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대해 유감


1인 4표에서 7표 투표에 당선자만 4,117명. 지방선거는 투표용지 수나 당선자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 내가 할 얘기는 불만과 유감 투성이인 게 함정이지만.

낮은 투표율

50.9%. 국민 절반이 투표소로 나서지 않았다. 또한 모든 사람이 월드컵에 미쳐있던 나머지 투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2002년 3회 지방선거(48.8%) 다음으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동시에 4년 전 선거(60.2%)보다는 10%p 가까이 떨어졌다.

원래 3대 선거(대선, 총선, 지선) 중에 지방선거에 제일 관심이 없다, 청년들이 투표장에 덜 나왔다, 광주 투표율이 낮았다, 대선 3개월 뒤에 치러지는 선거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투표에 덜 관심을 보였다…

이유가 참 많지만, 어찌되었던 간에, 정치에 무관심해지거나 혐오하는 대중이 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투표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적인 정치 참여 수단이다. 이걸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만큼 정치 무관심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3개월 전 대선에서 투표율 상승 추세가 정점을 찍더니, 이번 지방선거는 10년 가까이 이어지던 투표율 상승 추세가 꺾이고야 말았다. 민주화 이후 투표율은 첫 대선(89.2%)과 첫 총선(75.8%) 이후로 떨어지기만 했다. 그것이 가장 극에 달했던 건 이명박 정권 전후인 2007년과 2008년. 그 뒤 하락 정점을 찍고 다시 반등하는 모양새를 보였는데, 그 흐름이 다시 뒤집힌 것이다.

국민 모두가 경계해야 하지만, 정치인들은 정당을 떠나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투표율이 낮아지면, 투표로 선출되는 당신들의 정당성도 떨어지니까.

제6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치러진 선거의 투표율이다. 파란 막대는 대통령 선거, 노란 막대는 국회의원 총선거, 빨간 막대는 전국동시지방선거다. 투표율이 2000년대 중후반을 최저점을 찍다가 반등한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 선거에서는 투표율 상승세가 주춤하거나 폭삭 내려갔다.

단체장은 장기말?

광역단체장은 장차관급 예우를 받고, 인구 수 백 만 명이 오롯이 그 한 명을 향해 투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다. 그래서 보통 판세를 판가름할 때는 광역단체장을 위주로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방선거 승리라는 거대한 명분이나 개인적 이유로 이름값 높은 사람이 연고 없는 지역에 출마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인천 지역구 국회의원 5선에 인천시장도 했던 송영길이 서울시장에, 평생 대구에서만 정치 활동했고 대구를 안 벗어날 거라던 유승민이 경기지사에 도전장을 던졌다. 전 경남도지사 홍준표는 중앙 정치인은 실패하면 하방해야 한다는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남기고 대구시장하러 갔다. 충북지사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충북에 별 연고가 없고 서울에서 정치 활동을 했던 김영환, 이혜훈, 나경원에게 출마를 저울질했고, 김영환은 그렇게 도지사가 되었다. 이런 흐름에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한 전 경기도지사 이재명도 연고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이걸 보는 나는 마치 장기판에 장기말을 턱턱 두듯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명 지방선거는 지역 풀뿌리 일꾼을 뽑는 자리라고 선관위고 언론이고 떠들어댔는데 그 구호는 안중에도 없었다. 장군 멍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지역 사람이 지역 일꾼을 뽑는다는 원칙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장군 멍군을 외쳤던 정치인들이 법으로 다 정해두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등록지를 자기가 당선한 지역 바깥으로 옮기면 자동 퇴직된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는 외국인들도 영주권을 얻은 뒤 그 지역에서 3년을 살면 투표권을 얻는 반면, 선거일 기준 해외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투표권이 없다.

지방 선거는 어느 선거보다도 국민 대신 지역 주민을 강조하는 선거다. 이름값 내세워 출마한 사람들, 그걸 내버려 두거나 때로는 부추겼던 정당들은 주민 주권과 주민 자치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울어진 운동장

거대양당의 벽은 여전히 견고했다. 광역 의회와 기초 의회 당선자 중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소속 후보가 차지하는 비율은 95%에 달한다. 정의당과 진보당을 제외하고는 어떤 소수정당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이쯤에서 제도 탓을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지방의회 비례대표는 지역구 정수의 10% 이내로 정해진다. 국회의원 비례대표가 차지하는 비율(15.67%) 보다도 적다. 서울이나 경기도는 인구가 워낙 많아서 비례대표를 10명 넘게 뽑기라도 하지 대개는 한 자릿수고, 시골에서는 고작 한 명 배정되는 것이 전부다. 덕분에 정의당과 진보당은 봉쇄조항 득표율 5%를 넘겼는데도 한 석도 얻지 못한 지역이 많다. 의회 내 다양성 보장과 소수자 진출이라는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이루기 어렵다.

소수정당이 꾸준히 주장했던 기초의회 3~5인 선거구제는 253개 국회의원 선거구 중 11곳에 시범 적용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기초의회 선거구를 소선거구제로 바꾸자고 주장할 정도로 선거제 개편에 반대한 국민의힘을 겨우겨우 설득해서 선거 30여 일 앞두고 얻어낸 결과물이다. 선거구가 뒤늦게 정해지면서 기초의회 선거구 24곳 중 8곳은 제3당 후보자가 없었고, 양당은 기어이 5인 선거구에 5명 다 공천할 정도로 공천을 남발하면서 109석 중 105석을 자기들이 먹어버렸다.

지역정당 문제도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호남당, 영남당 같은 지역주의 투표 행태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역민 의견을 전폭적으로 대변하고 특정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정당말이다. 외국에서는 지역정당이 국회까지 진출할 정도로 많이 있는 것에 반해, 한국에서는 그런 정당을 만들 수 없다. 중앙당은 무조건 서울에 두고, 시도당을 다섯 곳 이상 갖춰야만 정당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서울 영등포와 은평, 경기 과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지역정당을 꾸렸지만, 출마는 끝내 무소속으로 하거나 포기해야 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 비례대표 인원 늘리기, 중대선거구 출마 인원을 정당별로 제한, 광역 의회 선거구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 지역정당 허용 등. 문제는 양당이 장악한 국회가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다.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과천시민정치당, 은평민들레당, 직접행동영등포당이 창당했으나 정당법상 제약으로 후보자를 내는데는 실패했다. 지역정당들은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정당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사진 출처 = 직접행동영등포당 페이스북)

소수정당 희망편, 절망편

정의당이 폭삭 망했다는 소식이 사방팔방에 퍼졌다. 국회 3당 주제에 당선자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의당은 이런 소리라도 듣지만, 당선자를 하나도 못 낸 다른 소수 정당은 살아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소수정당 당사에는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소수정당이 살길은 어디란 말인가? 마침 진보당과 정의당의 희비 쌍곡선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진보당은 지난번보다 당선자 수를 배 이상 늘린 것은 물론, 11년 만의 진보정당 기초단체장 탄생이라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정작 정당 득표율은 그 기세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의당에 앞선 곳은 단 한 곳도 없었고, 광역 단위 정당 득표율은 호남과 제주, 울산을 제외하고 0%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8년 선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왜 그런지 짐작은 간다.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종북 논란, 정의당보다 더욱 급진적인 이념 노선 때문일 것이다. 이 상황을 이겨낸 힘은 지역 기반과 정치인 자신의 개인기였다. 농민과 노동조합 조직 노동자가 많은 호남, 울산에 진보당은 제법 공을 들였다. 오래전부터 조직을 가꿔왔고, 그들이 가꾼 지역에 후보자를 집중적으로 공천했다.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초의원을 중점적으로 출마시켰고, 후보들은 나름 지역에서 활동한 가락이나 이미지를 활용해 당선을 얻어냈다.

정의당이 몰락한 원인은 굉장히 복잡하니 이 상황으로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낮은 투표율과 여당 압승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당 지지자 중에는 투표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고, 출구조사를 보면 2030 투표율은 다른 세대보다 현저히 낮았다. 이들은 어쨌든 정의당에 표를 줄 가능성이 다른 계층보다 높으면서 민주당에 상당히 실망한 사람들이다.

정의당은 이들이 정의당을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이도록 대응했어야 했다. 하지만 양당 정치 타파를 외쳤을 뿐 그들이 주장하는 대안은 무엇인지 충분히 와 닿지 못했고, 이념과 노선은 갈팡질팡 그 자체였으며, 당내 분란도 적잖이 있었다. 그래서 정의당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고, 그들은 투표를 포기했다. 그들을 사로잡지 못한 결과는 정의당 후보자의 낙선과 정의당의 위태로운 입지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자를 낸 소수정당은 진보당과 정의당 둘 뿐이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두 당이 많은 의석을 얻었고, 진보당은 울산에서 기초단체장을 배출했다.

풀뿌리 정치 강화라는 이상, 중앙 정치에 휘둘리는 현실

지방에서는 종종 지방자치 무용론이 흘러나온다. 지역 언론에서 기초의회 정당 공천제 폐지 같은 정당 정치를 부정하는 주장부터 기초의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급진론(?)이 대놓고 나온다. 국회가 아무리 무능하다고 해도 언론에서는 국회 폐지론을 외치지 않는데 말이다. 그만큼 지방정치와 지방선거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뉴스에서 지겹게 듣던 소리를 이번 지방선거 이후에도 또 듣게 생겼다. 지방정치와 지방선거에 무관심한 국민은 오히려 늘었고, 지역의제가 아니라 윤석열 정권 심판론과 정권 지지론이 지방선거판을 뒤흔들고, 양당 중앙당은 지역 후보자에게 깊숙이 개입하며, 소수정당이 살아남을 토대는 아직도 척박하다.

이번에도 결국 지역 없는 지방선거를 되풀이 하고 말았다. 이건 분명 심각한 문제다. 지역 사람들이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방자치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걸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겹겹이 쌓인 이 문제들을 해결할 날이 오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