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에서 벌어지는 ‘노동’ 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들

노동 중심성이라는 함정


‘위기.’ 요즘 정의당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다. 사실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은 언제나 위기 상황이지만, 이번은 다르다. 대선과 지선에서 연이은 참패, 저조한 지지율, 당원 수 1만 명대, 빚이라는 굴레가 정의당을 조여오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당 안팎에서 생존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혁신’은 위기 상황에서 항상 따라오는 단어다.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들이 백가쟁명을 벌인 것처럼 간만에 혁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주장 하나하나가 옳고 그른지를 말하기에 앞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는 상황은 긍정적이다.

‘노동.’ 혁신을 어떻게 이룰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이 한 단어만큼은 빼먹지 않고 입에 올린다. 노동은 정의당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첫 원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계승하는 정치세력이자 여전히 민주노총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정당이다. 노동과는 결코 멀어질 수도 멀어져서도 안 되는 정당이다.

분명 노동 중심성 강화는 정의당에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 돌아가는 판을 보면 왠지 걱정된다. 다들 노동을 입에 올리고 있지만, 그 단어에 관한 생각은 그 단어를 입에 올린 횟수만큼 다양해 보이고,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속내도 제각각 다르다. 참 당연하면서 단순한 단어에는 여러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의 화약고, 노동

민주노동당이 처음 생겼을 때와 현재 정의당 간 시차는 20년이 넘는다. 그사이 노동에 대한 대중의 시선과 인식은 상당히 달라졌다.

핵심은 비정규직이다. IMF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와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문물을 한국에 전파했다. 민주노총은 그것에 대항하고자 민주노동당을 만들어냈지만, 민주노동당은 그 흐름을 막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알바, 무기계약직, 특수고용직, 하청 등으로 잘게 쪼개진 비정규직들과 마주하는 것도 모자라 앞으로는 노동 유연화 끝판왕인 플랫폼 노동자와 쿠팡 노예를 맞이해야 할 처지다.

20년 사이에 변하지 않은 것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다 부정적인 것들이다.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 좋은 인식,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따로 가는 정치 행보 등이 그것이다. 그나마 노동권은 나아지기는 했으나 속도는 한없이 더디다.

이런 환경은 진보정당이 노동 의제를 다루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시절에 노동자는 곧 정규직 노동자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비교적 간단했다. 연대라는 단어는 마법의 단어였다.

지금은 노동이라는 의제를 앞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각 비정규 노동 별로 필요한 해법도 다른 상황에 또 다른 형태의 비정규 노동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고용 형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제를 낳았다. 개인에게는 고용 형태가 곧 계급이 되었고, 노동자 간에는 소모적인 갈등을 부추긴다. 정규직으로 진입하기 위한 경쟁은 세대, 성별, 지역 갈등으로 번져나가 한국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지금은 더 이상 연대를 찾는 것만으로는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막연하게 노동 중심성 강화를 외친다면 대중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 혹은 그냥 그런 소리로 받아들일 것이다. 노동권이 왜 중요한 것이고, 각 노동자 간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그들을 어떻게 묶어 정치 세력화할 수 있을지를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그림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 창당 대회 당시 사진.

어떻게 노동 중심성을 강화할 것인가?

인적 구조만 보면 세간의 인식과 달리 현재 정의당은 굉장히 노동 대표성이 강한 정당이다. 페미 대모 이전에 금속노조 대모 심상정, 100일간의 복직 투쟁을 승리로 이끈 강은미, 노동 운동을 위해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잘린 배진교, 20년 가까이 역무원이자 노동운동가로 활동한 이은주, 노조의 불모지 IT 업계에서 노동 운동을 펼친 류호정. 이렇게 소속 의원 6명 중 5명이 노동운동 경험이 있다.

그런데 당 안팎에서 노동 중심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은 꾸준히 나온다. 노력을 안 하는 것이 아닌데 노력하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노력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동안 정의당은 국회에서 노동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도화하는 것에 집중했다. 국회에서 갈등을 의제화하고 해결하는 모습은 정당만이 할 수 있는 일이자,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정의당은 원내 활동이 다른 진보정당보다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창당 이후 줄곧 원외로 쫓겨난 적이 없는 유일한 진보정당이었고 진보정당 중 그나마 전국적으로 고른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문제는 정의당이 그런 역할에 집중하기에는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정의당은 교섭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국회 내에서 영향력이 적다. 20석이 넘는 정당이나 의원 모임은 교섭단체라는 걸 꾸릴 수 있는데 그것은 실로 힘이 세다. 상임위원회부터 본회의까지 교섭단체 합의 없이는 법에 있는 철자 하나조차 쉽게 바꿀 수 없는 구조인데다가, 교섭단체는 상임위원장이나 부의장 같은 국회 내 요직을 꿰찰 수 있는 것은 물론 행정부나 사법부 내 각종 요직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도 생긴다. 정치적 노선이 다른 민주평화당과 공동교섭단체를 만들어 영향력을 높이려고 공을 들였지만 6개월도 못 가 해체했고, 그것이 유일한 교섭단체 경험이 되었다.

비교섭단체로서 한계를 느낀 정의당은 민주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양당 중에서는 그나마 민주당이 정책 의제와 가치관에서 공감대가 있었고, 이명박근혜정권이라는 공동의 적도 있었다. 정책 공조와 후보 단일화도 당연할 일이었고, 그 10년 동안은 서로에게 좋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여당이 되고 나서는 올가미가 되었다.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에 정책이나 노선에서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에 더해 조국 사태 같은 민주당의 실책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정의당에 돌아온 것은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이었다.

매우 힘든 일이겠지만, 정의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려면 국회 못지않게 현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노동 투쟁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모습을 보이고, 미조직 노동자들을 노조와 정의당으로 끌어들이고, 각 지역에 있는 당 정치인들이 평당원을 모으고 지역 조직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 의제를 포기할 수 있다는 착각

‘우리는 그동안 페미에만 집중하느라 노동을 버렸다.’ ‘노동 중심성을 높이기 위해 페미를 버려야 한다.’ 노동 중심성 논쟁이 벌어지면 항상 이런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노동과 여성은 서로 적대하는 의제가 아니거니와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노동과 여성이 공동으로 행동에 나선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진보정당의 사상적 뿌리가 되는 마르크스주의는 사적 소유와 계급 차별이 여성을 억압하는 원인이라 진단하고 성차별을 뿌리 뽑고자 노력했다. 여성 노동자 노동 환경 개선과 가사 및 육아 사회화 등에 집중했다. 1908년 3월 8일은 미국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권을 얻기 위한 시위가 벌어진 날로, 이후 유엔은 3월 8일을 국제 여성의 날로 정했다. 노동자와 여성은 억압받는 존재였고, 그 둘이 연대를 했을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남성 표를 얻자고 여성 문제를 포기하는 것은 잠깐 표를 얻자고 그동안 지켜왔던 가치를 포기하자는 말밖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여성 유권자가 정의당을 포기하는 효과만 부를 것이다. 보수 언론과 정당에서 남성 청년이 선거 승리의 열쇠라고 장담하면서 그들을 끌어들이고자 각종 여성 차별적인 공약을 쏟아냈으나 두 차례 선거 결과에서 보여준 여성 청년의 결집력은 남성 청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정의당이 의도한 방향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지만…)

의제를 취사선택해서 반영한다는 것은 정의당의 위상에도 맞지 않는다. 정의당의 궁극적 목표는 어쨌든 ‘집권’이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대중이 요구하는 다양한 의제에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여성 의제는 그런 다양한 요구 중 하나이다. 최근 단일쟁점정당(집권보다 특정 의제의 실현에 집중하는 정당)인 기본소득당조차 전략적으로 여성 의제를 받아들이고 각종 여성 정책을 만들어내는 실정이다.

지금 정의당에 필요한 길은 노동과 여성 사이 양자택일이 아니다. 노동 정체성은 그것대로 강화하면서 성별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 또한 길러야 한다. 여유가 있다면 노동과 여성 외에도 다양한 의제를 품어야 한다. 기후 위기/소득 불평등/소수자 문제 등 한국 사회가 등한시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투쟁하는 한편, 미래 성장 전략/부동산/교육 등 대중들이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대중은 한 가지 의제에만 집중하는 정당에 강한 권력을 줄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정의당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당 미래를 갈라놓는 자충수가 되리라 확신한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섬유 노동자들은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생존권과 노동권, 참정권 등 인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 시위는 여성 지위 향상과 여성주의를 상징하게 되었고, 이 날을 기리고자 국제 여성의 날이 제정되었다.

노동은 막연하게 이야기할 거리나 정파적 이익을 늘리는 데에 활용되는 도구가 되면 안 된다. 노동은 정의당을 상징하는 단어이자 양당에 절대적으로 앞서는 의제다. 그래서 제대로 써야 한다.

이제는 노동 정체성을 높여야 한다고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노동 정체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 문제는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다. 그 문제를 정의당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대중들이 느끼게 해야 한다. 치밀한 계획과 행동력으로 말이다.

문제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2024년 4월 10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