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만큼 집권 전후 거짓말 논란에 시달린 대통령도 없다. 2007년 대선에서 그가 꼬리표 마냥 달고 다닌 BBK/다스 문제는 대통령이 되면서 단순한 흑색선전으로 여겨졌다. 그가 내세웠던 공약 중 경제성장률 연 7%와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돌파, 세계 7대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한 ‘747’공약과 부산-서울을 물길로 잇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현실성 떨어진다는 지적에 이명박 대통령은 다 성공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집권 이후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 영업을 해댄 끝에 원자력 발전소가 아랍에미리트에 수출되고 외국 광산과 유전을 여럿을 사들였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그가 호언장담 했던 이야기들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진다.
그렇다면 미디어법(신문법, 방송법, 인터넷방송법 개정안)은 거짓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명박 정권은 미디어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한국 미디어 시장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말한 사업들보다 스케일은 작을지(?) 몰라도 우리나라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법이 만들어진지 10년이 된 오늘, 미디어법은 정말 미디어 시장을 발전시켰을까?
허풍입니다, 허풍! : 미디어법은 왜 만들어졌나?
당시 정부와 여당은 기존 미디어 정책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다가왔음에도 전통 미디어 매체 특성에 따른 규제 법규가 지속되었고, 방송(특히 지상파 방송)사가 상업성뿐만 아니라 공익성도 갖춰야한 데다 방송 산업 진입 장벽이 높아서 산업구조가 경직되고 방송 시장이 위축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법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미디어 시장의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대기업이나 기존 신문사가 보도전문채널이나 종합편성채널, 지상파 방송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 대규모 자본이 방송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케이블 방송이라고 부르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rogram Provider, PP) 원래 채널마다 특정 주제를 방송하는데, 지상파 방송처럼 다양한 부문을 방송할 수 있는 종합편성채널을 신설해 한 채널에서 예능, 드라마, 교양, 스포츠뿐만 아니라 시사 보도 프로그램도 방송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관심을 받았던 건 과연 누가 종합편성채널 사업자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종합편성채널은 방송 송신 매체가 지상파냐 아니냐에 차이만 있을 뿐 지상파 채널과 위상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신문사들은 신문 산업의 지배력을 방송 산업에서 비교적 쉽게 이어 받을 수 있는 종합편성채널 사업권 획득에 더욱 공을 들였다. 결국 조선일보(TV조선), 중앙일보(JTBC), 동아일보(채널A), 매일경제신문(MBN) 등이 사업권을 따냈다.
이렇게 해서 미디어법이 제정되면 지상파 방송사나 일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ultiple System Operator, MSO | 여러 지역에서 PP를 중계하는 사업자를 말하며, CJ헬로/티브로드/ 현대HCN/딜라이브/CMB 등이 있다.)나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CJE&M, 티캐스트 등) 중심의 방송시장이 균형적으로 발전하고, 방송시장 경쟁이 활성화되며, 신문 방송 겸영 가능으로 콘텐츠 공유를 통해 콘텐츠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며, 신규 채널 등장으로 시청자 선택권과 여론 다양성이 증진되며, 미디어 융합이 활성화 되고 미디어 산업에서의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어 국내 방송사가 글로벌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등등… 헉… 헉…
거기에 경제효과 일자리 창출도 빠지지 않는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방송 규제 완화에 따라 연 26,000여명 일자리가 증가하고, 2조 9,419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한다고 했다. 특히 방송부문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취업 증가 효과는 2,508명에서 4,470명으로 예상되었다. 이렇게 듣기만 하면 미디어법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다 종북 세력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지만, 문제는 그들이 말했던 효과라는 것이 10년이 지난 지금 실현이 되었는가다.
검증의 쓰나미 : 미디어 시장은 정말 발전했는가?
종합편성채널은 겉보기에는 많이 성장했다. 종합편성채널이 본격적으로 가동한 2012년부터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까지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방송사업자 전체 매출은 2012년 12조 3,512억원에서 2018년 17조 3,039억원으로 연평균 약 5.71%씩 성장했고, 방송 시장 매출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2년 0.86%에서 2018년 0.91%로 상승했다. 그 중에서 종합편성채널 매출은 2018년 8,018억원으로 2012년 2,264억원보다 약 3.5배 증가하며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 성장률을 보였다.
시청점유율은 전체 텔레비전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총 시청시간 중 특정 방송사업자에 대한 시청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신문 방송 겸영 허용으로 인해 거대 미디어 그룹이 여론을 독과점 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한국방송공사를 제외한 방송사업자의 시청점유율이 30%를 넘었을 경우 방송 시간이나 광고 시간, 소유 등을 제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신문을 소유하는 방송사업자는 신문 구독률도 시청률로 환산해 합산한다. 지상파 3사는 2012년에 65.498%라는 높은 시청 점유율을 기록한 반면, 2018년에는 45.664%로 20% 감소했다. 반면 종합편성채널은 2012년 23.062%에서 28.179%를 기록했다. 이렇게 보면 종편이 지상파 못지 않게 많이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종편들은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 보인다. 급격히 오른 매출액에 비해 종편 업계가 순이익을 낸 적은 2017년과 2018년 단 두 해뿐이다. 특히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3,098억원과 1,286억원의 적자를 봤다. 많이 올랐다는 매출액도 방송 시장 전체 매출액 비율에서 5%도 되지 않는다. 방송 산업은 초기 시장 진입시 사업자가 대규모 장기간 투자해야하기 때문에 장기간 적자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출범 7년이 지나서야 업계가 흑자를 간신히 낸 것 보면 사업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각 방송사별로 살펴보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채널A를 2014년 이후 단 한 해도 영업 흑자를 낸 적이 없으며, JTBC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500억원 넘는 영업 적자 속에서도 투자를 꾸준히 한 결과 2017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그 때문인지 종편 중 JTBC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40%에 육박한다.
시청점유율에 있어서도 종편 사업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TV조선은 오히려 시청점유율이 0.5% 넘게 하락했고, 나머지 3사가 2% 정도 올랐다. 지상파 3사를 앞선 종편 채널은 JTBC가 유일하다. 참고로 보도 기능을 할 수 없는 PP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CJ E&M에 시청점유율이 앞서는 종편 채널은 단 하나도 없으며, 상승폭도 CJ E&M이 모든 종편 채널보다 높다.(2012년 9.168% ▶ 2018년 12.637%, 3.469% 증가)
정부가 강조했던 경제효과 중에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2017년 기준 종편과 종편 허가 당시 같이 허가된 신규 보도전문방송인 연합뉴스TV의 종사자수는 모두 합해 2,091명이다. 이중 MBN은 보도전문방송에서 종편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기존에 인력이 다수 있었고, 다른 채널들은 신입직원 못지않게 자사 신문사 내 경력직원을 방송사 인력으로 대거 활용했기 때문에 신규 고용 인원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종편 채널들이 종편만 아니라 다른 채널도 개설한 걸 고려해 홈쇼핑과 기타 PP를 제외한 일반 PP 전체로 범위를 확대해도 2017년(10,440명)이 2012년(9,092명)보다 1,348명밖에 늘지 않았다.
이런 매출 성적은 단순히 방송사가 투자를 잘 해서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종편은 출범 이후 신규 사업자라는 이유로 갖가지 특혜를 받았다. 가장 큰 특혜는 광고다. 현재 공영방송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를 통해 광고를 판매하고, 민영방송은 민영 미디어랩을 통해 광고를 수주했다. 하지만 종편은 2013년 12월까지 방송사가 직접 광고영업을 했다. 이를 통해 종편은 광고 판매 대행 수수료를 아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방송과 광고를 연계해 방송 같은 광고를 만드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방송법에서 규정한 보도ㆍ제작과 광고영업 분리 원칙을 정부가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또한 종편은 PP로 분류돼 중간광고가 가능하다. 지상파 3사는 최근 들어 한 프로그램을 1, 2부로 나눠 편성하는 방식으로 유사 중간광고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중간광고가 허용되지는 않았다.
또한, 채널 편성에 있어서도 여러 특혜를 누렸다.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SO와 위성방송사업자는 종편 채널을 의무적으로 전송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PP들은 공공성과 수익성을 고려해 채널을 배정해야 하지만 종편은 모든 지역과 송신 매체에서 지상파와 인접해 황금채널이라 불리는 15~20번 채널을 배정 받았다.
수많은 특혜를 누리지만 의무는 오히려 가볍다. 지상파는 전체 방송시간 중 80% 이상 국내제작 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하지만 종편은 40%만 넘으면 된다. 외주제작 편성 비율도 지상파3사는 방송사에 따라 24~40% 이상 준수토록 한 반면 종편은 아예 규제 자체가 없다. 정부는 거대 방송사에 매출액의 일정 비율로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을 부과하는데, 종편은 2015년까지 기금 납부를 유예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예상보다 저조한 경제효과보다 여론 다양성이다. 정부와 여당이 주장한 것과 여론 다양성은 오히려 축소되었다. 종편은 자사 신문사의 논조를 그대로 이어 받아 보수 때로는 극우 성향 의견을 여과 없이 대중에게 퍼뜨렸다. 뉴스 보도에서는 사실을 왜곡한 기사를 그대로 보도했고,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극우 논객들을 대거 기용하고 그들의 망언을 편집 없이 그대로 전달했다. 여기서 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이나 각종 세월호 음모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등이 펼쳐졌다. 이로 인해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심해졌다. JTBC가 손석희를 영입하고, SBS가 보도 논조를 보다 진보적으로 틀기 전까지 모든 주요 방송들은 정권의 나팔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보수 종편들은 문재인 정권과 관련된 각종 왜곡 보도를 서슴지 않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권이 말한 미디어법의 효과는 대부분 거짓말이었다. 종편 출범을 위해 법규를 바꾸고 온갖 특혜를 쥐어줬는데도 종편 채널들은 지상파 채널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미디어 시장 발전과 그로 인해 예상되었던 경제 효과들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종편 중에서 투자를 많이 한 중앙일보와 JTBC가 지상파에 대적할만한 방송사로 꼽히기는 하다. 다른 종편 채널들이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시사 보도 프로그램만을 편성할 때 JTBC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선보였고, 손석희를 영입해 시사 보도 부문에서 질적 향상을 추구했으며,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열리는 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하는 등 지상파와 대등한 수준으로 투자를 했으며, 결국 올해 시청점유율에서 SBS를 앞서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JTBC의 성장 사례를 지켜봤을 때 나머지 종편 채널은 지금과 같은 행태를 유지하는 한 미디어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어 보인다.
사실 미디어법의 효과라는 게 별로 없다는 건 이미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다. 애초에 미디어법은 보수 언론에 떡고물을 쥐어줌으로써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이 서로 공생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 언론 생태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 없이 강행 추진된 미디어법은 오늘날 긍정적 효과는커녕 언론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 미디어법 10년, 시청자는 그동안 황폐화된 언론 생태계에 살며 언론이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공공재라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고, 언론인들은 국민이 언론을 불신한다는 것만큼 언론에 무서운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더 이상 언론 민주화와 미디어법에 대한 고찰과 논의를 미룰 수는 없다. 그것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참고자료
『미디어법 개정과 우리나라 미디어시장의 변화』(나경원, 2009년)
『2018년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방송통신위원회, 2019년)
『2018년도 방송사업자 시청점유율 산정 결과』(방송통신위원회, 2019년)
『2017년도 방송산업 실태조사』(방송통신위원회, 2018년)
(※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만든 모든 통계 자료를 자세히 보고 싶다면 ‘방송통신포털’에 접속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