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말하려면 뭘 말해야 좋을까
유병재를 모른다. 말로는 서강대 출신이라고 하고 심지어 나와 같은 “사학국섹” 소속이었다고도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믿지도 않거니와 일단 일면식이 없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무슨 쇼를 몇 편 보고 그가 참여한 제작물 몇 개 떠들쳐본 주제에 그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으려는 참이다.
이대로라면 “야~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나 “(싸움 잘 할 것 같은 목소리로) 이 개새끼야!” 같은 욕을 먹어도 할 말 없겠다 싶다. 아니면 그의 다음 스탠딩 코미디 공연에서 대중에게 대충 읽히우고 웃음 소재로 사용되고 지나갈 ‘악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돼. 그것만은 피해야지.
그래서 여기서는 그에 관해 말한다기보다는 그의 코미디에 관해 말해 보고 싶다. 먼저는 이상적인 코미디 내지 정상적인 코미디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고, 유병재의 코미디가 그런 코미디에 얼마나 가까운지 또는 먼지에 대해 논하면 대충 될성싶다.
코미디란 무엇을 논하는 것일까
우선 희극론 그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코미디라는 건 “실제로 웃긴” 무엇인가를 다룬다는 게 정설이다. 언제 어디서 정해진 정설이냐면 방금 내 머릿속에서 나온 정설이다. 웃기지 말라고? 그렇다. 이런 게 웃기는 소리 즉 코미디라는 것이다.
방금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소리가 학계의 정설이 될 순 없다. 따라서 어떤 하찮은 놈이 방금 자기가 뭘 생각해 냈다면서 희극론의 정설 운운하는 것은 실제로 웃긴 소리이다. 코미디는 그렇게 성립하는 법이다. 실제로 ― 이미 그 자체로 ― 웃기고 모순되며 권위를 전복하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 웃김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수법과 기교를 동원하는 것이야말로 희극의 본체라 할 것이다.
핵심은 “그 자체로 웃김”에 있다. 그 구체적 형태야 뭐 슬랩스틱부터 흉내 내기, 궤변 늘어놓기, 엉뚱한 소리 하기, 오해 빚기, 사회적으로 민망한 곤경에 빠뜨리기/빠지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적어도 그것이 희랍철학적 의미에서 좋은 ― 존재의 본질에 가까운 ― 코미디가 되려면, 그 코미디가 다루는 무엇인가는 이미 그 자체로 우습고 웃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아까부터 무슨 쌀로 밥 짓는 소리를 이렇게 길게 하느냐고? 그게 사실, 우리는,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유병재 역시, 그 자체로는 별로 안 웃긴 무언가를 희극이랍시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코미디는 무엇을 다루(지 않)는가
앞서 대강 정의를 합의한 바 코미디란 실제로 웃긴 무언가를 다루는 일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안 웃긴 무언가를 다루는 건 어떤 코미디일까? 논리적으로만 말하자면 둘 중 하나다. 나쁜 코미디이거나, 코미디가 아닌 별도의 무언가인 것이다.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 코미디를 아무거나 하나 떠올려 보라. (개콘이 생각났다고? 나도 그렇다.) 그 코미디는 왜 안 웃겼을까? 나는 이유를 안다. 일단 참신하지 않았을 테고 ― 문자 그대로 매주 매번 새로웁지 못했다기보다는 확실히 웃기다고 생각되는 뭔가를 매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 그 참신성의 부족을 값싼 웃음 ― 뻔한 몸개그, 아무나 다 생각해낼 수 있는 말장난, 이미 인터넷을 쓸고 지나간 짤방들, 분장과 괴성과 유행어 ― 으로 벌충하며 시간만 때웠기 때문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실 코미디가 나빠지는 이유란 간결하다. 실제로는 그다지 안 웃긴 것을 갖고 웃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피사넬로(Pisanello, 1395년경 ~ 1455년)는 진짜 웃긴 것 같다. 왜냐고? 아니 내가 좀 웃기다고 하면 대충 웃긴 줄 알지 무슨 말이 많냐 내가 우습냐? 피사넬로 갖다가 확 다 삐사네버릴라보다. 이런 거. 바로 이런 게 안 웃긴 코미디, 심각하게 나쁜 코미디다. 이제 슬슬 본제로 들어가 보자. 유병재의 코미디는 얼마나 (안) 나쁜가? 애초에 유병재의 코미디란 어떤 코미디인가?
유병재의 코미디는 좋은 코미디인가
내 생각에 유병재의 유머는 독특하다. 그 점은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엔터테인먼트 토양에서 이례적이고 두드러지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의 코미디가 구별되는 건 뭐 잘된 일이겠지만, 그래서 그의 코미디는 좋은 코미디가 되는가? 즉, 그는 정말 실제로도 그 자체로 웃긴 걸 찾아서 그게 얼마나 웃긴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사람인가? 유감스럽게도, 그 부분이 아니올시다 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의 코미디는,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낯선 소재들이 눈치채기 어려운 템포로 변주되는 탓에 잘 보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차포 떼고 보면 사실은 어떤 ‘사람’을 등장시킨 다음 → 그에게 어떤 ‘상황/여건/입장’을 부여해 → 그 사람을 딱하게 만드는 패턴으로 시종 일관된다. 이게 실제로 웃긴 것이 되려면 그 누군가의 존재 자체와 그가 처하는 여건/입장/상황이 대조적이고 배반적이어야 하는데(그래야 존재 자체가 선행하여 세운 ‘권위’가 전복이 된다), 그 대조가 번번이 실패한다. 그래서 ‘저 사람이 딱히 저렇게까지 딱한 상황/여건/입장에 놓일 필요는 없는데’ 싶어지면서 웃음기가 빠지고 만다.
모르겠다. 당신이 유병재라는 한 사람에게 지극히 몰입할 수 있다면 그가 당신 대신 그 모든 부당한 고통을 겪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 개인에게 다행한 일일 뿐 그것이 유병재의 코미디가 좋은 코미디의 핵을 꿰고 있다는 주장을 근거하지는 못한다. 넷플릭스 쇼로도 공개된 그의 공연 〈블랙코미디〉에서 그는,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다 싶은 것 ― 실제로 웃긴 바로 그런 것들!! ― 이 생각났을 때 뭘 하느냐면, 혼자 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다급히 지나가서, ‘이제 이걸 던지면 사람들이 대충 관습적으로 웃겠지?’ 싶은 대본을 처리한다. 그걸 발견했을 때 나는 아찔했다. 내가 저걸 돈 내고 객석에 앉아서 봤으면 어쩔 뻔했나. 끝까지 앉아 있을 수는 있었을까.
흔치 않은 무엇인가는 자동적으로 좋은가
다른 세상 모든 독특한 것들이 그렇듯 유병재 역시 독특하다는 이유로 다양한 오독과 착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이다. 초딩 때부터 특이하단 소리를 듣고 자란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안다. 하지만 내가 특이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이한 사람들은 어느 쪽이냐 하면 입장이 불리한 편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특이한 삶은 옵션이지만 특이한 사람에게 평범한 삶은 하나의 목표인 것이다.
각설하고… 그래서 특이한 사람의 생존 전략이란 둘 중 하나가 된다. 꼭 필요한 곳에서만 특이함을 발산해서 적절히 맞춰 살거나 아예 특이함의 뒤에 숨어서 모든 불이익의 가능성을 방어하거나. 그리고 유병재는 후자인 것 같다. 그는 자기가 특이한 인간 취급임을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뭘 해도 남다른 것처럼 보이(고 심하면 그렇기 때문에 좋아 보이기까지 하)는 착시 현상을 (부지불식간에라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 점이야말로 다른 그 어떤 부분보다 유병재의 현재 행보를 비판할 요점이 된다. 그가 〈SNL〉의 각본 작업을 얼마나 열심히 잘 해 왔건, 〈B의 농담〉에서 얼마나 재치 있는 무대 연출을 했건, 〈YG전자〉에서 얼마나 황당한 상황을 연출해냈건 관계없이, 그 모든 코미디가 결국은 별로 재미있지 않은 무언가를 교묘하게 표지갈이한 것에 불과해 보인다는 혐의, 그리고 그런 혐의를 방조하고 확대한다는 점, 바로 그 부분이 그의 코미디에서 발견할 문제라면 문제, 우려라면 우려라 할 것이다.
난 뭘 해야 할까
나는 지금 비디오 팟캐스트 《김어진쇼》를 하고 있고 이것은 어느 쪽이냐 하면 굉장히 잘 편집되고 계획되고 정돈된 스튜디오 녹화방송 코미디에 가깝다. 하지만 적어도 게스트와 잡담하며 녹화를 할 때만큼은 항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난 이 대화를 즐기고 있나? 지금 우리 두 사람은 뭔가 재미를 보고 있나? 이 재미는 충분히 진실되고 순전한 것이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라도 곁에서 엿듣고 있으면 재밌다고 생각할 만한가? 아니다 싶으면 진행을 중단하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좀더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정직해지기로 다짐한 뒤 화제를 적당히 돌린다.
물론 쉽지 않다. “코너”들 중 태반을 통편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분량 나오나 안 나오나 따지며 한두 시간 빡세게 녹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코미디들을 보면 그저 한탄이 나온다. 왜 이들은 나만큼도 공을 안 들이는가. 안 웃긴 걸 웃기게 만들어본들 그게 얼마나 웃기다고. 나중에는 없던 근자감이 붙는다. 음 뭐 적어도 이런 부분만큼은 내가 유병재 할아버님이라도 뺨 때리는 거 아닐까. 그러고 편집날이 되어 녹화 분량을 열면 분노가 폭발을 한다. 으악! 쓸 분량이 없잖아!! 누가 이딴걸 녹화 끝이라고 들고 들어왔어!!! 아 내가 그랬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