건 오컬트판에서 가장 마지막에 찾는 것이므로. 정말 좋은 현장 오컬트가 되려면 우선은 현장성, 그 현장성이 일방적으로 조성하는 시간 왜곡과 단절감이 주는 괴기한 감상을 챙겨야 할 일인데, 이건 순 거실 불 끄고 공포 영화 틀어주더니 한창 후반부쯤 보고 있으니까 거실 불 다 켜고 사과 먹으라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냔 말이다.

[마요이가]의 충격의 최종화는 모든 것을 친절히 알려줘 버린다. 그 사실은 이따금 나를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화나게 한다.

영화 [곡성] 맨 마지막에서 무당과 일본인이 한 자리에 앉아 그간의 일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결국 그래서 뭐가 뭐였는지 다 알려줘 버린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가? 충분히 어이 없고 열받지 않겠는가? [마요이가]가 바로 그 짓을 했다. 내 기억에는 적어도 4~5화까지는 괜찮게 어리둥절하고 적당히 몰입 가능한 돌격 오컬트였던 것이, 끝에 가서는 무슨 [6시 내고향]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더 좋아질 수 있었는데, 그걸 다 포기하고 그냥 황급하게 나나키 마을 이야기를 일말의 가능성도 없이 종결지어 버렸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 미즈시마 감독이 업계 신인이라거나 아주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 이런 식으로 얘기를 다 끝내어 버리는 게 결코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사정이 있었다는 말인데, 그게 뭐였을까를, 가끔 이 애매한 미스터리 무드의 OST를 듣다 보면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OST도 애니 닮아서 몇몇 트랙들만 미스터리 느낌 나고 나머지는 음악이 불필요하게 모에하다.) 뭐였을까. “위원회” 사람들이라는 어른들이 적당히 하자고 말렸을까? 뭐였을까? 그게 뭐였든 간에, 도대체 내가 그깟 것 때문에 한 분기 기대작 하나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려도 좋았더란 말인가?

그게 뭐였든 간에 그것에 대고 반문하고 싶은 바다. 네놈들은 대체 오컬트랑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네놈들은 어쩌면 1화의 그 이상하고 정리 안 된 분위기, 시간 흐름이 뒤죽박죽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그 전개가 그렇게 싫었던 건지 모르겠는데 이걸 어쩌나? 내가 [마요이가]에 걸었던 모든 기대는 거기에 있었는데! 내가, 우리가 [마요이가]를 다른 양산형 씹덕물 일회용 애니와 구분해서 볼 이유를 없애 줘서 참 고맙네요!


[마요이가]의 흥행은 집계 불가능이라는 참패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연한 일이다. 오컬트를 약속해 놓고는 3류 군상극을 내밀었으므로. 하지만 지금도 수시로 2채널 돌격대 스레를 찾아 읽고 있다 보면 문득 울화가 치민달까 괘씸함을 느끼는 시점이 찾아오곤 한다. 왜 우리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마요이가]는 얻지 못하고, 대신 뭐가 뭔지 다 알려주는 [마요이가]에 만족해야 했을까. 정작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같은 코미디물이 이런 장르의 핵을 너끈히 꿰며 우직하게 추진하고 보란 듯이 성공해내고 있는데, 왜 그게 “본격 미스터리물” 애니메이션에서는 안 되었던 것일까.

왜들 이렇게 못할까. 왜 다들 좀 시원시원치 못하고 이렇게 어눌한 것일까. 그런 억하심정, 그런 울컥함이 내게는 [마요이가]에 있다.

마요이가 입문백서
© diomedea・Ponycanyon/project迷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