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퇴사 썰입니다.

세상을 기다리지 않기


그저 하루 종일 뭔가를 기다리기만 한다

어느 요일의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연하지 내 휴대폰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알람 시각이 다 똑같이 7시 36분인걸. 원래는 7시 반으로 맞췄던 것을 그래도 내 자신에게 좀더 자비를 베풀고자 6분 더 준 것이었다. 어차피 집앞 버스는 8시에 오니까… 알람을 끄고 눈을 떠서 잠시 뭔가를 기다리듯이 멀거니 있었다. 어느 새 43분이 되었다. ‘더 미루면 안 되지’ 하고 욕실로 쫓아가 머리를 씻는다.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옷을 다 입고 시계를 보니 7시 54분이었다. 버스는 8시에 온다. 6분간 할 일이 없다. 어쩌나… 하면서 휴대전화를 조물락거리다가, 7시 57분이 된 걸 확인하면서는, 못 이기는 척 다시 일어나 신발 속에 발을 우겨넣고 현관을 나선다.

버스는 사실 8시 1~2분경에 온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버스가 8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그냥 8시까지 정류장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다. 나도 익숙하게 그들 사이에 끼어 서서 기다린다. 이윽고 버스는 온다. 서로가 서로를 우겨넣은 상태로 버스는 달리고, 그 버스가 전철역에 내려 놓은 사람들이 다시 전철에 서로를 우겨넣는다. 버스에서, 전철에서 사람들의 자세는 대동 소이하다. 조금 고개를 숙이고, 맥없이 걸쳐놓듯이 낮게 들어올린 오른손에 휴대전화가 끔벅거리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각자 자기가 내려야 할 곳에 도착할 때까지 시종일관 그 자세다. 지금은 정말 할 게 없다는 것처럼, 그저 목적한 정거장에 도착하기만 기다린다는 것처럼.

회사는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하지만 다들 8시 55분을 전후해서 거의 다 출근한 상태다. 모두가 그러하듯 나 역시 중요치 않은 창 몇 개를 띄워놓고 최후의 4분을 기다리고 있는다. 사실 오늘 출근하자마자 어디 업무용 단톡방에 바로 물어봐야 할 사안이 있긴 한데, 아직 근무 시간이 아니므로, 그걸 물어볼 수가 없다. 9시가 땡 치고, 조금 눈치를 본 다음, 대충 9시 1분경에 그걸 물어본다. 사실 메시지 입력도 다 해놓은 상태여서, 9시 1분에 내가 한 일이란 엔터 키를 누른 것뿐이다. 근무 시간은 지루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지루한 시간이다. 몇 년을 지내도 낯설기만 한 어색한 활기가 어느 요일이었는지도 모르겠는 사무실을 휘 돌기 시작한다.

이윽고 아니나 다르랴 싶은 업무 문의가 하나 들어온다. 이번엔 또 무슨 화이트데이 프로모션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특설 페이지가 언제까지 개발 가능하냐는 문의다. 아니 그러면 화이트데이 프로모션을 3월 14일까지 개발해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하는 생각을 뇌에 힘 줘서 꾹 참고 팀장님을 불러 조율을 맡긴다. 그러고 나니 아까 못 본 다른 메시지가 눈에 띈다. 지지난달에 했던 어디 제휴 공동구매용 상품 데이터를 또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역시나 여기서도 언제까지 준비되는지부터 물어보고 있다. 하여간 이 회사는 날짜밖에 없어, 어떻게 일이란 게 언제 하는지만 중요해, 뭘 하는지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도 없으면서, 속으로 툴툴거리며 팀장님을 불러 조율을 맡긴다.

업무 완료 예상일은 잘 불러야 한다. 3월 13일까지 된다고 말해 놓으면, 그들은 그걸 3월 13일까지 내가 작업해서 되게 해놓겠다는 뜻으로 이해하질 못하고, 3월 13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걸 확인하려고 한다. 애초에 3월 13일까지 해놓겠다는 것은 내딴에는 3월 14일에 이벤트가 가능하도록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책임 의지의 표명이고, 사실은 그마저도 정말 가능하긴 할까 싶을 만큼 시간이 모자란 일정이지만, 이 회사는 내 사정이 그러거나 말거나 누구도 누구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일정을 닦달당하며 일을 해나가다 보면, 가끔은 타부서가 우리 팀을, 나를 병목으로 몰아세워놓고 면피를 하려고 이러나 하는 잘못된 피해망상까지 떠오른다. 그럴 리 없다고 머리는 이해하는데, 입에서는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그렇게 황망한 오전이 지나면 점심 시간이다. 구내식당 앞에 줄을 서서 밥을 받고 국을 마시고 얼마 안 나오는 잔반을 버리고 자리에 돌아와 의자 등받이에 최대한 기댄다. 밥을 먹으면 졸린 탓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침도 안 먹고 출근하는데, 아무튼 점심은 적당히 잘 먹었으므로 (하여간 이 회사 구내식당에는 아무 불만 없다) 슬슬 졸리다. 대충 35분 정도 남았음을 확인한 다음, 이를 닦고 돌아와, 손목시계의 1시 정각 알림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실내용 슬리퍼를 벗고 한껏 기대어 한숨 붙이려고 눈을 감는다. 오후 근무 시간까지 잠이라도 자면서 기다리려고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벌컥 정신이 들었다.

왜 나는 기다리기만 해?

세상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데, 나는 왜 세상을 기다려야 해?
얘기가 좀 불공평하지 않아? 내가 저쪽을 기다려줄 때가 있으면 저쪽이 날 기다려줄 때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항상 난 일방적으로 기다리고만 있어야 돼? 왜 항상 몇 분 뒤, 몇 시간 뒤, 며칠 뒤의 일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지?
왜 내가 세상을 기다려주고 있지?

잠이 달아났다. 그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를 아마 이 시점에서 잊어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어쩌다 내가 항상 대기 상태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인간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았다.
이대로가 안 되면, 그럼 어떻게가 맞지?

원티드를 열고 잡코리아 로그인을 다시 했다. 근무 시간이건 아니건 관심 없었다. 이력서를 조금 업데이트한 뒤 오픈했다. 헤드헌팅이 오는 대로 거의 대부분 수락했다. 가고 싶은 회사 몇 군데에 지원을 넣기도 했다. 지원한 곳에 서류 탈락한 건 여전히 맥빠졌지만, 들어오는 헤드헌팅을 수락하는 과정은 뜻밖에도 삶의 활력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이직 프로세스를 시작했고, 회사 사람들 모르게 합격을 한 군데 따냈으며, 가족들 모르게 퇴사 절차를 확정했다. 회사와 가족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가서 연락하고 면접 보고 결정했다.

"The world does not wait for you; why you for the world?"
이 이직 시기에 회사 컴퓨터 배경화면을 이런 걸로 해놨었다 물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세상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오늘을 포함해서 3일 뒤에 퇴사하고 7일 뒤에 다른 회사로 출근할 일정이 잡힌 지금에 와서는, 조금은 더 명확해진 데가 있다. 내가 세상을 기다리는 인간이 되었던 것은 세상이, 구체적으로는 이 회사가 내게 원한 게 그거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내가 매일 월~금 오전 9시 정각에 제자리에 나와서, 점호를 마치고, 별 말도 안 되는 업무를 해내고 대책 없는 일의 대책을 세워 주기를 기대한다. 그건 좋다. 나도 몇백 만원 봉급을 아무 이유 없이 받고 싶지는 않다. 어느 쪽이냐 하면 굉장히 능동적으로 일을 하는 편이다. (예컨대 ‘기획서’가 더디게 나오는 꼴을 봐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말이 안 되고 대책이 안 서면, 거기서부터는 기본 포즈가 바뀌기 시작하는 거다.

속된말로,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고 할까? 대기 자세는 대기 자세인데, 바짝 엎드려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근처에서 무슨 핵폭발이라도 일어나서 벙커도 뭣도 없는 맨땅에 아쉬운 대로 최선의 생존을 해내야 하는 군인이라도 된 것처럼 ― 혹은 그냥 하루하루 깐 데 또 까고 판 데 또 파는 삽질에 질려버린 말년 병장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뭐 아주 틀린 비유는 아니지. 이 회사는 매일매일 그랬으니까. 수시로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나거나, 수시로 깐 데를 파고 판 데를 까거나.

이런 환경에 놓이면 확실히 여기서는 무조건 최대 절전 모드로 있는 것이 옳다. 사람이 항상 초긴장의 비상 상태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 급한 일일 때만 머리 위의 버저를 울리고, 그밖의 경우에는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패닉 버튼은 누르지 않으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토록 원했던 바 놀랄 곳이 없고 뻔하기만 한 루틴을 확보한 뒤 그 속에서 매일매일 좀더 작고 좀더 많고 좀더 하찮은 비상 상황에 역치가 떨어진 피실험체처럼 번번이 억지로 깨어나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업무를 처리하고는 원한 적 없는 칭찬과 절대 돌아오지 않는 보답을 받고는 다음 호출을 기다리는 삶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는 그 세상이란 것은, 결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컨대 세상은 세상만의 일정이 있어서 이미 그 일정에 맞춰 돌아가고 있고, 내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로 써 놓으면 뻔한 소리인데 막상 실제로는 잘 와닿지 않는다. 그 ‘세상’의 일정의 수레바퀴에 발맞춰 구르는 삶은, 처음에야 능동적인 것이었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수레바퀴 아래 깔리지 않기 위해 동동거리며 구르고 틈날 때마다 쉬려고 하는 피동적인 동작이 되기 일쑤인 탓이다. 세상이 날 기다려주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삶, 그건 너무 쉽게 너무 뒤늦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래서, 세상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선수를 치기로 했다. 내가 먼저 입안해서 검토하고 승인한 다음 세상에는 그 결재판을 그냥 바로 들이밀기로 했다. 이직 프로세스 조금 해 본 것 가지고 뻐긴다 싶지만, 지난 몇 주간의 이 경험에서 내가 얻어야 할 교훈이 뭐냐는 차원에서 그렇게 정리하고 싶다. 세상을 기다리기 시작하면, 정말로 한없이 어디까지고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만다. 세상은 내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여기 빈칸에 서명하라고 서류를 들이미는 것은 항상 세상이어야만 하는가? 가끔이라도, 내가 먼저 그런 서류를 들이밀 수는 없는 걸까?

의외로 그게 가능한 부분이 있길래, 그렇게 해봤고, 생각보다 잘 돼서, 그냥 교훈으로 삼을 생각이다. 세상을 기다리지 말자고. 세상이 내 머리 위에 버저를 얹을 수는 있겠지만, 아무 때나 그 버저를 눌러대지 못하도록 할 순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