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정국"에서 새삼 목격하는 노란 장판, 태엽 인형, 테러리스트의 썩어빠짐들을 말해 보고 싶다.

타도되지 않는 그 썩어빠짐들을 생각한다


오늘로 12.3 내란 7일차에 접어든다. 정확히 1주일 전 헬리콥터가 의사당 앞에 내렸고 특수부대 군인들이 국회 점거를 시도하는 폭거가 있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제정신 가진 공화국의 인민들은 전부 각자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분개, 경악, 규탄하며 시국 선언, 의사 결집, 책임 촉구를 하고 있다.
오히려 그래서일까. 지금 나는 그 당연하고 자격 있는 반응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당연하지 않은,
공화제를 누릴 자격이 없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러나 우리 중에 상존하는 다른 반응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오직 무반응만이 있다. 그들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12월 2일까지의 콘텐츠 컨셉이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그들의 국정 지지도는 12월 3일 이후로도 특별히 변한 바가 없다. 그들의 설교는 12월 첫째 주일과 12월 둘째 주일이 똑같다. 그리고 그걸 듣는 이들 중 일부는 그 설교들이 근본적으로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여전히 똑같다. 국헌이 훼손되고 2024년에 “계엄”이 무엄히 선포되고 민의의 전당 앞에 선 “금뱃지”에 총구가 겨누어졌는데도 그걸 봤으면서도 그들은 태연히 똑같이 덤덤히 살아간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무슨 사태가 일어나면 이들의 생각이 바뀌고 피드가 바뀌고 설교가 바뀔까? 방구석에 깔아놓은 비닐 장판도 이것보다는 좀더 뭔가에 반응을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썩어빠짐을 노란 장판의 썩어빠짐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의 어떤 방들은 여전히 그 장판을 깔고 산다. 아니, 사실 굉장히 많은, 알려지지 않은 수의, 우리가 눈 돌리고 싶어하는 숱한 방구석들이 그 영원히 샛노란 장판을 깔고 그 위에서 영원히 똑같은 삶과 관점과 행동으로 살며 문드러져 간다. 노란 장판을 깔아본 이들은 알 것이다. 그 장판이 유일하게 잘 하는 일, 장판의 진짜 임무. 그것은 그 뒤, 그 아래에서 무엇이 스며 올라오든지 “덮어놓고” 차폐함으로써 그 앞을 액면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일단 깐 장판은 결코 들추지 않는다. 다만 그 장판 위쪽의 표면은 깨끗하다, 자기 엉덩이가 닿는 곳은 깨끗하니까 그걸로 됐다는 심정으로, 세상의 다른 모든 것에도 장판을 깔아 뭉개며, 자기 엉덩이 밑의 노란 장판과 똑같은 모양으로 그 내면을 썩히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하던 반응을 아직도 그대로 한다. 그들은 순순히 당론을 따르고 “백만 유튜버”의 평론을 마냥 기다리며 “중립기어”를 넣었을 때 자기를 가장 위태롭게 고꾸라뜨리는 비탈길을 골라 그쪽으로 추락하는 인생을 산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래도, 아무리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는 탄핵되거나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대로 무기력하게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 정권을 헌납할 수는 없”기 때문이란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어떤 당의 의원이다. 그 당의 당대표 역시, 만약 이 비상계엄이 정당화되고 “성공”했더라면, 긴급 체포되어 “과천의 수감 시설”에 처박히는 폭거를 당할 처지였다. 사안이 이 지경인데도 이런 반응이고 이런 “입장”이다. 말하는 태엽 인형도 이거보단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사하지 않을까?

나는 이 썩어빠짐을 태엽 기계의 썩어빠짐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떤 기계들은 “밥을 주”기만 하면 틀림없이 늘 같은 동작을 “무지성”으로 무조건 무제한 무진장 반복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향상, 성장, 변화에서 보람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가 늘 같고 변화당한 적이 없으며 세상 모든 것에 대처할 방안이 있다는 단 하나의 “팩트”를 기뻐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군가가 자기 목 뒤쪽에 나사를 꽂고 주기적으로 몇 번 드르륵 드르륵 돌려 그 팩트를 팽팽히 당겨 주면, 그걸 소름 끼쳐하기는커녕 기꺼워한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면 왕년의 쌩쌩함으로 익숙한 타령을 거듭할 수 있다는 효험, 그것이 그들이 평생 고대하고 만끽하기를 반복하는 모든 것이다. 태엽이 끝내 헐거워지고 모든 부품이 녹슬어 결국은 어딘가에 버려지고서도 여전히 까맣게 모르고, 그때까지도 기어코 질리지도 않고.


어떤 이들은 해선 안 될 반응을 한다. 주로 사실관계와 정황 맥락을 남들 “웃기는” 일과 “일침” 놓는 데 필요한 것만 발라먹고 나머지는 뱉는 이들이 그렇게 한다. 육영수 여사 소재 뮤지컬에서 박정희 역을 맡았다는 한 배우는 계엄령 뉴스를 보자마자 “간첩들이 너무 많아. 계엄 환영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써서 올렸다. 동아일보 산하 TV 뉴스의 유튜브 채널은 이 뉴스를 가지고 “배우가 계엄 환영 썼다가 벌어진 일”이라 적힌 섬네일의 영상을 만들어 게시했다. 이 채널이 계엄 바로 다음날에 올린 영상은 제목이 뭐였는지 아는가? “윤 대통령 비상 계엄 부산 시민 카메라 똑바로 보고 ‘한 잔 먹고 취한 김에…'”였다. 뭐 하자는 건가? 지금 이게 웃긴가? 2024년 자유대한에서 “계엄” 옆에 “환영”, “한 잔 먹고 취한 김” 따위를 붙이는 넌씨눈 새끼들이 언론? 배우? 폭탄 안전핀을 뽑기 직전의 테러리스트도 이것보다는 덜 경거망동하지 않을까?

나는 이 썩어빠짐을 테러리스트의 썩어빠짐이라고 부르고 싶다. 테러리스트가 마침내 테러를 저지르기까지의 과정은 사실은 지긋하고 궁극적인 삼투, 침식, 부패의 과정임을 우리는 안다. 자기들만의 고유한 전통과 관습과 미덕, 자기들끼리만 웃긴 농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자기들만의 이상, 그 이상을 방해하는 그러므로 혐오돼 마땅한 “실드 불가”의 대상들, 그 혐오를 정당화하기 때문에 “팩트”의 지위를 얻는 교리들, 그 교리들이 낳는 바 그 불가능한 이상을 지향하고 순교하는 “레전드”들, 그들에 의해 다시 교리가 강화되는 악순환, 이 모든 전개가 있고서야 마침내 자기가 어디로 들이박는지도 모르는 테러리스트와 백해무익한 파행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악순환은 결코 위로 오르지 않는다. 언제고 평행선을 달리다가 질량이 붙는 순간 아래로 가라앉아 갈 뿐이다. 더 깊게 더 안으로 더 극단적으로 곪아 가면서.


나는 한국 사회의 “진보-보수” 구도를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건 ‘안 산다.’ 이념이 뭔지 도덕이 뭔지 사상이 뭔지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일수록 더 확신에 차서 더 용감하게 “민주당=진보”, “한나라당(난 여전히 이렇게 부르고 싶다)=보수”의 이원론 도식과 그 대결 구도에 뜨겁게 심취하는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굳이 밝혀 두자면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이란 리버럴 보수당과 친일-기독교-부르주아지 야합 세력 그리고 일부 군소 이념 단체들이 있을 뿐으로, “진보세력”이랄 것은 없다시피한 지경이 실상이다. 이 얘기는 이쯤만 하자. 왜? 이 글에서 내내 말하고 싶었던 바 사실 한국의 정치사회의 진짜 문제는 이 표면적 도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헌정, 이 나라의 “민주 공화” 체제의 진짜 적은 저 썩어빠짐들이다.
흔히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잘못 호명되고 있는 그 썩어가는 노란 장판들이 문제다.
흔히 “태극기 부대”라고 어여삐 여겨지고 있는 그 태엽 인형들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흔히 “극우 유튜버”, “사이버 렉카”라고 존칭되는 그 테러리스트들이야말로 민주 헌정의 진짜 걸림돌이다.
그런데 아무도 이 부패, 녹슮, 문드러짐, 썩어빠짐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냥 점잖게 혀를 차고, 왜 자꾸 이런 이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하기만 하고, 무언가의 원인인 자들의 원인이 뭔지를 지목하는 게임을 하다가 마무리 멘트를 하고 흩어진다.
그러는 동안 이 근본적인 썩어빠짐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다.
여전히 테러리스트들은 육성된다.
계속해서 누군가는 그 태엽 인형들에게 밥을 준다.
그 장판이 녹아 문드러지지 않는 한 그 장판은 언제까지고 그곳의 허물을 덮고 침묵하며 물러나지 않는다.
그렇게 어딘가의 무언가는 은은하게 영원히 썩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때까지도 기어코, 아무도 이 썩어빠짐들을 타도하지 않는다.

잠시 후면 12.3 내란 8일차에 접어든다. 윤석열을 폐위(말이 탄핵이지 사실 이걸 말하는 것이다)하고 김건희를 구속하고 “국힘해체”를 하면 정말 사태가 끝나고 ‘국헌’이 정말 회복이 되는가? 그러고서 “환율”이 방어되면 그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저력을 입증”하는 건가? 정말 그것뿐이라고 누가 내게 장담해 주겠는가? 세상에 다른 건 타도할 필요가 없다고, 다른 부분은 썩어빠지지 않았음이 틀림없다고 누가 내게 보증해 주겠는가? 나는 의심스럽다. 그 밝은 전망이 내게는 이 나라에 민주-진보의 양당 구도가 존재한다는 거짓말만큼이나 의심스럽다. 나로서는 좀더 확실한 재발방지/선진화 방안을 묻고 싶을 따름이다. 진짜 썩은 곳을 도려내지 않겠느냐고. 기십 년간 썩어 온 더 끔찍한 썩어빠짐들이 이 나라에 있는데 이참에 그것들을 좀 타도할 수는 없겠냐고. 내 생각에는, 그 청소조차 안/못 한다면, 자유 선량한 개인 간의 사회 계약에 의한 민주 공화 정치 따위는 어디까지고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