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급 3년차가 직장 내 대화에서 살아남는 법


하나. 입을 다문다

10월 2일에 쉰다면서요? / 아, 집에 있기 싫은데… / 혹시 연휴 때 어디 가세요? / 저는 가족들이랑 여행 가기로 했어요. / 어디요? / 저는 잘 모르고 아버지가 알아서 짜주신대요. / 우와 대박. / 아참, 남은 9월 달에는 저희 팀에서 저밖에 없을 것 같아요. / 다들 어디 가세요? / 과장님은 일본 가시고 차장님은 유럽 가신대요. / 유럽 가는데 비싸지 않아요? / 한 2,000만원 든대요. / 역시 차장님은 돈이 많으셔서 그런지… /

그들이 말로 세계 한 바퀴를 돈 뒤 애들을 이끌고 여행가는 부모들을 안타까워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하는 동안 나는 입 한 번 뻥끗 할 수 없었다. 비행기 타고 가는 여행에 관한 추억, 혹은 그와 관련된 정보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노동 계약 종료 기념으로 갔다 온 제주도는 내가 번 돈으로 언젠가 꼭 한 번 가리라고 맘먹고 다짐해서야 갈 수 있었다. 나는 이제야 이 신비의 땅에 내 힘으로 첫발을 내디뎠는데, 다른 직원에게 제주도는 심심하면 혹은 바람 쐬러 어쩌다 한 번씩 갔다 오는 곳이었다.

두울. 그저 웃는다

나이 들면 연애가 귀찮아져요. / 아, 연애하고 싶다. 저 여친 없는지 2년 됐어요. / 그래도 한 번도 안 해본 것보다는 나으시네요. / (웃음) /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은 안 해야겠네요. / 드파랑씨도 연애할 수 있어요. 노력을 하셔야 해요. / 맞아요. 이참에 제주도 가서 번호를 따보세요. / (웃음) / 에이~ 제가 어떻게 그래요. /

노력… 맞긴 맞는데, 내겐 그게 참 힘든 일이었다. 나 혼자서도 생활하기 빠듯한 돈과 불안정한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성과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선물로 명품을 주고 받는 세상에서 선물 자체가 버거운 내가 연애를 한다면 상대방에게 민폐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30년 동안 내 마음에 쌓인 외로움을 전전긍긍하며 버텨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까맣게 탄 속을 드러내면 분위기가 숙연해질 것 같아서 그저 웃으며 넘어간다. 

세엣. 아는 체한다

지난주에 뭐 하셨어요? / 아파트 보러 서울 갔어요. 어디 갔는지 맞혀 보실래요? / 마래푸? / 아니에요. / 어디에 있는데요? / 고속터미널에 있는데, 맞춰보세요. / 아리팍? / 거기랑 가까워요. / 르엘? / 비슷해요. / 어디지? / 원베일리요. / 아 거기… / 와 부럽다. 그런 곳에 살면 어떤 기분일까? / 여러분 꼭 한 번 가보세요. 냄새부터가 달라요. / 에이~ 거짓말~ / 진짜라니까요. /

원베일리나 원베일리가 퍼뜩 떠오르지 않아서 불러본 곳들이나 모두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살고 싶어 하는 곳들인데, 나는 저곳에 관심이 별로 없다. 부동산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겠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곳은 내게 올려다보기만 하는 중세 시대 성처럼 다가갈 수 없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게 더 크다. 그저 그런 동네에 살려면 내가 사는 아파트의 한 동을 다 팔아야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어림해 볼 뿐이다. 


6개월간 사무실에서 같이 지냈던 직원들은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다. 선임직원들은 친절하고 자상했고 뭐든지 잘 사줬다. 젊은 인턴 친구들은 동기랍시고 틈만 나면 껌딱지처럼 들러붙으려는 늙은 인턴을 깍두기 삼아 잘 끼워줬다. 퇴사 직전 며칠간은 제주도로 자주 놀러 간 두 직원이 거기서 뭘 해야 할지 감을 못 잡는 내게 숙소며 관광지며 식당을 정성스레 추천해줬고 덕분에 일정 짜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런데 아무 악의나 의미 없이 나오는 일상 대화 중간중간에 자꾸만 거리감이 느껴졌다. 2021년 10월 건강보험 인턴을 시작하면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수급을 끊은 뒤 2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삶보다 수급자로 산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랬을까?

그렇다고 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직원들은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그들은 그들이 자연스레 겪었던 것들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런 거리감은 정말정말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나 다른 사람이 그 틈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방법을 최대한 활용했지만, 대화가 거듭될수록 자꾸만 틈을 의식하게 되고, 몇몇 직원은 내게 남아 있는 ‘반지하스러움’을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 거리감이 어떤 날은 상처로 남았고, 어떤 날은 고민거리가 되어 지금도 내 마음속에 옹졸하게 남아 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누구에게 내 구질구질함을 다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내 마음에 쌓아둔 것인데, 아마 이 감정은 직장 생활 속에서 사무실 사람들과 대화하는 내내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