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챙겨보지’ 않는 편이다. 원래부터도 “본방사수”니 “트렌드 체크” 따위 안 하고 살았지만 특히나 요즘은 뭐 하나를 제대로 끝내지조차 못한다. 큰맘 먹고 큰 돈 내서 어디 상영관 같은 곳에 스스로를 넣어놓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그런 내가, 그래도 최근에 몇 가지 썩 잘 챙겨보(았)는 편인 것들이 있어서 좀 소개해볼까 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중 어떤 것들은 나 스스로도 왜 재밌게 잘 봤는지 모르겠는 게 있기 때문에.
한화일기 (2019, bilibili)
이 작품은 왜 재미있는지 아는 채로 재밌게 보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짧다. 각 회차가 12분 가량이다. 그 짧은 러닝타임은 상당히 현대적인 경제 감각으로 알뜰하게 사용된다. 뻔한 장르적 약속과 따분한 배경 설정 풀이에 쓸 시간을 아껴서, 자본주의 도시 경제인들 사이에 널리 공유돼 있는 웃픈 기분을 이용한 일화를 푸는 데 주력한다. 그 군상극의 코미디는 주로 대졸 사무직 독신 여성 ‘수모팅'(가운데)과 나머지 두 주인공(수모팅 오른편의 고양이 요괴 ‘지괴성’과 왼편의 핸드폰 신령 ‘천기성’)이, 그들의 세계들이 정면 충돌하는 핵분열 반응에서 나온다.
본작은, 사실 이것만으로도 재미없기가 어려운데, 수모팅을 한없이 현대적으로 설정하는 그만큼, 나머지 ‘천계’와 ‘요계’의 존재들도 정통으로 고전적으로 설정해 그 갈등 일화들을 설득력 있게 풀고 있다는 점이 한층 대견하다. 예컨대 1기 1화에서 수모팅에게 방을 빌려주는 것은 ‘복덕대인’이라는 신선이다. (아래 그림에서 수모팅 바로 왼편에 앉아 지괴성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데 구글에서 ‘福德正神’을 찾으면 도교 등에서 널리 숭상된다는 ‘토지신’이 나온다. 그렇게 따지면 확실히 수모팅의 집을 구해 주는 신선은 토지신이 적절하다. 천기성(강상)이며 지괴성(주무) 등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황당함이 고전을 제대로 참조해서 만든 황당함이라는 것, 이게 한층 킹받는 부분이다.

비단 “설정놀음”뿐만이 아니다.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아예 대놓고 궁중 암투 정치사극 장르를 패러디하는데, 수모팅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들이 ‘후궁’들로 치환되어 “데이터 접근 권한을 윤허”해 달라고 서로 조르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그런데 실제로 중국어로 ‘접근 권한 허용’을 말할 때는 “윤허”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게 따지면 확실히 오늘날의 현대인을 “황상”으로 떠받들며 권력을 탐하는 것은 휴대폰 앱이어야 한다. 거기까지를 눈치채고 나면, 그 에피소드는 현대 판타지 사극 패러디 코미디로만 에누리 깎아 평하기엔 아까운 면이 있다.
요컨대 본작은, 그 자체로도 현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적절한 촐싹거림을 구사하는 명랑 만화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국의 신화/고전 소재 및 그걸 소비하는 콘텐츠 관행을 도발적이고도 근거 있게 변주하기를 부지런히 시도하는, 꽤나 근면한 코미디다. 원작의 팬베이스도 따로 없고 이렇달 성적 대상화 장삿속도 없이 이런 뻔하다면 뻔한 코미디가 4기까지 제작된 것은 단순히 저예산 웹애니메이션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터이다. 지금 2기를 보는 중인데,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3기까지 다 보고 나면 4기를 이어서 보려고 빌리빌리 앱을 미리 깔아놨다.
팔콘과 윈터 솔져 (2021, 디즈니+)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이걸 왜 재밌게 봤는지 모르겠어서 곤란하다.

애초에 마블 프랜차이즈를 거의 모르고, 그래서 관심이 없다 보니, 이 6화짜리 미니시리즈 역시 시작조차 할 이유가 없었다. 팔콘은 아예 존재도 몰랐고, 윈터 솔져도 ‘이름만 들어봤네’ 싶었다가, 한 3화쯤에서 나온 “갈망, 부식, 17” 대사를 듣고 아 얘가 걔구나 하고 겨우 기억해낸 정도였다. 심지어 제 1화 전반부는 다른 숱한 슈퍼히어로물과 분간 안 되는 방식으로 (제3세계 공터를) 날아다니며 무언가를 쏘고 누군가를 쥐어패는 액션으로 채워져 있었다. 대체 내가 어떻게 이런 쇼를 6화까지 중도하차 없이 달린 것인지 나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1화의 후반부는 이상하리만치 인상적이긴 했다. 그저 윈터 솔저가 심리 상담을 받을 뿐인 별거 아닌 장면이.
이 시리즈에는 ‘흑인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 비화’부터 플래그 스매셔까지 별의별 토픽이 다 섞여 있지만, 윈터 솔져의 전후 속죄(용서를 비는 과정)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은 시리즈 정주행을 마칠 즈음에야 겨우 눈치챌 수 있었다. 심지어 그 계기도 엉뚱해서,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다시 보기 시작하다가 깨우치게 됐다. 일설 해석에 따르면,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전쟁이 준 상실을 전후 세계에서 극복해 내려는 상이군인의 속죄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다시 보려고 틀었다가, 문득, 아, 그래서 나는 <팔콘과 윈터 솔져>의 윈터 솔져를 좋아했구나, 라고 조금 이해했다.

“미즈 마블”을 낸 마블이, “블립 이후”의 세계를 다루면서, 구태여 백인 남성이 영웅 행세를 하는 꼴을 보여줘야 한다면, 그건 어떤 명분으로 가능할까? 두 가지일 것이다. 역사의 가해자라는 정체성을 무마할 생각 없이 그 죄를 보속하고 싶어하는 낯선 극소수, 또는 정반대로 무비판적으로 구태를 답습 계승하기를 마다 않는 세습된 기득권. 전자가 버키 반즈에 해당하고 후자가 존 워커에 해당한다. 후자가 어딘지 못마땅한 이유는 전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쉽지도 흔치도 않은 고행의 길이고, 그건 샘 윌슨 역시 마찬가지여서, 둘은 서로 거울처럼 부딪히며 서로를 내심은 이해한다. 팔콘 역시, 자기가 “흑인 캡틴 아메리카”일 수 있는지, 애초에 “캡틴 ‘아메리카'”를 해도 되는지, 저 난민들 앞에서 자기가 뭘로 보일지를 거듭 반추해야만 하는 입장 아니던가.
이런 이유로, 나는 팔콘이 플래그 스매셔를 설득하려 한 그 줄거리에, 그리고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엔딩에 전혀 유감이 없으며 오히려 완전히 납득하고 있다. 블립 이후(그러니까, 오늘날)의 “슈퍼히어로”라면 의당, 만사에 주먹부터 들이대고 보는 그 이상의 도덕적 감수성과 정치사회적 협상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한 드라마는 결과적으로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것에 관해 더 깊은 통찰과 고민을 내놓았다’라는 총평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당연히 그렇다. 여기 나오는 ‘슈퍼히어로/빌런’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슈퍼하지 않다(솔직히 다들 뭘 투여받았거나 착용했을 뿐이지 않은가?). 단지 더 좋은 사람, 덜 나쁜 사람이 되려고 “그 능력을 어떻게 쓸지 자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 정도의 깊이가 있는 드라마여서 좋게 본 것일까,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 듯도 하다.
레인보우 하이 (2020, Netflix) & 유니콘 아카데미 (2023, Netflix)
이것들 역시 왜 재밌게 보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정확히는, 왜 이것들은 다른 숱한 아동 완구 프랜차이즈 만화들과 다르게 보이는지를 모르겠다.

<레인보우 하이>는 변명의 여지 없는 억지 기획이다. 팔아야 할 상품이 먼저 있어서 거기에 끼워맞춰 만든 “TV시리즈”다. 심지어 모든 것이 공격적으로 유치하다. 이름값 못할세라 거의 모든 장면에 빨주노초파남보가 칠해져 있는 건 차라리 기본이고, 모두가 튀는 아이섀도와 튀는 패션과 튀는 피부색을 경쟁적으로 선보이는데, 왜냐하면 막상 캐릭터들의 이목구비 자체에는 아무 개성이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고등학생”들은 성격들도 대동소이하다. 대충 찾아보니 L인 캐, B인 캐, T인 캐는 있다는 모양이지만 MBTI는 모두 E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아동용 콘텐츠를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 장르’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쇼가 자꾸 신경 쓰이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 능동성, 전문성 때문인 것 같다. 본작은 유치할지언정 아마추어적이지는 않다. 본작은, 고등학생을 동경할 법한 목표 시청자층의 선망을 충족시키려는 듯이, 매 시즌 매 화마다 말도 안 되게 힘든/큰/뜬금없는 미션을 주인공들에게 부여한다. 이를테면 다음 주까지 뮤직비디오를 찍어서 제출하라는 식이다. 그러면 주인공들은 유치한 언동을 구사하되, 서로의 재능과 우정을 발휘해서 결국 그걸 현실적으로 해낸다. 설명 없이 해결되는 전개나 설명이 불가한 ‘마법’이 없는 것이다. 현실에 찌든 어른 입장에서는 여전히 소꿉장난 같은 얘기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들이 스스로 해나가는 소꿉장난인 셈이다. (심지어 이 학교에는 “학생자치생협”도 있다. 이건 안 유치하지 않은가?)

따져 말하자면 그런 의미에서는 <유니콘 아카데미>가 더 유치한 편이다. 애초에 유니콘이 왜 있고, 왜 그들이 특정 섬에만 살고, 왜 그 섬에서만 어둠의 마법을 주기적으로 경계 감찰해야 한단 말인가? 그 추가 경찰력이 6명이면 충분하단 말인가? 베스트셀러 원작 기반이라는 변명거리가 없었던들, 내가 이걸 시청하기는커녕 애초에 이런 게 제작될 수나 있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이걸 보는 이유를 안다. 말 타는 아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스피릿: 자유의 질주> 시리즈가 추가 제작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자기가 자기 말을 몰고 자기 가고 싶은 곳을 가는 어린이들 이야기를 못 본 지가 꽤 되었었다. 고백하건대, 그 대체품으로 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냥 본다. 아마도 이 작품 특유의 과도함 자체가 하나의 미학으로 여겨져서인 것 같다. 앞에서 농담처럼 늘어놓은 설정/스토리의 과도함과 ‘느끼함’도 그렇지만, 이 작품은 비주얼 역시 아동용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더 어지럽게 화려하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24분 내내 알록달록한 사람의 머리털이며 유니콘들의 갈기가 인정사정 없이 찰랑거리며 마법 금가루를 뿌리고 뿔에서는 광선이 나오는 동안 배경마저 오만가지 건물과 식물들이 총천연색으로 울창하게 펼쳐진다. 이 과잉된 에스테틱은 마치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꾸는 꿈처럼 묘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중간중간 멈췄다가도 결국 계속 이어 보게 되는 걸까? 이만하면 대략 변명은 될 것 같은데.
다 써놓고 보니 최근 1년 사이에 나온 작품은 하나도 없다. <업데이트 후 종료>를 업데이트하면서 막상 나 자신이 업데이트가 너무 늦나 싶기도 하다. 2025년 1분기 작품인 <전수.>에 관해서도 한 줄 소감문을 적고 싶긴 한데, 그건 지금 절찬 방영중이어서, 최종화까지 쭉 본 뒤에나 정리해서 다음 기회에 논해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