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와 시대유감 삼풍, 방송이 재난을 다루는 전혀 다른 방법

이래도 안 울어? 이래도 화 안 나!


연령 고지 지나고 한 5분은 지났을까? MC와 게스트가 사뭇 진지한 분위기로 몇 마디를 나누다 게스트가 갑자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분노도 함께 나왔다. 출연자들은 분노를 쏟아 냈고, 모범생 이미지였던 한 남자 가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욕을 내뱉었다.

그 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가 다룬 주제는 다름 아닌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유치원생만 19명이 숨진 참담한 사건이었다.

그걸 보며 나도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요동쳤다. 처음에는 당혹스럽다가 나중에는 불편하고 불쾌했다. 채널을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방송은 다른 사람이 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난 이어폰을 귀에 깊숙이 꽂고서는 등을 돌려버렸다.

TV에서 한없이 쏟아지는 감정들이 나를 마비시키는 것 같아서 그랬다. 방송으로 다뤄질 만큼의 참사는 대개 건조한 글로 봐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방송은 굳이 감정과 자극적인 말들로 사건에 양념을 듬뿍 쳤다. 우는 모습, 욱하는 말투, 삐 처리는 됐으나 욕하는 모습을 집요하게 잡아줬다.

덕분에 이 사건에서 내가 느껴야 할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고, 왜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곰곰이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마 이것이 영화였다면 ‘신파’라는 비판을 제법 많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재난과 참사를 감정적으로만 대하는 것이 정말 최선인 걸까? 재난과 참사는 슬픔과 울분이 얽힐 수밖에 없지만,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 모던코리아’ <시대유감, 三豊(삼풍)>은 오늘로부터 딱 27년 전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화질은 썩 좋지 못하지만, 아수라가 된 그 현장은 생생히 담겨 있다. 뭔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잔해만이 있었고, 사람들은 넋이 나가 우두커니 지켜보거나 안타까움에 울먹였다. 그들 사이를 헤치고 인상 좋은 아저씨가 그날을 회상한다. 카메라가 비춘 사람은 이한상, 당시 삼풍백화점 사장. 내 기억으로 재난 소재 콘텐츠에서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이 등장 인물 중 맨 처음에 등장하는 건 이게 처음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뻔뻔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라는 생각에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알고 보면 이 사람만큼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다큐는 그 뒤로 자꾸만 시점을 뒤로 돌려 1960년대로 돌아간다. 그때 한국, 특히 서울 강남은 삽질이 한참이었던 시절. 한국이 고도성장하는 모습을 비추고 삼풍이라는 기업이 어떻게 커졌는지를 톺아본다. 근데 왜 재난 얘기를 하려다 근대사 얘기를 하냐고? 그것이 이 다큐멘터리가 의도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방송국 ‘한국방송’에는 그 역사만큼이나 정말 많은 영상 자료가 있다. 그 자료를 선별하고 편집해서 근현대 한국을 상징하는 사건이나 존재, 개념 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 모던코리아’다.

참사와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삼풍백화점 참사를 만들었다. 경제성장으로 보릿고개는 사라졌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생긴 부작용은 피할 수 없었다. 개발만능주의, 천민자본주의, 안전불감증, 정경유착, 빈부격차 등 지금 이 순간에도 깨끗이 청산했다고 선뜻 말하기 어려운 것들 말이다. 다큐멘터리는 철거민과 성수대교 붕괴 등 구체적인 부작용 사례들을 차근차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삼풍백화점이 정말 개인의 탐욕에 의해서만 무너졌을까?

삼풍백화점은 무너진 이후로도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 무책임과 무체계다. 구조대원들은 통제와 휴식이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실종자를 수색했고, 응급실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병원은 받아내야만 했다. 건축물 안전진단에서는 90%에 가까운 건물들에 보수가 필요했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표준과 법규가 제정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나마 체계는 세웠으나 무책임으로 인한 유족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참사 현장에 얼굴을 비추면서도 정작 유족들을 한 번도 만나주지 않은 김영삼 대통령, 시간이 갈수록 사건 수습에 미온적인 정치권의 행태, 건물 무너진 자리에 아파트를 짓겠다며 사건 현장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위령비를 세운 서울시 당국의 무심함에 분노한다. 사건의 또 다른 책임자, 정부는 유족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제대로 사과하고 위로하지 않았다.

서울 양재시민의 숲에 위치한 ‘삼풍참사 위령탑’은 사고 현장으로부터 직선 거리로만 4km 넘게 떨어진 곳에서 있다. 사고 현장은 대통령도 사는 고급 아파트로 변신했다.(지도 출처 = 카카오맵)

무책임한 수습은 가해자에게 피해 아닌 피해를 주었다. 언론은 경영진이 붕괴 직전 도주했다는 소문, 오늘날로 치면 허위 정보를 뿌려댔다. 하지만 경영진은 그때까지 대책 회의를 (운 좋게도) 붕괴되지 않은 공간에서 이어가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이 부분이 허위 정보였음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가해자를 위해 다큐를 만들었냐고 생각하겠지만, 물론 아니다. 단지 그것이 사실이었을 뿐이다.

가해자와 유족 간 만남, 그리고 용서와 화해. 재난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다큐는 진지한 태도로 그것을 해내려고 노력한다. 막판에는 가해자와 참사를 증언하기 위해 나온 유족을 번갈아 노출하며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어쩌면 30년 가까운 세월에 유족과 가해자가 만난 셈이다. 화면 너머 가해자가 눈물을 흘리며 사죄할 때, 유족은 그의 사죄를 받아들이고 눈물을 흘린다. 삼풍백화점 참사뿐만 아니라 재난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뇌리에 남지 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시대유감 삼풍은 재난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고, 우리는 참사를 어떻게 수습했고,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말하려고 한다. 그리고 가해자도 이 사건에 대해 잘못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해자와 유족 간 화해하는 모습도 연출함으로써 재난의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KBS가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적인 영상 구성, 쓸쓸함과 건조함을 느낄 수 있는 배경 음악, 방대한 양의 당시 영상을 보기 좋게 꾸민 점(이걸 장르로는 푸티지 다큐멘터리라고 한단다.) 내레이션이 없는 대신에 사건 당사자 여럿의 생생한 증언과 당시 현장 소리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점 등도 내 마음에 들었다. 재난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잘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재난을 소재로 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시대유감 삼풍처럼 만들 필요는 없고, 따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단지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재난을 감정적, 자극적으로만 소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MBC <심야괴담회>는 꼬꼬무처럼 화성 씨랜드 참사를 다루다가 논란이 되었다. 꼬꼬무는 명목상으로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라지만, 심야괴담회는 공포와 괴담을 다루는 ‘예능’ 토크쇼 프로그램이다. 현실 사건을 괴담으로 취급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의식이 있었고, 재연 과정에서 참사를 부적절하게 묘사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유가족 측에서 항의한 끝에 제작진은 사과해야만 했다.

MBC <심야괴담회>는 씨랜드 참사 편에서 사건 현장 보존 임무를 맡은 의경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내용과 재연 장면에서 무당으로 분한 연기자가 나와 피해자의 혼을 달래줘야 한다는 대사를 그대로 내보내 논란이 되었다. (자료 출처 = 문화방송)

논란을 무릅쓰고 방송국들이 감정과 자극으로 범벅된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이유를 돈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SBS는 꼬꼬무 이전에도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등을 만들어 냈고, 얼마 전까지 꼬꼬무 전날 비슷한 시간대에 <당신이 혹하는 사이>라는 음모론 소재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시간대나 주제가 조금씩은 다르지만은, 때로는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로 사건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나와 사건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해석하거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이에 따라 2049 시청률이 높아 광고가 잘 팔린다는 점에서 차이는 없다.

제작진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사건이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만들었다고 말한다. 어쩌다 한 번씩은 그들의 의도가 들어맞을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가 안타깝게도 훨씬 많다. 거대한 사건과 재난은 이 땅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이야기와 감정에 시달린다. 이럴 때 망각이라는 고약한 것은 나와는 별 상관없는 한낱 이야깃거리가 된 재난을 빠르게 뇌 속에서 지운다.

재난은 감정적으로만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은 사건 해결을 위한 원동력일 수는 있어도 그것 자체가 사건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재난은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대개는 우연과 개인의 잘못과 사회 체계/구조의 모순 등 다양한 원인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재난은 가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가해자가 그런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둔 주변 사람과 사회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방송은 이런 어렵고 고된 일을 할 수 있는 집단이자, 그런 의무가 있는 집단이고, 그걸 해내도록 기대 받는 집단이다. 꼬꼬무는 그것에 소홀했고, 시대유감 삼풍은 그것을 충실히 수행했다.

+ 시대유감 삼풍에서 나온 영상적 특징과 연출 기법, 분위기 등은 ‘모던코리아’ 시리즈 전반에서 느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주요 사건과 개념들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싶다면 시리즈 전체 시청을 추천한다.

이 시리즈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례적으로 시청자 요청에 의해 재방송 될 정도로 화제를 모은 ‘서울 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88/18>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스포츠국’ PD 이태웅은 대중에 이름을 알렸고, 이를 계기로 모던코리아 시리즈를 연출, 지휘하게 된다. 모던코리아 전편을 볼 수 없다면 이거라도 보기를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