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차오른다, 가자
장기하와 얼굴들이 해체를 선언했다. 2008년 싱글 [싸구려 커피]를 들고 데뷔한 지 무려 10년 만이다. 팬들에게는 어쩌면 꽤 갑작스러운 결별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해체이기 때문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언제까지나 음악을 통한 실험과 놀이를 보여줄 것만 같았던 팀이었다.
그들은 18일 0시 해체를 선언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문장은 담담했다. “곧 발매될 5집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겁니다. 앨범 발매 후에는 올해 말까지 콘서트 등 여러 경로로 부지런히 여러분을 만나게 될 거예요.”
오랜 준비를 한 듯 보였다.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희들은 언제나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런 결정 역시, 또 다른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만류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이들의 활동을 지켜봐 왔던 팬들과 동료들은 그저 숙연하게 감사와 찬사를 보낼 뿐이었다.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몰라
그래, 그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얼은 언제나 새로운 밴드였다. 1집은 이전에는 없던 음악이었다. 평단의 호평을 휩쓸었다. 데뷔와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산울림과 강산에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그들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이후의 앨범들도 마찬가지였다. 2집은 1집과 달랐고, 3집은 2집과 달랐다. 4집은 3집과 또 달랐다. 그들은 매 앨범마다 밴드로서의 진화와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은 ‘1인 밴드’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았던 1집 [별일 없이 산다]가 보여주지 못했던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설명해주는 앨범이었다.
3집 [사람의 마음]에서는 로큰롤을 키워드로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펼쳐냈다. 우울하고 어두운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 이별을 견디지 못해 슬퍼하는 마음까지. 4집은 진지하기보다는 재밌는 음악들이었다. 앨범의 타이틀과 동명의 곡인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부터 타이틀곡 ‘ㅋ’과 ‘괜찮아요’, ‘빠지기는 빠지더라’ 같은 곡에는 작사가로서의 장기하가 얼마나 뛰어난지 감탄하게 된다.
10년이 아무리 짧아도 어떻게 잊혀질 수가 있나
이런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곧 발매될 5집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겁니다. (…) 그리고 2019년의 첫날을 기점으로, 저희 여섯 명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팬들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선언이었다.
그들은 해체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음반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될 거예요. 그건 다르게 말하면, 이제 장기하와 얼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가장 멋진 모습일 때 가장 아름답게 밴드를 마무리하기로, 저희 여섯 명은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이것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기에 그만하겠다는 말이다.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이야기이다.
쉬운 결정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모든 멤버에게 말이다. 위에도 말했듯, 그들은 매 음반마다 변화를 보여주려 애썼다. 하지만 한 뮤지션이 해낼 수 있는 변화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마 장기하와 얼굴들이 ADOY나 BYE BYE BADMAN, 실리카겔의 음악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들이 하고 싶어 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팬으로서는 아쉽지만, 아마 그들의 판단과 의견을 존중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팀 해체에 노련한 팬들이 어딨나요
장기하와 얼굴들은 ‘2세대 인디씬’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크라잉넛, 노브레인과 자우림, 언니네 이발관 이후 카우치 사건 이후 괴멸되어 가고 있었던 인디 씬에 나타난 단비 같은 존재. 장기하와 얼굴들과 비슷한 시기 데뷔한 검정치마와 국카스텐, 10cm와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밴드들을 대표할만큼 음원과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후세대 밴드들에게 레퍼런스가 될만한 작업물들을 내놓는 밴드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는 ‘2세대 인디씬’ 역시 조금씩 저물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는 누구일까. 아직 보이지 않는다. 새소년과 파라솔, 혁오와 카더가든, 치즈와 윤딴딴. 볼빨간 사춘기와 라이프앤타임. 인디씬에서 저마다의 영역을 확장해가며 개성 있는 음악을 보이는 뮤지션은 많지만 시대를 이끌고 있다거나, 시대의 상징이 될만한 음악을 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조급해할 필요 없다. 말했던 그 ‘세대’가 끝나버린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국카스텐은, 10cm는, 브로콜리 너마저는, 검정치마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동시에 매해 새롭게 이전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나오는 뮤지션들이 데뷔하니까 말이다. 그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멋진 음악을 들려주길 기대한다.
더불어 장기하와 얼굴들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린다. 최고의 음악이 무엇일지 상상하면서, 상상을 뛰어넘을 무언가가 나와주길 바라면서. 그렇다고 그들의 해체에 노련해질 수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