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을 “기본소득당”으로? 무슨 약을 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노동’이라는 낱말의 무게


노동당. 부르거나 쓰기 쉬운 단어지만, 이 단어에 얽힌 인상과 생각은 복잡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북조선’에 있는 노동당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한때는 미국과 핵미사일로 맞짱 뜨려는 패기를 보여줘 전 세계가 놀랬고, 지금은 미국과 질긴 밀당을 하면서 세계를 또 다시 놀라게 하는 조선노동당. 이 노동당 덕분에 우리 어르신들은 ‘ㄴ’자만 꺼내도 몸서리를 치신다.

반면 젊은이들이나 지식인들은 조선노동당보다 ‘영국’ 노동당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계급정당과 복지국가, 제3의 길 그리고 오늘날 당수인 코빈이 제창하는 민주사회주의 등, 영국 노동당은 1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면서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사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온 진보 정당으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존속했다.

유명세가 월드클래스인 두 노동당과 달리 ‘남조선’에 있는 노동당은 너무 초라해 보인다. 2011년, 국회의원 수가 단 1명이었던 진보신당은 통합진보당으로 통합하는 것을 두고 의견이 극렬하게 갈렸다. 통합에 찬성한 사람들은 진보신당을 뛰쳐나가 여러 진보 정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통합에 반대한 사람들은 진보신당에 남아 2013년에 노동당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창당 후 여러 번에 걸쳐 노선과 정파 갈등이 생겼고, 이 갈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정의당으로 빠져나가면서 안 그래도 작은 당은 더욱 작아졌다. 당명 바꾼지 5년이 지날 때쯤 치른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자는커녕 서울특별시의회 비례대표 선거에서조차 후보를 내지 못했을 정도니.

나는 이 정당이 생겼을 때만 하더라도 관심이 많았다. 이유는 참 막연했다. 진보 정당이었기 때문이었다. 종교 없는 나에게 진보 정당은 일종의 종교였을 정도로 애착이 컸고, 노동당도 그랬다. 당원은 아니었지만, 노동당이 해산되는 걸 막고 싶어서 친구들에게(심지어 정치 성향이 정반대인 친구에게도) 표를 던지라고 구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10석 넘는 거대(?) 정당으로 성장한 통합진보당이 찢어지면서 진보정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의당이 창당된 뒤에는 정의당을 본격적으로 지지하면서, 노동당은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최근 들어 노동당은 다시 내 눈길을 끌고 있다. 문제는 그 이유가 정의당에 애착이 약해져서라거나 노동당이 좋은 모습을 보여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주에 노동당 당대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노동당 대의원들은 완전히 상반된 안건을 처리해야 했다. 하나는 ‘기본소득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는 안이었고, 하나는 노동당을 해산하자는 안이었다. 둘 다 표결에 부쳐졌고 끝내 부결되었다. 만약 다른 당이었다면 당이 몇 번은 쪼개지고 서로 손가락질 하는 상황이 노동당에 닥친 것이다.

당대회가 이렇게 된 이유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2019년에 치러진 노동당 당직 선거에서 후보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공통 공약으로 당명 개정을 주장했다. 2019년 1월에 출범한 9기 대표단(대표 : 신지혜, 용혜인/부대표 : 서태성, 신민주)은 이전부터 기본소득에 관심이 있었거나 당 내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이끌었다. 대표가 된 이후에는 기본소득을 당의 중심 활동으로 삼고자 했고, 대표단은 7월 당대회에 당명을 ‘기본소득당’으로 개정하는 안건을 올렸다. 이에 기본소득당이라는 당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명 개정에 반대했고, 몇몇 사람은 아예 해산 후 재창당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당명 반대파들은 당원 서명을 받아 해산 후 재창당을 당대회 안건으로 상정시켰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의견은 당대회에서 부딪히고 말았다.

안건 2번이 당명 개정 안건이었다. 당헌 개정 의결 정족수는 2/3이었기 때문에 부결되었다.

한 당직자는 당원게시판에 이런 글을 남기며 당원들을 설득하려 했다.

이 사회에서 노동은 ‘힘든 일’ 로 받아들여집니다. 다가갈 수 있는 건 당명뿐인데 당명에서 힘듦이 연상되면 사람들은 일단 부정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레 여겨왔던 노동의 가치, 신성함, 고귀함의 느낌은 노동당이라는 말로 전달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일을 하며 사니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이라는 수사가 잘 먹힐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노동이 싫고, 노동자가 되기도 싫고, 될 수도 없으며, 이에 프라이드도 없고 딱히 사회운동가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습니다.

대표단은 노동당이 대중에게 지지를 못 받는 가장 큰 이유가 ‘노동’이라는 낡아빠진 단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은 쉽고 구체적이며 해방적이고 급진적이라는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당명을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이 달성된 뒤에 당명을 또 바꿔야 하냐는 물음에는 ‘변화하는 시대와 정세’에 맞춰 또다시 바꿀 수 있다고도 했다.

왼쪽은 대표단 중 한 사람이 당명 개정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글이고, 오른쪽은 당명 개정에 반대하는 한 당원이 쓴 해산 후 재창당 안건 발의문.

안타깝게도 글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피식 피식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들은 진보 정당이 왜 존재하는지, 정당이 유권자에게 어떤 전략으로 한 표를 호소해야 하는지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유권자들은 당명 바꾸기가 이미지 세탁용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이라 바꿨어도 사람들은 그 당이 이명박근혜 정권을 만든 당이라는 걸 잘 알고, 한국민주당에서 시작한 민주당계 정당이 새로 당을 만들 때마다 ‘통합’, ‘신당’, ‘평화’, ‘새정치’ 등 좋아 보이는 온갖 단어를 붙였어도 사람들은 그 당을 “민주당”이라고 불렀다. 어디서 당명 바꿨다는 기사만 뜨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댓글이 항상 달린다. 노동당이라고 이런 비웃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렇게 비웃음을 받는 기성 정치인들조차 한편으로는 당명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기 위해서였다.(그 “자유”가 내가 아는 자유가 맞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그리고 “한국”이라는 단어는 자유한국당이 한국의 대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자유한국당 전신 정당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을 이어주는 역할도 한다. 통합민주당 후신 정당인 민주당과 그와 비슷한 정치세력들이 모여 만든 당이 민주통합당이라는 조삼모사 같은 상황에서도, 민주당계 정당들은 민주라는 단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리 당 이름을 바꿔 달아도 ‘민주’라는 단어를 버리지 않았다.

출처 : 연합뉴스, 100년 뒤 한국사를 배우는 학생들은 이 표를 보며 욕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노동은 여전히 절실한 문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도록 성장했다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실생활에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집에서 한가롭게 자판을 두들기는 이 순간에도 어떤 사람은 천막이나 굴뚝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버스 기사, 고속도로 수납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집배원, 부산교통공사 노동자 등 수 많은 노동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파업을 시도했거나 실행했다. 한 당직자가 남긴 글과 달리 여전히 자신을 노동자라 여기고 자신이 일한만큼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신좌파가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다 해도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헛구호에 불과하다. 유럽에서 신좌파가 등장한 시기는 사람들이 빵과 스테이크를 비교적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던 때였다.

기본소득이 급진적이라는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공리주의와 정부의 일정 정도 시장개입을 주장한 존 스튜어트 밀, 신자유주의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은 이념적 방향은 다를지라도 기본소득이나 그와 비슷한 개념을 주장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좌파가 많이 주장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복지부문 행정 비용 최소화라는 이유로 우파 학자들이 지지하는 사례도 많다. 이렇게 보면 기본소득은 특정 정치 진영의 유산이 아니라 정책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고,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급진적 의제로 아는 것도 결국에는 진보 진영에 이를 주로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는 것뿐이다.

이처럼 기본소득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는 것은 대표단의 현실 인식 수준이 얼마나 뒤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노동당이라는 당명은 시대에 뒤떨어진 당명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 받는 수많은 노동자를 생각했다면, 그리고 최근 들어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노동이 더 이상 대중성 없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당은 그 당이 추구하는 일부 가치나 정책만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유권자들은 저 당명에서 기본소득 그 이상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힘들다.


위에서 순서대로 네덜란드, 이스라엘, 노르웨이, 호주, 아일랜드, 북한, 영국 노동당 로고들

사회주의와 평등 사회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정당이라면 노동당만큼 딱 맞는 옷은 없을 것이다.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이스라엘, 멕시코 노동당은 집권 경험이 있거나 집권 중이며, 싱가포르와 대만에도 노동당이 존재하고, 자본주의 중심부인 미국에서는 우리처럼 군소정당으로써 생존하고 있다. 여러 나라에 있는 노동당이 잘 돌아가는지를 내가 일일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당이라는 이름이 여러 곳에 존재하는 것만 봐도 나는 아직까지 노동이 우리 인간 사회에게 의미 있는 문제고, 노동만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이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진보정당 당직자나 당원, 지지자로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르신들은 분단으로 인한 반공주의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고, 그 이하 세대에게는 아무리 기존 정당과 다른 정책이나 운동을 해도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름을 바꿔 달면 그 순간 동안은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당이 살고, 집권까지 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당이 이렇게까지 지지를 못 받는 원인을 잘못 찾은 것 같다. 당명을 바꿔서 생기는 관심은 잠깐이다. 진보 정당이 지지를 얻으려면 당명을 바꿔 당을 새롭게 보이는 것보다는 정당이 주장하는 가치를 사회에 뚝심 있게 알리는 것밖에 없다.

기존 정당들이 이름을 바꾸거나 새 정당을 차릴 때마다 진보 정당은 자신들이 왜 지지를 못 받았는지 성찰하지 않고 있다며 기존 정당을 비웃고, 우리는 저들과 달리 평등 사회로의 진보라는 정체성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사람들이, 구태 정치라고 손가락질한 사람들이 닳도록 걸어간 그 길을, 굳이 따라가려고 한다. 참 실망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