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욕설은 내 시선이 없었으면 그냥 끝까지 다 나왔을 것이다

“와 정신병자ㄴ”


와 정신병자ㄴ

감자탕집 TV에서 보도되는 PC방 살인사건을 보며 한창 수다를 떨던 그 공무원은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나를 힐끔 쳐다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짧은 실소를 내뱉었다. 감자탕을 다 먹고, 아무 일도 없었단 듯 공무원을 도와 마을 행사를 진행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두통이 시작됐다. 다음날까지 두통이 낫지 않아 연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공무원이 말을 끝마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옆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는 나와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는 우울증 환자다. 그는 10년 간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나 또한 같은 우울증 환자다. 2년 가량 약을 복용하고 있고, 군 생활 부적합 판정을 받아 동사무소에서 사회복무요원(이하 공익)으로 복무 중이다. 아직까지 동사무소에 복무하면서 사람을 죽여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공무원이 피의자를 정신병자로 부르던 그때, 나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칼로 32방 찔러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공무원은 대화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냈고, 그것이 편견에서 비롯된 말임을 깨닫자 이내 발언을 중지했다. 이게 단지 이 사람 한 명의 특수한 사례일까. 이는 차라리 한국 사회가 정신병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전형적인 예시에 가깝다. 이성적으로는 정신병자와 살인자를 구분하지만, 그들의 이성보다 더 가까운 사회의 관념은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자를 후자라 부르기를 택해 버리는 것이다.

분명 학교에서는 편견과 차별의 문제점을 착실히 가르치며, 폭력 행위와 정신이상이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란 것은 논리적으로도, 통계적으로도 입증되었고 이 사회 역시 이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정신병자”는 욕설로 통용된다. “너 정신병 있냐?”는 말은 기존 관념과 다른 행동을 하는 대상에게 비하의 의미로 쓰이지 않는가. 정신병자를 혐오하는 문화가 이 땅에서 이렇게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거라고 설명하지 않으면, 달리 이 이중성을 이해할 방법이 있을까.


나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몸에 증상이 나타난다. 여러 증상이 발현되는데 그 중 하나는 두통이다. 직장 상사의 말 한 마디,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각종 혐오 발언에 노출된 나는 다시 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나서도, 잠을 자고 나서도, 게임으로 시간을 때우고 나서도 두통이 가시지 않아 결국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다들 추임새처럼 내뱉고 지나가는 욕설이었겠지만, 남들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잘 생활하던 누군가는 고스란히 하루를 망치고 만다.

‘정신병자’와 같은 맥락의 단어로 ‘씨발년’, ‘병신’, ‘홀애비자식’, ‘고아’, ‘장애인’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이거나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단어다. 그들이 가진 정체성 자체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너무나도 쉽게 ‘가해자’와 ‘사회적 약자’를 등치시킨다. 그리고 그 등치의 방식은 “와 정신병자 놈 아냐 저거” 같은 말을 하다 마는 것만큼이나 ‘그럴 수도 있는’ 일이어서, 설령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이를 배상해줄 사람은 찾을 수 없다. 물론 그 고통을 감당하는 건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다.

대체 왜 매번 그래야 하는 것일까. 이 사회는 이를테면, 눈 두는 곳마다 정신병자가 번히 쳐다보는 세상이라도 되어 줘야, 그제서야 누군가를 기어코 정신병자라고 애써 ‘욕’하기를 그만둬 줄까? 피차 그냥 살아가는 것만 해도 너무 벅찬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