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하는 입장에서 펭수를 조금 고찰해 보았다

‘펭수 신드롬’을 한꺼풀 벗겨놓고 생각해 보자면


우리 회사는 주간 전사교육 시간이 있어서 매주 금요일에 뭔가 교육적인 걸 보고 형식적인 소감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주는 웬일인지 “펭수의 인기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비즈니스 트렌드 확보와 경쟁력을 제고” 운운하는 명목으로 15분간 인사과장님의 펭수 덕질이 이어졌지만, 이번에도 으레 그랬듯이 이런저런 의견들이 형식적으로 발표되는 형식적인 자리가 되었다.

이하의 내용은 거기서 발표할까 말까 하다가 정리도 잘 안 되고 어차피 형식적인 얘기가 될 거 같아서 접어놨던 내 의견이다.


변변찮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기획으로서의 펭수는 꽤 전략적, 경제적으로 실패 가능성을 차단해 놓고 시작한 영리한 게임에 가깝다. 콘텐츠 소재, 그 제작 예산 등의 스케일은 말도 안 되게 적은 반면 노리는 것은 “BTS”니 “KBS”니 하는 식으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고집하는 패턴이란 기본적으로 흥미롭다. 아무도 모르는 “바로그찌라시”라는 것도 ‘바로 그 찌라시’를 목표한다면서 맨바닥에서 시작했을 때 나중엔 결국 뭐든 되었었다. 하물며 EBS를 뒤에 업고 있는 펭수야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존재 자체의 매력까지 합쳐지면 대중의 호응이라는 건 거기서부터는 따놓고 가는 거다. 이건 카카오프렌즈 라이언의 사례를 보면 분명하다. ‘갈기 없는 사자’ 어쩌고 하는 컨셉은 있었지만 다들 아무도 그런 거 신경 안 썼다. 그냥 그 무표정 아닌 무표정과 뚠뚠한 행동거지 — 사실 ‘쿠타’를 위시하여 과거에 얼마든지 팔려 본 적이 있는 패턴의 인물 조형이지만 — 가 좋은 것이었다. 별다른 서사도, 일부러 성공시켜야 하는 유머도, “위로”해주고 “공감”해줘야 할 타겟층 세대도 없는 라이언이 그렇게 흥행을 했으니, 심지어 그밖의 부가 요소를 번들로 달고 나온 펭수야 더 말할 것이 없다.

여기까지만 말하자면 너무 하나마나한 얘기니까 이제 그 부분을 짚어 보자. 타겟층 세대라는 요소. “권위에 마지못해 따르고 있는 2030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면서 특히 호응” 운운하는, 지구상의 모든 펭수 리포트마다 한 번씩은 다 나오는 설명. 이 설명은 과연 그렇게까지 요점 있는 분석인가? 왜 난 아닌 거 같을까?


다시 유튜브를 하는 입장에서의 얘기를 조금 해 보자면, 그래 나도 펭수처럼 뭐 하나 탈 뒤집어쓰고 대빵 나오란 소리나 하면서 좀 뻔뻔하게 굴고 굽힐 때는 공손히 굽혀 주면, 내 채널도 그 정도 인기가 생길까? 그럴 리가 없다. 1번 댓글이 ‘펭수 짝퉁’ 도장을 찍어주면 그 뒤로 무플과 싫어요가 이어질걸. “펭수 인기 분석”이 하등 아무 소용이 없는 이유이다. 그 “분석”이란 결국 현상의 결과, 겉면, 기획되고 제작되어 편집돼 공개된 부분으로만 수렴하기 때문이다.

아 네…

유튜브를 포함하여, 어떤 매체 비평을 하든지, 그 편집자와 제작자와 마켓을 고려하지 않은 비평은 근본적으로 공허하다. 제작해 보니 알겠거든. 항상 ‘이번엔 뭐하지 뭐하지’ 후달리는 제작자가 있고, 그래도 몇 안 되는 소비자들이 이걸 시청한 몇 분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게 해 줄 궁리를 하고 있는 편집자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무슨 생 난리를 어떻게 치든,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는 시장이 존재한다. 모든 매체와 그 속의 콘텐츠들은 이 역학 관계 아래 또는 주변에 있다. 펭수라고 절대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펭수는 그 역학을 성공적으로 레버리징한 사례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EBS는 딱딱하고 재미 없는 방송 만드는 곳이라는 (뭘 모르는) 인식이 시장에 (랄까 전국민에게) 흔들림 없이 박혀 있다. 그런데 EBS 캐릭터가 이렇게 건방지다고? 심지어 사장님 존함을 막 불러대? 하지만 펭수가 사장님 존함을 막 불러젖히는 그 장면이 전세계에 송출(?)되는 장면에 대한 기안지가 있었다고 한다면, 과연 그 기안의 결재선 맨 오른쪽에는 누구 이름이 적혀 있었을까? 김명중 사장님은 과연 그 에피소드를 보고 펭수가 괘씸해졌을까? (랄까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앞에서 괄호 치고 “뭘 모르는”이라고 했지만, EBS라는 제작자를 좀더 들여다보자면, 사실 EBS는 예전부터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어하는 요상한 유머 감각의 너드’에 가까운 방송이다. (졸작 ‘방송국 가시내’에서 이 품성을 묘사한 바 있다.) 그리고 그걸 그간 (다들 몰라서 그렇지) 잘 해 왔다. 뚝딱이, 뽀로로, 장기하와 얼굴들, 보니하니, 수학술사 세미, 모두 EBS가 초기 투자해 개발하고 모두에게 충공깽을 선사한 상품이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펭수 붐”이란, 요컨대 번번이 EBS의 너드력을 얕보던 이들이 한 번 더 된통 치이고 있는 덕통 사고 현장이다.

아 네… 2

그래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사실 펭수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애초에, 좀 씁쓸한 얘기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새로운 것이 있으면 사람들은 좋아하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속물같이 (또는 뭐나 있어 보이려고 애쓰는 관종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이 그렇다. 묘한 서브컬처적 인기가 있었던 보니하니를 해냈던 그 EBS다. 심지어 “선한 웃음” 하겠다면서 편집자와 제작사가 허용한 선에서 대들 수 있는 권위에는 다 대드는 컨셉으로 가고 있다. 이쯤 되면 인기를 못 끌기가 더 어렵다. 다시, 펭수는 성공적으로 전략적인 기획이다. 그것도, 매체와 콘텐츠라는 업계의 다이내믹스에 요령 좋게 지렛대를 갖다 끼운 기획.


자 지금까지 펭수의 인기에 대해 고찰해 보았으니 이로써 비즈니스 트렌드 확보와 경쟁력을 제고해 보자. 펭수처럼 되고 싶다면 뭘 해야 하는가? “우리 저번에 만든 그 동물 캐릭터 있잖아 뭐였지?”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나? 천만에! 오히려 슬슬 잊혀지고 있는 청주시청 채널과, 요즘 또 한 편 뜨고 있는 소련여자 채널이, 자이언트펭TV와 공유하는 공통점이 무엇인지 찾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대충 내 생각을 적어보자면:

  • 기본적으로 존재 자체가 콘텐츠임 (그냥 앉아만 있어도 재밌음)
  • 처한 상황 또는 존재의 전제가 그 자체로 얼마든지 예상이 가능한 하나의 권위임
    • 청주시 직원임
    • EBS 연습생임
    • 푸틴의 치하에 있음
  • 그 권위를 진심으로 개무시함
  •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는 봄 (여기서 비굴한 웃음이 나온다)
    • 남들 다 하는 거는 하려고 함
    • 사과해야 할 때는 빠르게 사과함

뭐 말고도 많겠지. 아무튼, 펭수의 캐릭터성 — 항상 같은 표정, 누가 봐도 인형탈인데 진짜 펭귄이라고 우기는 것 등등 — 에 시야가 가려져서는 안 된다. 펭수는 청주시청, 소련여자 류에 속한다. 그것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로 블록버스터를 제작하지 못하는 내가/우리가 어떡하면 이 유튜브 바닥에 안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이들이 가꿔서 얻은 열매이다. 그건 그렇게 쉽게 길러지지 않고, 정규 TV 방송이나 회사 제품 개발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재능과 전략과 감과 운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일이다.

빅데이터 AI에 의한 펭수의 인기도 예측분석 결과표
이런 “분석”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c) 스포츠경향

그런 업계는 많이 있어 왔다. 다시, 펭수는 새로울 게 없는 현상이다. 지금에 와서 좀 새롭다고 느껴지는 게 있다면 오히려 펭수를 시기하는 이들의 태도다. 예전에는 보니하니가, 장기하와 얼굴들이 그렇게 떴어도 그 인기를 분석한다거나 “우리도 저런 거 어떻게 좀” 하는 이들은 없었다. 펭수는 그렇지가 않다. 펭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유난히 다르다. 뭐랄까 좀 얕보이고 있달까? 펭수 에피소드 몇 편 보니 볼장 다 본 기분이 나는 것일까? 가독성이 좋은 것과 카피하기 쉬운 것은 천지 차이인 것을 왜들 모르는가? 기어코 짝퉁 소리 들어 가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겉만 따라한 거 몇 개 만들어 보고 대차게 실패를 하고서야 그 분석이 틀렸다는 걸 수긍하시려나?

매주 유튜브에 뭐 올릴지 고민하고 있는 입장에선 그런 거, 펭수를 둘러싼 주변의 분위기가 좀 안 좋은 의미에서 신선하다. 펭수가 만만해 보이는가 보다. 나로서는 그가 별로 신선하지는 않을지언정 무시는 못 하겠던데 말이지. 어쨌든 쟤 저러는 거, 다 김명중 빽 믿고 저러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