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바꾸자, 선거제! ②] 중대선거구제는 왜 대안이 될 수 없는가 - 실전편

희대의 거품 선거제도, 중대선거구제


갑자기 분위기 중대선거구제

선거제 개혁이야 하루 이틀 나온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번에는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 눈에 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이 제법 적극적으로 논의를 한다는 점이 첫째로, 선거법 개정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양당에 유리한 정치 지형과 선거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보수 정당은 애써 만든 개혁안에 퇴짜만 놓고, 민주당은 개혁 논의에 미적거리다 때가 되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거나 이도 저도 아닌 개혁안이 나온 것이 다반사였다. 정치 개혁에 동조하는 양당 정치인, 그것도 특히 보수 정당 의원이 있다는 것은 제법 큰 차이고, 이제는 정치인들이 한국 정치가 제도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다른 하나는 지역구에 대한 문제 제기다. 기존에는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학계나 진보정당에서는 비례대표 의원정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전국 단위로 뽑던 것을 권역 단위로 뽑자, 연동형을 하자 등등 비례대표 개혁에 집중한 나머지, 지역구는 의석수를 어느 정도로 줄이냐 선에서 그쳤다.

이번에는 지역구를 바꿔보자는 목소리가 더 많이 나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나름대로 사정은 있다. 승자 독식 정치 문화, 극심한 양당제, 많은 사표, 인물/소지역 중심 정치, 지역감정에서 비롯된 양당 적대적 지역주의 등은 한국 정치의 문제로 종종 꼽혔던 것들이다.

지역구 개혁론자들은 이런 문제를 부추기는 ‘만악의 근원’이 다름 아닌 ‘소선거구제’라면서 소선거구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래 대체로 맞는 말이다. 실제 정치학에서는 이것들을 소선거구제의 문제로 꼽고,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적해왔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한다는 것일까? 그들이 내세우는 제도는 다름 아닌 한 선거구에서 두 명 이상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다. 지난해만 해도 몇몇 국회의원이 중대선거구제 법안을 발의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올해 첫날 윤석열 대통령이 2~4인 선거구제로 전환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간만에 토론 분위기가 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썩 달갑지 않다. 문제점을 제대로 찾아 놓고선 해결책은 엇나가는 모양새로 보인다. 이론과 역사는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의 대안이 절대로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예시로 든 ‘개방명부식 권역별 대선거구제’ 투표용지. 이 안에 따르면 소선거구를 폐지하는 대신 최소 6명에서 최대 11명을 뽑는 선거구를 만들고, 비례대표 47석은 정당 득표와 의석 점유율을 일치시키기 위한 조정의석으로 활용한다. 박주민 의원 외에도 몇몇 의원이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료 출처 = 박주민 의원실)

중대선거구제는 어떻게 지방 정치를 망쳤는가

우리는 이미 중대선거구를 꾸려 사람을 뽑고 있다. 바로 기초의회 지역구 선거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30년 전만 하더라도 기초의원 선거는 읍면동 별로 한 사람씩 선거구를 구성하고, 후보들은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는 지역 유지를 중심으로 당선되는 경향이 강해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 정치의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제, 비례대표제와 함께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했다.

중대선거구로 바꾼 지 16년이 지금, 기대는 현실이 됐을까? 천만에! 그게 됐다면 이렇게 길게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군소정당들은 지난 선거보다 더욱 저조한 성과를 얻었다. 군소정당에 언제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냐마는 이번은 더욱 심각하다. 조직력 약화, 더딘 내부 혁신, 유권자에게 호소할 정책 부족 같은 당내 사정 또한 성적표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제도 탓을 안 하고 넘어가자니 그 결과가 심상치 않았다.

지역구 기초의회 선거에서 당선자를 낸 군소정당은 진보당과 정의당 단둘에, 그마저도 17명과 6명으로 전체 지역구 기초의원 비율로는 1%도 못 미치는 수치며, 남은 의석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군소정당이 가장 처절히 패배한 선거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당제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대선거구제가 왜 현실에서는 의도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걸까? 선거구 형태별 군소정당 당선자 수는 우리에게 답을 알려준다.

당선자가 집중된 곳은 주로 3, 4인 선거구였다. 특히 4인 선거구에서는 선거구 개수가 얼마 없는 것에 비해 많은 당선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정의당 소속 2인 선거구 출마자 전원은 낙선했고, 그나마 진보당이 힘겹게 세 사람을 당선시켰는데 이마저도 민주당 말고는 이렇다 할 정치 세력이 없는 광주 · 전남 지역 출마자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2인 선거구는 소수 정당 진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늬만 중선거구인 셈이다.

선거구 형태별 군소정당 당선자 수. 군소정당은 3인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고, 특히 4인 선거구에서는 선거구 비율 대비 많은 당선자가 나왔다.

그렇다면 2인 선거구는 왜 이렇게 많은가? 일단은 자연스레 그렇게 된 지역이 있다. 보통은 광역의회 선거구와 기초의회 선거구가 서로 일치하는데, 이렇게 선거구가 짜인 농촌 지역은 의원 수가 적다 보니 2인 선거구가 수두룩하다.

문제는 광역의회 선거구와 기초의회 선거구가 일치하지 않는 지역들. 특히 4인 단독 선거구를 꾸릴 수 있는데도 일부러 2인 선거구 두 개로 쪼갠 지역이 제법 많다. 기초의회 선거구는 광역의회에서 획정하는데, 광역 의회 의석 대부분은 양당이 점유하고 있고, 광역 의원들은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을 높이려 선거구를 잘게 쪼갠 것이다.

지방선거 치르기 전, 참다못한 군소정당들은 기초의회 선거구를 3~5인 선거구로 개편하자고 꾸준히 제안했다. 중대선거구는 2인부터 시작하지만, 장점으로 언급되는 효과를 얻으려면 최소 3명부터 구성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역시 반대로 일관했고 민주당은 미적거리다 결국 선거를 40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합의가 나왔는데, 3~5인 선거구제는 국회의원 지역구 11곳 시범 시행에 그쳤다.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갤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공직선거법 조항을 없앴지만, 선거구 쪼개기는 광역 의회의 고유 권한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조직력이 허약한 군소정당들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3~5인 시범 적용 선거구에 후보를 땜빵 채우듯 최대한 내보냈으나 24곳 중 8곳이나 빈자리를 남겼고, 양당은 기어이 그런 선거구에 정해진 의석수만큼 다 공천하면서 109석 중 105석을 자기들이 먹어버렸다. 그리고 법을 바꿔도 선거구 쪼개기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2인 선거구 대부분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결과는 모두들 알다시피 이렇게 나왔다.

분명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했을 때는 다양성 증진을 의도하고 도입했지만, 현실에서는 선거구가 양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짜이면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그리고 총선에서도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된다면 선거구 짤 때 이런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결과도 비슷할 것이다.

선거구 쪼개기가 심한 기초자치단체를 모아봤다. 보통은 광역의회 선거구와 기초의회 선거구가 일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초의회 선거구에서 광역의회 선거구를 뺏을 때 값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기초의회 선거구를 인위적으로 쪼갰다는 얘기다. 가장 차이가 많이 난 곳은 경기도 성남시로, 4인 선거구가 6개 되어야할 것이 2인 선거구 12곳으로 쪼개졌다. 서울은 거의 모든 자치구에서 선거구 쪼개기가 행해졌고, 경남과 경북도 제법 많은 편이다.

돌고 돌아 소선거구제

안타깝게도 중선거구제의 실패는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군사정권이 정권 안정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철저히 활용한 사례를 보았다.

더 안타까운 사실. 중대선거구제 실패의 역사는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대만-한국이 나란히 공유하고 있고, 지금은 다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혼합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일본은 중대선거구제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8년(16회)부터 1993년(40회)까지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한 선거구에 당선자를 2~5명 가려내는 중선거구제를 시행했고, 한국과 대만이 중선거구제를 도입힐 때 참고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장장 65년 동안이나 이어온 이 제도는 결정적인 이유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당내 유력 정치인이 돈과 자리로 파벌을 만들고, 이 파벌들이 당내에서 당권 경쟁을 벌이며, 각종 당내 요직과 정치 자금은 파벌 간 협상을 통해 분배된다. 일본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파벌정치의 모습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당내 계파가 존재하지만, 이 현상이 일본에서 유독 두드러졌던 것은 중대선거구 때문이었다.

유력한 정치 세력 간 결합으로 1955년 창당한 자유민주당(자민당)은 조직력이 탄탄했고, 한번 집권한 후에는 빠른 전후 복구와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 덕에 창당 이래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정권을 내준 적이 없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과를 이뤘다.

과반이 당연시되던 상황에서 자민당 소속 정치인들은 다른 당 후보와 당선 경쟁을 하는 것보다 당내에서 공천받기 위한 경쟁에 더 몰두했고, 공천받더라도 중대선거구 하에서 자민당은 후보를 복수 추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선거 과정에서도 같은 당 후보 간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때 파벌은 중대선거구를 도구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총리를 노리는 정치인들은 세력을 넓히기 위해 신인 정치인들에게 파벌에 들어올 것을 권하고, 파벌 회원이 된 사람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해 당선을 도왔다. 보스의 도움으로 당선된 후보자는 파벌 소속 의원으로서 파벌 대표가 집권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파벌 수장과 회원 간 끈끈한 공생관계는 다른 야당에도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오래 갈 것 같던 파벌정치는 부패한 자민당 때문에 철퇴를 맞는다. 고도 경제 성장 이면에는 정경유착이라는 그림자가 있었고, 파벌 수장들은 이를 활용해 뇌물을 받았다. 그리하여 집권 후기에는 계파 보스들이 스캔들에 오르내리게 된다.

이것에 피로감을 느낀 국민은 1993년 40회 중의원 총선에서 자민당 단독 과반을 저지하고, 비 자민당 세력이 뭉쳐 38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자민당을 포함한 일본 국회는 한 목소리로 정치 개혁을 외치며 소선거구를 도입했다. 이후 일본에서 혁신계 정당이라 부르는 좌파 성향 정당이 의회에서 의석을 상당히 잃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적어도 파벌정치와 부패라는 큰 병폐는 해소했다는 평가다.

패전 이후 자민당 없이 내각을 처음 꾸린 호소카와 연립 내각. 하지만 연립여당 간 내분과 내각 정치인의 부패 의혹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내각은 1년도 안 되어 붕괴하고 소선거구제로 처음 치러진 1996년 41회 중의원 총선에서 자민당은 정권을 되찾는다. (사진 출처 = 일본 수상관저)

그럴듯한 이상, 비참한 현실

아무리 완벽한 제도라도 단점이 없을 수는 없고, 어떤 선거제도도 선거를 통해 이루려는 가치를 모두 이룰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거제도의 장단점은 사람하기에 따라, 혹은 사회에 따라 무력화되거나 극대화되기도 한다.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중대선거구는 치명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는 제도다. 선거구를 짜는 데 기득권 정치 세력에 유리하게 짤 여지가 많고, 이에 따라 비례성과 다양성 증진이라는 애초 의도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진다. 그들 주장과 달리 양당제와 지역감정 투표 행태를 완화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파벌과 인물 중심 정치를 유도해 정당 정치를 훼손하며, 부패를 부추길 수 있다. 직관성과 일관성이 떨어지고, 정당 득표 비율과 의석 획득 비율이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도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민의를 왜곡해 반영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그래서 중대선거구제는 전 세계에서 도입하는 나라가 손에 꼽을 정도고, 애써 도입한 곳에서 제도 자체가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정치개혁을 논할 때마다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떠오르고, 그것도 이번에는 정치 개혁을 적극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제법 진지하게 다가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참 당황스럽고 답답하다.

더욱이 소선거구제는 특유의 장점이 있고,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많이 있다. 애초에 소선거구제는 비례대표제 다음으로 세계에서 많은 국가가 활용하는 선거제도다. 소선거구제가 그렇게 만악의 근원이라면 오늘날까지 보편적인 선거제도로 살아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