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바꾸자, 선거제! ④]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뒷이야기

재미도 감동도 없는 유사 비례제


안 바꾸니만 못한

우리가 오랫동안 유지했던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그 정당이 지역구 의석을 얼마나 가져갔는가와는 상관없이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 득표율대로 나눴다. 겉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지역구에서 이미 득표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한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마저 챙기다 보니 군소정당에 돌아갈 몫이 줄어들었다. 병립형은 적은 의석수와 맞물려 비례성을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좋은 선거제도를 찾던 중에 독일을 주목했다. 독일은 결과적으로는 정당이 가져갈 의석을 정당 득표율과 최대한 일치하면서도 지역구는 유지했다. 어느 당도 과반을 단독으로 가져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연정은 필수고, 좌우 이념을 넘나드는 대연정도 종종 이뤄진다. 지역 대표성을 살리면서도 비례성은 높이고, 타협적 정치문화가 발달하는 것을 물론 한국 특유의 지역감정 완화까지… 이상에 가까운 선거제도다.

21대 총선에서 처음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분명 이런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대차게 망했다. 유권자들이 이해하기만 어려워지고, 도입 취지는 전혀 살리지 못해 누구도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굳이 연동하는 비율을 절반으로 맞추고, 21대 총선에 한해서는 30석만 연동형으로 배분하는 캡이라는 것을 씌워(나머지 17석은 기존대로 배분) 계산이 더 복잡해졌다. 참다못한 한 시민단체가 의석 계산기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연동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이 적절히 확보되어야 했다. 독일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비율이 1:1이고, 득표율과 의석수를 맞추고자 추가 의석과 보정 의석이 보태지면 비례대표 의석이 더 많아진다. 하지만 원안은 최대한 짜낸 것이 75석(전체 의석의 1/4)이었고, 이후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구가 줄어드는 것에 반발하면서 결국 47석을 유지하고 말았다.

연동형 비례제 도입 과정 전후 벌어진 일들은 정치 개혁 의제 자체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비례대표제 폐지를 선거제 개혁안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위성정당을 차려 대놓고 방해한 보수 정당이 가장 문제였지만, 군소정당들과 함께 본회의 강행 처리로 선거제를 바꿔놓고 나중에 위성정당 차린 민주당 또한 만만치 않았고, 민주당에만 의존해 강행 처리에 협조한 군소정당들도 좋은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유권자 처지에서는 철저히 당리당략에 따라 선거제를 쥐락펴락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석은 배분 방법만 복잡해졌을 뿐 기존과 같은 결과로 배분되었다. 개혁은 하나 마나였다. 위성정당을 방지한답시고 여러 방안이 나왔지만, 비민주적이거나 오히려 군소정당에 불리해 현실에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준연동형 비례제로 얻은 것은 개혁은 좋은 의도와 필요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뿐이었다. 선거제 개혁이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얻고 실제로 이뤄지려면 설득과 합의를 통한 공감대 형성, 개혁안을 관철하기 위한 현실적인 전략, 선진 정치문화 등이 필요하다. 그나마 이번은 지난번보다 정치 개혁 의제에 관한 관심과 의지가 높아진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만약에 양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차리지 않고 선거에 임했다면 어땠을까?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얻지 못했을 거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딱 100석만을 얻지만 적어도 민주당이 독주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한편 양대 정당이 의석을 더 가져가면서 군소정당, 특히 국민의당은 큰 피해를 입었다.
(계산은 참여연대 의석수 계산기를 활용)

위성정당 대신 ‘정당 연합’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 정당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더불어시민당이 여러 정당의 플랫폼 정당, 범민주 정당의 연합체가 되리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만 아니라 다른 군소 정당에 비례대표 공천 기회를 제공해, 군소 정당이 원내 진입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한 것이다. 덕분에 시대전환과 기본소득당이 더불어시민당에 당원을 파견하고 당선자를 배출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명분을 들고 와도 외국 사례를 질 나쁘게 베낀 것에 불과했고, 몇몇 군소정당이 대놓고 배제되는 상황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불어시민당을 찍은 사람들은 다들 그 당이 더불어민주당인 줄 알고 찍었다.

그들이 영감을 얻은 정당 연합은 비슷한 이념 성향을 지닌 여러 정당이 하나의 선거 연합체를 꾸려 선거에 임하는 것을 말한다. 선출 방식에 따라 정당 연합은 다양한 형태로 선거에 참여한다. 지역구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일화를 통해 원내 진출을 꾀할 것이고, 제법 많은 나라는 비례대표 선거에 정당 연합이 단일 정당처럼 대우받을 수 있게 해서 그들이 봉쇄조항을 넘기면 의석을 배분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불어시민당은 왜 정당 연합처럼 취급받을 수 없는가? 그 결정적인 차이는 정당 형태다. 정당 연합에서 군소 정당들은 통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당 연합 비례대표 후보들은 각 군소정당의 당원이다. 반면 더불어시민당은 단일 정당이고,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들은 당이 존재할 때까지는 더불어시민당 당원이었다. 그리고 끝내 시민당은 민주당과 합당함으로써 사라졌고, 소수정당 출신 의원들은 당론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제명이라는 절차를 통해 독립했다.

정당 연합은 단순한 군소정당 원내 진출용 선거 전략이 아니다. 군소정당에는 고유의 역사와 정치적 정체성, 이념 등을 지키면서 의회에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정당 간 공통 가치관 형성과 소통적 정치 문화 발전 등 정치적 역량을 키울 기회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정치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정당 연합을 허용할만한 가치가 있다. 만약 이걸 허용해서 군소정당 난립이 걱정된다면, 정당 연합은 더 높은 봉쇄 조항을 두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된다.

당 연합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독일 ‘기민련 – 기사련 연합'(왼쪽)과 스페인 포데모스(오른쪽). 기민련-기사련은 기독교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1949년 서독 정부 수립 이래로 지금까지 정당 연합을 유지하고 있다. 스페인 포데모스는 지역 정당들의 연합체로서 2014년에 창당해 2015년 총선에서 3당 위치까지 올라섰다.

비례대표제는 없앨 수 없다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된 지 60년이 넘었고,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계속 개정이 되어 왔지만, 여전히 비례대표제는 존폐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학계와 진보 정당들이 비례대표제 강화를 줄기차게 주장하면, 보수 정당과 정치인들은 맞불 놓듯이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했던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그나마 현재까지 여당이 된 보수 정당은 비례제를 병립형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두는 듯하고, 폐지를 외치는 의원은 한두 명 정도인 듯하다.

비판에 귀담아들을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의도했던 것들을 못 살리고 있다. 또한 후보 공천을 투명하게 하지 않아 왔던 역사도 있다. 당 대표나 중진 정치인이 원하는 사람을 앞 순번으로 공천한다던지, 공천을 대가로 정당이 돈을 받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에 애써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제는 비례대표제에 깊은 불신만 남겼다.

그래도 비례대표제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비례대표제가 장점이 많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는 비례성과 정당 정치 강화, 합의적 정치 문화 형성, 의회 내 다양성 증진 등을 비례대표제로 이뤄냈고, 한국 사람들 또한 이런 정치를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도 비례대표제는 보수 정당도 이득을 볼 수 있는 선거제도다. 지난 총선에서 정당 득표 1등 정당은 더불어시민당(33.35%, 더불어민주당의 위성 정당)이 아닌 미래한국당(33.84%, 미래통합당의 위성 정당)이었다. 만약 총선이 완전 비례대표제로 치러졌다면 미래통합당은 원내 1당이 되었을 거고, 180석 민주당으로 인한 수모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의석수를 공정하게 나눠 갖자는 것일 뿐 어느 정당을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제도가 아니다.

대한민국헌법 제41조
① 국회는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
②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
③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그러니 이제는 폐지를 가열차게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미련을 버리고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하면 더욱 민주적으로 바꿀 수 있을 지에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