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묻지 마세효요~♫


오늘은 새해첫날이다. 해도지를 보려고 했는데, 늦게 일어나서 해를 보지 못했다. 아쉬었다. 그러나 떡국을 먹었다. 세그릇이나 먹었다. 떡국이 맛잇어서 많이 먹었다. 그리고 나이도 더 많이 먹고 싶어서 많이 먹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십다.

어렸을 때는 나이가 한 살 더 늘었다는 사실이 내 삶에서 큰 소식이었다. 내 나이를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다니고, 어른이 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지 계산도 했다. 특히 투표할 때는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내가 이만큼 컸다는 뿌듯함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그랬을까? 그도 아니면 맛있는 떡국 때문이었을까?

요즘은 누가 내 나이를 물으면 바로 대답하기가 어렵다. 나이를 달달 외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 말고 신경 쓸 게 많기도 하고, 나이 먹기가 달갑지 않은 것도 있고, 졸업하고도 아직까지 번듯한 곳에서 사회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여기에 이유를 하나 더 달자면, ‘만 나이’와 ‘세는 나이’ 탓이다.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인데도, 나이세는 법에 따라 내 나이가 달라진다. 두 나이 사이에서 다른 사람에게 내 나이를 어떻게 소개할지 헷갈린다. 그래서 나이를 물으면 차라리 내가 태어난 해로 대답하는 편이다.

나이세는 법이 달라서 헷갈리는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다. 요즘에는 세는 나이를 비합리적인 문화로 생각하면서, 만 나이로 통일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소재가 되었다.

나는 둘 중에서 세는 나이에 조금 더 마음이 가지만, 나이세는 법을 만 나이로 완전히 통일한다고 해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만 나이는 세는 나이보다 과학적이고, 법적으로 표준 나이라니까.

다만, 세는 나이에 대한 주장 중에는 억지스러운 구석도 있다. 세는 나이를 비판하는 몇몇 사람은 지구상에서 한국만 세는 나이를 쓴다는 사실과 한국 고유의 나이 따지는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세는 나이를 악의 축으로 몰아세운다.

지금도 학교에서 배울 정도로 오성과 한음은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나이로는 오성(이항복)이 한음(이덕형)보다 5살 더 많았다고 한다. 나이라고는 세는 나이밖에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위아래로 8살 차이가 나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유교 탈레반이 반도를 지배했다고 욕하는 그 시대 말이다.

세는 나이가 비과학적일 수는 있으나, 나이 서열 문화를 만든 데에는 죄가 없다. 그 문화가 이어지고 잇는 사회가 진짜 문제다. 사회 내에서 그런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세는 나이가 아닌 만 나이로 서열을 구분 지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고 있고.

젊음을 예찬하는 노래 중에는 ‘나이는 숫자!’라는 가사가 적지 않다. 나는 그 말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내 머릿속에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가사를 쉬이 잊을 수가 없어서다. 대신 저 가사 바로 뒤에 따라오는 ‘마음이 진짜!’라는 가사에는 토를 달 것이 없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나이로 높고 낮음을 따지기 보다는 마음이 통해야 한다.

나는 내 마음 속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고, 정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인간관계을 맺을 때 이 사람이 내가 바라는 사람인지를 따지기는 해도, 나이는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대학에서 막 새내기에서 벗어났을 때, 학과 후배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후배들과 만날 때마다 ‘저는 반말로 이야기나눠도 좋아요.’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사정을 하다시피 내 소망을 말해도 새내기 대부분은 ‘아닙니다 선배님.’이라고 너무나도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고, 그 친구들조차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는 내게 다나까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 나와 후배 사이 관계의 거리는 좁힐 수 없었고, 졸업하고 나니 학과에 친한 후배는 하나도 없게 되었다. 나름 신세대들이 모이고, 학번과 나이를 잘 안 따진다는 이 학교에서도 나이는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가르는 크나큰 장벽이었다.

새해에는 나이가 계급이 되고 인간관계의 벽이 되는 문화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또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