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증가를 해야 한국 부동산 문제가 해결된단 말이지요…?

그렇게 서울에 아파트가 필요하면, 국립현충원이나 밀어버리면 될 텐데


지나가다가 그런 글을 봤다. ‘정부가 집값 안 내리는 이유 제 3탄’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짤막한 문장들이 간명한 논리를 이루며 아주 술술 읽히는 글이었다. 논리는 이렇게 요약된다.

  1. 가격을 내리려면 공급을 늘리고 수요를 줄이면 된다. 간단하다. 이걸 이길 수 있는 시장 상품은 없다.
  2. 하지만 지금 정부는 부동산에 대해서 그렇게 안 한다. 그러니 부동산 가격이 내려갈 수가 없다.
  3. 부동산 가격도 내리지 못하면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고 싶은 사람들만 패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만도 못하다.

글쓴이는 아주 친절하게, 여기서 “3기 신도시” 같은 건 공급으로 치지도 않는다고 아주 명확하게 짚고 있다. 서울 요지를 그린벨트 풀고 재건축 제한 풀어서 “좋은 아파트”로 만드는 걸 “공급”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뭔가 엄청 쉽고 간단한 전개를 풀어나가길래 그 끝에 뭐가 있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결국은 그런 레파토리이다. 서울에 좋은 아파트가 모자란다, 정부는 공급이 넘친다는 개소리나 하고 있다, 울분이 난다, 웅앵 웅앵.

나로써는 이런 레파토리에 대해 한마디 톡 쏘아붙일 말대꾸를 진작에 준비해 놓은 상태이다. 아니, 그렇게 서울에 아파트가 필요하면 선정릉도 다 밀고 종묘도 갈아엎고 국립현충원도 철거하면 되지 왜?

아니 진짜로 한번 다음 묻는 말에 대답해 보시라. 종묘가 왜 있어야 하는가? 그 서울 요충지 땅을 무슨 되도 않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랍시고 버려서 썩히고 있냐고. 종묘 딱 그 자리만 ‘종묘역사공원’으로 변경 조성하고, 거기에 한 50층짜리 아파트 스무 채만 지으면 제2의 헬리오시티 뚝딱 되는 거 아닌가? 서울시는 뭐 하는 건가 이런 노른자 땅 재개발 공고 내서 빨리 영향 평가 진행하지 않고?

종묘가 좀 숭하면, 강남역 도보 15분 거리의 선정릉 자리는 어떤가? 그 무슨 되도 않는 무덤 두 개가 그 강남 금싸라기 땅에 떡 버티고 있는 게 이 나라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 말이다. 그까짓 묘지 두 개 무주 공산으로 분류하고 시공사 선정해서 쫙 밀어다가 롯데타워 같은 주상복합 지어 올리면 속이 시원하지 않겠나? 1층부터 5층까지 백화점 놓고, 6층부터 70층까지 생활공간 만들고, 지하 1층에 ‘선정릉 VR 체험관’ 만들어 주면 대충 될걸 그렇지 않은가?

억지 쓰지 말라고? 맞다. 천벌 받을 억지 소리이다.
자 그럼 이제 되물어보겠다. 그럼, 당신들이 말하는 그 빌어먹을 놈의 “규제 풀어 개발해야 하는 서울 근교 지역”은 도대체 어딘데?

예시가 좀 자극적이긴 한데 실은 그런 얘기를 꺼내고 싶어서 해본 말이다. 앞에 언급한 글을 쓴 그분도 그렇고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서민은 집 사지 말라는 거냐?” 욕부터 꽂고 보는 이들도 그렇고 다들 항상 ‘양질의 공급’을 얘기한다는 점을 말이다. 나로서는 궁금하다. 그런 게 있긴 있는지, 가능하긴 한지, 설령 그런 걸 서울에 공급한들 애초에 그분들이 거기 들어갈 수 있는 물리적 가능성이 있는지, 이 나라의 부동산 문제가 그걸로 만사 해결이기는 한지.


“서울 요지”의 “좋은 아파트”에 “내가” 들어간다는 (판에 박은) 소박한 꿈

부동산 정책을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인데, 하나는 집값이 내려가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집값이 오롯이 시장 논리에 의해서만 통제돼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다. 나는 전자인데, 생각보다 후자인 사람들이 많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이들은 아마도 이명박을 찍었었고, 문재인을 찍기가 찝찝해서 박근혜를 찍었었고, 최순실 게이트에 눈치가 보여서 문재인을 찍어는 줬지만 이제는 그 손모가지를 찍어버리고 싶다고 키보드로 울기 위해 그 손모가지를 아직 남겨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매달 200~500만원의 수입이 있는 “서민 월급쟁이”이며,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내가 번 돈으로 번듯한 집 한 채 사서 좀 덜 힘들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 그것이다. 물론 그 집 한 채라는 것은 한강이 보이거나, 걸어서 2호선을 타러 갈 수 있거나, 좋은 직장 출근과 좋은 고등학교 등교를 다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며, 무조건 자가이고, 항상 아파트다. 단독주택일 가능성은 별로 없고, 빌라나 오피스텔이나 기타 5층 미만의 벽돌 건물일 가능성은 없다시피하며, 전세, 월세일 리는 만무하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이 욕망을, 정말로 백이면 백 모두가 컨닝이라도 한 듯 (아니지 사실은 실제로 까페니 세미나니 북콘서트니 쫓아다니며 정말로 다들 컨닝한 것이다) 똑같이 품고 있는 이 욕망을, 아무도 발설하거나 그 자체로 공론화하지 않은 채, 이 시장과 이 나라의 상황을 일그러뜨리도록 내버려두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부동산 정책에 혀를 차는 후자의 부류들에 대해 내가 가장 안타깝고 못마땅한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들의 “꿈”이라는 것은, 그들이 요구하는 부동산 시장과 정책의 방향성이라는 것은 사실 실현 불가능하며 자기중심적이고 대단히 속물적인 것인데, 그들은 그게 실현 가능한, 게다가 ‘자기 같은 서민들’을 위해 꼭 이뤄져야 하는 ‘소박한 꿈’이라고 박박 우긴다. 흡사 대학 입시 문제와 그 양상이 꼭같다. 차포 떼고 보면 결국 모두 다 ‘SKY’ 들어가고 싶다는 거고, 결국 모두 다 ‘스카이 캐슬’ 들어가고 싶은 거지.

두 문제의 양상은 유사할 수밖에 없다. 둘 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계급 변화와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다리 걷어차기”는 일단은 ‘1세계의 보호무역 행태’를 비판하는 책이다. 우리는 알고 있도록 하자.)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네이버 카페와 네임드들의 블로그에서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푹푹 새어나오는데, 대체로 다음 세 줄로 요약된다. (나중에 한번 찾아보시라. 소름이 돋을 정도로 표현이 똑같다.)

– 있던 사다리마저 걷어차는군요
– 기대도 안 했지만 이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네요
– 우리 같은 서민들은 영원히 [여기에 ‘강남’ 또는 기타 “살기좋은 동네” 입력] 꿈꾸지도 말라는 거네요

이들에게, “SKY가 대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애초에 전국 고등학생이 모두 서연고 들어가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같은 의견을 건네면 일부는 대충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 이 나라의 전부는 아닙니다 애초에 전국민 모두가 서울에 가 사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같은 의견을 건네면, 짐작건대 쌍욕을 들으면서 뺨을 맞고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가뜩이나 못 들어가서 난리인 서울 그 아파트를 이젠 나도 못 들어가게 생겼는데.

간단하게 할 말 하고 지나가자. 말이야 바른말이지 어떻게 당신도 나도 너나없이 서울 가서 사는 게 가능한가? 그것도 이만하면 썩 괜찮다 싶은 서울 요지 살기 좋은 아파트로? 그거야말로 당찮는 소리지. 어떻게 정부가 당신들이 (사실은 다 엇비슷하게 똑같이) 원하는 그런 아파트를 공급하고 당신 사정에 딱 맞게 가격을 맞춰서 당신이 구입한 직후로 집값을 딱 좋게 착착 올려줄 수 있느냐 말이다. 그건 당신들이 물고 빠는 자유 경쟁 시장도 못한다. 왜? 그 꿈이, 그 시나리오가 전국 고등학생 SKY 입학만큼이나 집단적으로 허황된 무엇이기 때문이다.

전국 고등학생이 SKY 들어가려면 SKY 세 대학교가 전국 고등학교만큼이나 커져야 한다. 모든 서민이 서울에 들어가 살려면 서울 전체가 아파트촌이 되어도 모자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정말로 전국민이 한 도시에 몰려 살면,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가 그 도시로 압축되면서 사태는 더 집약적이고 극단적으로 악화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원하는 건가? 그때도 강남은 천하 불패일까?


살기 좋은 동네를 원하면, 그냥 살기 좋은 동네 그 자체를 요구하라

이쯤 되면 내게 되묻고 싶을 것이다. 그럼 대체 뭐가 해결인데? 그 잘난 비판 다 좋다 치고 대안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아 그럼요 대안이 있지요. “서울”과 “경기”를 와해하는 것이 답이라고 나는 믿는 바다.

한국에서 ‘서울’은 단지 한강 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특정 지역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그것은 이 나라의 인프라와 경제 구조의 코어를 가리키는 것이다. “서울에 살면 좋은 점”을 생각해 보면 공히 그러하다. 각종 기업 본사와 병원에서부터 관공서, 영화관, 큰 교회, 버거킹에 이르기까지 온갖 편의시설과 좋은 것은 죄 서울에 몰려 있다. 서울의 땅값, 서울의 가치는 온전히 이 ‘서울됨’에 근거하고 있으며, 경기도 각 지역의 땅값과 가치는 바로 이 서울에 얼마나 빨리 제 시간에 접근할 수 있느냐(만)를 기준으로 오르고 내린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畿’ 자체가 온전히 “수도 주변의 땅”을 뜻하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경기도(京畿道)는 그 태생부터가 서울에 의존하는,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서울의 밀집과 팽창을 소화하는 기능을 하는, 따라서 ‘서울’의 ‘서울됨’을 강화하는 지역 구분 체계이다. 이런 체계, 이런 관점, 이런 여건을 그저 주어진 것으로만 믿고 받아들이고 살자고 하면, 경기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서울에 대한 선망과 열등감과 피해 의식이 비밀히 섞인 무언가를 품고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억하심정은 기어이 서울로 이사를 가야만 해결된다. 지금 사는 곳은 마지못해 사는 곳이고, 자기는 서울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나그네 신세거든.

마치 SKY 입학을 못해서 마지못해 다른 대학에 입학해 반수를 할까 말까 하다가 어영부영 못 하고 애매한 전공 애매한 점수로 학사 졸업하는 처지와 비슷하다. 이들도 물론 입시생 때는, 대학생 때는, 취준생 때는 SKY 들어간 이들을 질시하거나 자기(의 부모)를 탓하거나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일단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적당히 잘 살게 되면, 그 경멸감과 박탈감은 누그러들곤 한다. 요컨대,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게 되면, 특정 대학에 들어간다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 부동산을 갖는다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은 세상 역시 올 수 있는가? 아마도 그렇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부동산이, 서울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게 되면 그만이다!

더 주절댈 거 없이 이쯤에서 요점만 쫙 풀고 본론을 끝내 버리겠다. 필요한 것은 서울 중심 국가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다. 일단 경기도 각 시군은 각자가 괜찮은 일터, 괜찮은 동네, 괜찮은 상권으로 독립할 생각을 해야 하고 (과천과 성남이 그렇게 하고 있다. 다른 곳은 아예 그게 불가능한가?) 무엇보다 그곳들이 각자의 가치와 편의가 있는 곳이어서 굳이 서울로 종속적 연계를 할 필요가 없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하남시에 지하철이 그간 안 들어왔던 것은, 어쩌면, 하남시는 그간 그 규모에 맞는 자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 하남시 경제인구 전원이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었다면, 서울시가 불편해서라도, 진작에 뭐라도 뚫렸지 않았겠는가?)

경기도뿐이 아니다.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심지어 저 아래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울이 필요 없는 OO시, 서울 부럽지 않은 XX군으로 거듭나야 한다.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공허한 구호로 그치는 “지역 균형 발전”보다는 이게 백배 더 구체적인 제언일 것이다. 그리고 OO시와 XX군에 거주하는 이들마다 바로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 서울에 있는 직장과 병원과 학군 때문에 서울로 이사 가고 싶다고? 그래서 당신 한 명 서울로 홀랑 이사 가버리면, 그걸로 당신 동네의 그 문제는 해결되는 건가? 그걸 당신네 동네에 들여오도록 국회의원과 상인회를 갈군 다음 거길 다니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그러면 지금 사는 당신 집값은 무조건 오를 거 아니냐고.

뭣도 모르는 소리 한다 싶을지도 모른다. 글쎄 근데 그거는 아직도 ‘이 나라는 서울 아니면 안 된다’, ‘강남은 안 내려간다’ 굳게 믿는 당신만 하겠나.


Think Outside Seoul Please

여기까지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내가 왜 이런 맹랑해 보이는 이상론을 펼치는지 이해는 하실 것이다. 그러나 첫 두어 문단을 읽고, “아 이거 나 보라고 썼는데 아주 내 속을 긁으려고 작정한 글이구나” 파악하신 분들은 이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실 것이다. 혹은, 갓 대학 들어간 새내기를 바라보는 연로한 교수나 조교 대학원생의 눈빛으로,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고 안타까이 여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난 당신이 안타깝다.

당신 앞에는 통계포털 검색 결과가 말해 주는 냉엄한 현실이 놓여 있다. 당신이 서울 특정 지역 당신이 원한 그 아파트에 골인할 가능성보다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처음부터 그 사다리는 거기 닿을 수 없는 셈이다. 왜? 당신과 비슷비슷한 길이의 사다리가 똑같은 난간을 향해 걸쳐지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그 난간은 너무 좁고, 그 사다리들은 너무 많은 탓이다.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은 그 위험한 난간을 넓히거나 낮춰 보려는 어쭙잖은 시도, 또는 ‘난간이 좁으니 충분한 사다리를 가진 이만 올라오라’ 하는 신호의 전달이다. 그리고 그 난간 아래에는 남의 사다리 위에 자기 사다리를 걸쳐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그거 따라하다가 다같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지옥도를 그리고 있다. 이게 사는 거냐?

거기 올라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자. 서울이 그냥 서울일 뿐인 세상을 요구하자. 지금 사는 곳이 정말로 서울 부럽지 않은 훌륭한 도시, 어엿한 내 고장이 되는 날을 상상하자. 애초에 대부분의 국가는 여러 도시 위주로 골고루 발전하며 딱히 수도라고 해서 모든 게 과다 집중되지 않는다. 국가 전체가 한두 도시에 의존하며 그 도시의 땅값에 목매는 경우래봐야 뉴욕이나 도쿄 정도인데 다들 드물고 부자연스러우며 악한 경우이다. 왜 서울의 집값을 잡아야 하는가? 왜 서울 집값을 걱정해야 하나? 그놈의 서울 얘기 좀 그만 하면 안 되는가? 사대문 안에 못 살아서 한이 맺힌 귀신이라도 단체로 씌었냐 말이지?

지금 서울 밖이 얼마나 황폐한지, 이게 나라 꼴인지,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게 사실은 무엇인지, 그게 꼭 서울에만 해당되는 사안인지 그런 걸 좀 논의해 보면 어떨까? 싫다고? 죽어도 서울로 가야겠다고? 그럼 뭐 더 할말 없지. 종묘를 밀고 선정릉을 갈아엎고 국립현충원을 재개발하자고 나서라. 당신이 꿈꾸고 모두가 꿈꾸는 그 소박한 꿈을 이뤄 주자면, 정말 그 수밖에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