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도 부모가 있었음을 나는 잊고 있었다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아버지!


요즘 내 일과는 물리치료로 시작한다. 지난 여름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받히면서 생긴 후유증이 퇴원 뒤에도 가시지 않은 탓이다.

물리치료실은 침상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로 나란히 놓여 있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환자들은 물리치료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장비들을 이용해 치료를 받는다. 환자 상태는 다 제각각이다. 반면 맞은편 환자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고된 노동을 하느라 무릎에 탈이 난 어르신들이 무릎에 인공 관절 수술을 받은 뒤 재활치료하러 온 것이다.

물리치료실에서 ‘꺾기’라 부르는 이 치료는 30분 내내 기계 힘으로 무릎이 접혔다 펴진다. 듣기만 하면 참 쉬워 보이지만, 이식 수술은 관절이 일자로 굳은 채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안 꺾이는 무릎을 기계가 억지로 꺾기 때문에 환자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치료는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 일요일을 뺀 1~2주 동안 하루 두 차례씩 거르지 않아야 한다. 나는 당연히 해본 적 없는 치료지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참 지루하고 힘들어 보인다.

물리치료사들이 신중하게 치료를 진행한다고 하지만 예민하거나 엄살이 심한 환자들은 어쩔 수 없다. 그런 분들은 30분 내내 온갖 소리를 내며 시간을 보낸다. 끙끙 앓는 소리나 ‘아이고’, ‘아파 ‘같은 소리를 내는가 하면 30분 내내 우는 분도 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리를 내는 어르신들은 하나 같이 같은 사람을 찾는다. 말투나 어조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사람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와 ‘아버지’다. 처음 물리치료를 받았을 때는 그저 우연인줄 알았지만, 몇 달 동안 쭉 지켜봐도 어르신들은 어머니, 아버지를 많이 불렀다. 자식이 침상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사람들은 엄마와 아빠만 찾는다. 자식만 아니라 손주도 있으신 분들이 아마 이 세상에 없을 부모님을 찾는다는 것, 항상 우러러봐야 될 대상으로만 보였던 어른들이 아이처럼 엄마와 아빠를 찾는다는 것이 나로서는 생경한 풍경이었다.

어느 날 TV에서 송해 할아버지가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송해를 울린 사람은 이북에 있다던 어머니. 방송 내내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다 고향에 가서 전국노래자랑을 하고 어머니를 만나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뤄지지 못했다는 말에 그는 끝내 울고 말았다. 전국노래자랑에서 노련하게 사람들을 홀리던 할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아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르신들도 한때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그들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가끔씩 TV를 보면 지팡이 짚은 어르신들이 클 대로 다 큰 자식을 보며 ‘그래도 내 눈에는 자식들이 아직 애 같아.’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나는 침상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말의 의미를 한 번 되새겨본다. 어쩌면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본인들이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면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본인이 부모가 아닌 자식이었던 지난 나날들을 떠올리며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리치료실 내부. 나란히 놓여 있는 저 침상들이 무릎 인공 관절 수술한 사람들이 치료 받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