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 이변은 없을 것이고, 그 결과는 좀 썰렁할 것이다.

가장 보통의 선거


거의 정시에 출근을 했는데 회사가 퍽 썰렁하다. 아닌게아니라 점심 시간에도 구내식당 앞에 대기줄이 없다. 보아하니, “2차 집중재택근무 기간”에 맞춰 오늘 재택 근무중인 사람들도 있는 거 같고, 어차피 내일이 공휴일인 김에 앞뒤로 휴가를 붙인 사람들도 있는 거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오늘 회사로 출근을 한 팀원 전원이 근처 카페로 갔다. 부장님 한 분 대리님 한 분 그리고 나 해서 총 셋이다.

시답잖은 얘기나 오고가고 말 건가 싶다가도, 그래도 총선투표 전날이라고 막판에는 어느 정당이 어떻니, 지방에서는 농협 조합장의 위세가 어떻니 하는 퍽 진지한 썰이 썩 나온다. “미통당” 얘기가 나오길래 “자유당이죠 자유당”이라고 던져 보았고, 웬일로 그런 토스조차 알뜰하게 리시브가 됐다. “그쵸 자유당이죠. 근데 자유당 시절 자유당은 진짜 장난 아니었어. 엽토군 씨는 그 시절 아나? 말은 들어 봤죠?”

물론 그 시절을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겠는 일도 아니기는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정치는 정말 훤히 잘 보이고 간단 명료한 도식으로 정리돼 있어서, 술에 절어 있는 70대 “할배”라 할지라도 지하철 바닥에 주저앉아 논평할 수 있을 만치 알기 쉬운 것이곤 했다. 자유당계, 민주당계, 지역기반/이념기반 군소 제3정당. 이 가시성은 가히 신호등이나 시력검사판에 비길 만한 것이려니와, 실제로도 한국 정치에서 어떤 이념적 좌표를 견지하느냐는 고스란히 그대로 어떤 ‘색깔’을 띠느냐, 얼마나 한국 사회를 잘 꿰뚫어보느냐의 지표가 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정치적 환경이고 보면,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념/공약에 따라 투표한다는 소위 “매니페스토 기반 선거”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농담, 즉 그냥 한번 해보는 말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한국과 같은 정치 사회에서 정책이란 목적이 아니라 수단 − 정권 획득과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 행위 그리고 당지어 모인 사람들과 그 배후에 있는 지지기반의 이념과 욕망에 대한 − 인 것이다. “쟤는 빨갱이 너네는 노랑이 우리는 파랑이” 운운 원색적 구분이 가능하고 또 그 구분이 실제로 유효하게 실현되고 있는 신호등 같은 세계에서는, “이번엔 누가 멈춤 신호 역할을 맡을 것인가”가 중요하지, “이 빨간색은 얼마나 눈의 피로를 줄여주는 빨간색인가”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해지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이념적 지향뿐이다. 김규항 선생은 일찍이 2000년대 초입에 “비판적 지지가 어떻고 사표가 어떻고 할 것 없다! 진보에는 에누리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라고 갈파해두신 바 있지만, 글쎄… 굳이 한 말씀 더 보태 올리자면 사실 한국의 유권자들과 피선거권자들은 항상 그 규칙으로 투표를 해 왔다. 다만, 번번이 양동과 연막이 발생해서 그 기본 베이스가 안 보였을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 선거에 이변이랄 것이 있었다면 오로지 그 사건사고들과 정치적 신변잡기들 때문이었지, 그때마다 유권자 대중의 정치 지정학이 결정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갖은 ‘북풍’들이 그러했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라는 존재 자체가 그랬고 “촛불정국”이 그랬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지루한 쌉소리를 늘어놓는가 하면… 이번 선거가 그런 양동이 없다시피한 선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총선은 정말 지루한 선거다. ‘쟁점’이랄 것이 없다. 오죽하면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의 “연동형 비례대표”라는 투표제도가 정쟁을 이끌어가는 핵심 갈등 소재가 돼 있겠는가? <전국투표전도 2020>을 앞으로 뒤로 아무리 뒤적여 보아도, ‘전국적으로 별일 없고 조용하다는 것처럼 들린다’로밖에는 요약이 안 된다. 안철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마라톤을 뛰고 있고, 멀쩡히 잘 있던 자유한국당은 그 횃불의 크기와 테마 컬러의 붉은기를 대폭 줄인 미래통합당으로 표지갈이를 했고, 한쪽에선 “여성의당”이라는 것이 애플망고빙수 타령을 걸게 뽑으며 번쩍 궐기했다. 다들 하나같이 ‘뭐지?’ 싶은 것들뿐이고, “헐 대박 아무래도 어디 뽑(지말)아야될듯” 소리는 잘 나오지 않는다.

오직 허경영만이 그렇지 않다. 그는 이번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절대 표를 받아서는 안 되는 입장이다. 나치당 수뇌부도 가히 경악할 삼권 분립 궤멸의 안을 “33공약”이랍시고 내걸고 전국구 후보를 내어 그걸 길거리에 뿌려대는데… 무슨 얕은 꾀로 그러는지 대충 알 것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확실히 지금은 그럭저럭 돌아가는 중도 자유주의 정권의 말기 시절이고, 이런 호시절일수록 “앗 그렇다면 혹시 나도” 하면서 오만 어중이떠중이가 군웅 할거하여, 그 중 자기 홍보를 잘 한 일부는 잠깐이나마 요행히 한 자리 차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국가혁명배당금당”을 사람들은 들어 봤고 대충 알고 있다. 우리 팀 사람들도 그렇더라. “이렇게까지 후보자를 많이 냈으면 어디서 1석 정도는 하지 않을까? (그 당이) 기호 2번으로 나온 지역이 있단 말이야.”

그럴 일은 없으리라고 예상된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의 거의 유일한 변수인 ‘코로나19 시국’ 덕분에, 사람들은 심지어 웬일로 충분히 차분하기까지 한 것이다.

‘공적 공급 마스크 5부제’는 시행 2주만에 깔끔하게 안착했고,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은 우리 모두를 기어코 꽃놀이 행락지에서 격리하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사전투표를 구실 삼아 주말에 외출을 좀 나가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그 다음에는 뭘 생각했을까? 놀러 나갈 계획은 중간에 접었을 테고, 아마도 ‘그러면 누구를 찍지’를 고민했을 것인데, 공보물을 펼쳐놓고 들여다보자니 비례후보 찍을 당은 너무 많고, 국회의원 후보 대결은 대결 구도라 하기에도 민망한 꼴이 되어 있다. ‘어? 이 사람/이슈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고 뭘 찾아봐도, 딱히 그 사이에 새로 업데이트 받을 내용은 없고 이미 자기가 대충 알고 있던 얘기들뿐이다. 자, 이때 이들은 결국 투표를 어떻게 하게 될까?

이런 맥락에서 유권자는, 높은 확률로, ‘그냥 알아서 적당히’ 투표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자기와 같은 이념 벡터에 속하는 당과 사람들을 뽑되,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절대 안 되겠다 싶은 선택들은 제하고, 적당히 오차 범위를 두어서, ‘이 당/후보 정도면 내 표를 줘도 되겠다’ 하는 당/후보를 정말로 찍게 된다. “국가혁명배당금당”은 여기서 최종 선택지에 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말하자면 ‘그냥 알아서 적당히 배당금당 찍어주는’ 일은 있기가 어려운 것이다. 대신 사람들은, ‘이번 선거는 이 정도로만 투표하고 싶다’ 하는 입장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표를 행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요컨대, 이번 선거는 가장 보통의 선거가 될 것이다. 특별히 약진하는 당도 없고, 예상을 크게 빗나가는 지역구도 없이 그냥 어영부영 끝나고 정리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조용한, 가장 별일 없었던, 가장 많은 당들이 백병전을 치르는, 그러나 결국 전체적으로는 한국 사회가 그간 고루하게 보여 준 양당+군소정당의 도식으로 절묘하게 수렴하는 선거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아쉽다고 생각될 대목은, 아마도 이번에 재차 확인하게 될 한국 사회의 인구통계학적 현황뿐일 것이다. 여전히 기본적으로는 중도 PD 자유주의 세력과 수구 세력 중 어느 쪽이 이기느냐의 싸움일 뿐이라든가, 제정분리도 못 한 파시스트들이 ‘보수’를 참칭하며 날뛰고 있다든가, 명확한 ‘좌파’로 라벨링 가능한 전국구 정치 조직은 안 보이는데 아마추어 이념 정당들은 지나치게 눈에 띈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번 선거는 그런 현황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어, 한국 정치 사회의 가시거리가 얼마나 좁은지 알려주는 시력검사표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그 데모그래피의 상자에서 나와서 생각해볼 순 없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왜 우리는 아나키즘을 못 할까? 티 파티라든가 해적당이라든가 아이슬란드의 “최고당”은 정말 해외 토픽 농담이기만 해야 할까? 이미 우리는 그보다 더 구린 농담 − 선거는 공약과 이념에 근거한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농담 − 도 게임의 규칙으로 암암리에 승인하고 용케도 참아주지 않는가? 다당제 좋다는 게 뭔가? 우리는 과연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다당제 사회가 맞긴 한가? 가장 도식화하기 어려운 정치구도는 어떤 것일까? 그런 것을 추구해도 좋을까? 혹시 그걸 지금 하자고 하면, 그건 너무 이른가?

카페에서 일어나 점심시간 종료에 맞춰 오늘따라 유난히 썰렁한 사무실로 돌아오며 생각한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주52시간이라니 그렇게 해괴한 제도 도입하면 국가 경제 거덜난다!” 드러눕던 분들이 전염병 한 번 돌자 “음… 그렇다면 우리도 zoom인지 뭔지를 도입해서…” 같은 소리를 주섬주섬 읊으며 순순히 재택근무를 도입하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시민 의식은 올라”갔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사람들이 훨씬 더 정치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고. 이런저런 변화들이 좀더 퇴적되면, 그땐 이 단단한 지형에도 단층이 일어나게 될까? 이번 선거로 그 지형을 다시 확인한 다음, 그 이후를 두고 볼 일이다.


여기까지 실컷 써놨는데 위의 예측이 다 빗나가면 뭐 이 글은 말짱 다 꽝이다. 그래도, 마지막 단락만큼은 살려 두고 싶다. 그 결정은 내일의 투표 결과를 봐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