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나치게 넓은 오지랖이 부른 ‘평택역 사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얼마나 ‘친절’한가? 나는 정말 친절하다. 착각 아니냐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진짜 친절하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내가 먼저 물건을 주워 주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 내 앞에 치마 입은 여자가 타고 있으면 고개와 몸을 옆으로 돌려버린다. 당신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인성에 대해 물어본다면,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만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초면부터 자랑질이냐고? 그리고 왜 갑자기 제목에는 오지랖이라고 써놓고 친절을 운운하냐고? 궁금하면 한 번 읽어보시라.


약 2년 전이었다. 때는 밤이 늦었고 나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내 집인 천안으로 가고 있었다. 수원역에서 많은 사람이 열차에서 내리고, 빈 의자는 다른 사람들이 다시 채웠다.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떤 한 남자가 내 눈길을 끌었다. 그 사람은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썼고, 양손은 지팡이와 열차 승무원 손을 쥐었다. 그는 천천히 열차 안 복도를 지나 내 앞에 앉았다.

그 사람과 승무원이 주고받은 대화를 듣고서야 그 사람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는 자세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그가 평택역에서 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승무원이 가고 난 뒤 그 남자는 나와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대화에서 기억나는 건 역시 그가 평택역에서 내린다는 사실뿐이었다.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열차가 어떤 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내려야 하는 천안역인가 하고 당황했는데, 창밖을 보니 내가 알던 천안역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안도감은 잠깐이었다. ‘어? 수원역 다음에는 평택역인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평택역? 평택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앞에 앉은 분이 내려야 할 역이 아닌가!

‘저분이 평택역에서 내리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 방송은 나오고 있지 않으니 지금 그분은 여기가 평택역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내가 열차에 못 내리는 것도 아닌데 불안해졌다. 나는 그분께 평택역에 다 왔다며 빨리 준비하라고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여유로웠고, 내가 오히려 바빴다. 짐을 다 챙기고, 그분을 일으켜 세웠다. 열차는 거의 멈춰 섰다. 다시 창밖을 바라보는데… 으잉? 바깥 풍경은 내가 알고 있는 평택역이 아닌 다른 어딘가의 모습이었다.

서정리역
ⓒ Integral(∫)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자세히 보니 역명판에는 ‘서정리’가 적혀 있었다. 그렇다. 이 열차는 평택시에 있지만 평택역의 전 역인 서정리역에도 정차하는 열차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무궁화호 열차는 수원역 다음에는 평택역에서 섰고, 그 사이 오산역과 서정리역은 지나친다. 그래서 당시 나는 당연히 수원역 다음은 평택역일 거라고만 생각한 나머지, 이 열차가 서정리역에서도 정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착각을 했다고 말씀드리고 사과했다. 그분은 다행이라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약 5분 뒤, 평택역에 도착할 무렵 열차 승무원이 그에게 오더니 “열차가 곧 평택역에 도착하니 내리시면 된다” 알려주었고, 그분은 그렇게 무사히 평택역에 도착해 내렸다. 그렇다. 아까 승무원과의 대화는 자기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내 사과에 괜찮다며 기분 나쁜 내색을 보이지 않았지만(혹은 내가 모를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왜 나는 이런 사달을 내고 말았을까? 내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본 바로는, 그 당시의 나는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행동한 것이 아니라 ‘내가 친절이라고 생각한 대로’만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친절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쓸데없이 넓은 오지랖을 부린 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에 그 사람은 나에게 ‘평택역에 도착하면 알려달라’ 같은 부탁을 한 적이 없고, 따라서 나도 그분이 못 내리면 어떡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급하게 평택역에 도착했다는 ‘사실 아닌 사실’을 알려주었다. 친절하려고 했을 뿐인데, 번거로움을 끼치고 말았다.

이게 이 한 번의 유별난 사건에만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친절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실은 ‘간섭’일 수 있고, 그렇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이득이 되기는커녕 ‘저 혼자 바쁜’ 귀찮은 일일 수 있으며 심지어는 상처만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한다는 구실로 행동했던 것들이 사실은 참견이었던 적은 더 없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요즘은 스스로 그렇게 되묻고 있다. 안 그래도 나는 평소에 굉장히 친절한데, 사실은 그 중에 오지랖이 꽤 있었다면 그건 꽤 곤란한 일이니까.

"장애인의 휠체어를 잡지 않으며, 장애인이 휠체어를 밀어주기를 바란다고 지레 짐작하지 않습니다. 항상 먼저 묻고 나서 행동해야 합니다."
ⓒ 한국장애인중심기업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