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르는 2007년의 한 장면.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3학년 교실은 그렇게까지 철없지는 않아서, 아주 가끔은, 서로 장래희망을 자발적으로 논하기도 했더랬다. 넌 뭐 할 거야, 난 모르겠어 같은 별 내용 없는 얘기들이 오가던 중에, H는 이미 준비돼 있던 답변을 들려주었다. 나는 공항에서 일할 거야. 승무원이든 뭐든 그냥 공항으로 출근하는 일을 할 거야. 나 공항 좋아하니까.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 공항 나오는 거 보면 멋있잖아? 다들 “올ㅋㅋ 니가? ㅋㅋ 근데 멋있긴 하겠다 ㅋㅋ” 정도로 지나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게는 그 답변이 그렇게 가볍게 재밌다기보다는 꽤나 인상적으로 대견하게 들렸다.
왜냐면 그때의 나는 속으로 ‘공항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7년이면 인천공항이 본격적으로 모두에게 사랑받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공항 좋아하는 것은 일견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H는 자기가 공항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자기 장래 계획에까지 둘 줄 알았던 것이다. 되지도 않게 ‘장래 얘기는 좀더 그럴듯한 걸 해야지’ 같은 생각으로 겉늙어 있던 내게는 그 답변이 신선하게 충격적이었다. 아, 그게 아니구나, 그냥 저렇게 단순하게 솔직하게 생각해도 되는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마저 주었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어쩌면 좀더 (다만 품위 있게) 솔직해져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공연히 이런저런 ‘척’을 해 온 나날들에 대해서는 사죄와 배상을, 앞으로의 나날들에 있어서는 그런 어설픈 거짓 행동이 재발하지 않게 하는 방지 조치와 주기적인 감사를 해 나가는 과정 말이다. 무슨 직업을 갖고 싶었다든가, 어디에서 일하고 싶었다든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다든가 하는 데 있어서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왠지 지금에 와서야 새삼 깨우쳐지는 것은, 나는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심지어는 이것마저도 정직한 진술이 아니었더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마도, 영화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영화관을, 영화관에 갔다 오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혼자서 CGV강변에 가서 혼자 영화를 한 편 보고 112-5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그날부터 정말 최근까지, 나는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지금은 나눠주지 않는) 홍보 찌라시며 티켓(+영수증) 등을 열심히도 모아 놨고, 틈만 나면 블로그며 웹진이며 영화관 앱 “무비로그” 따위에 20자평을 (최대한 함축적이고도 내용 있게) 적어 냈고, 심지어는 어쭙잖은 혼자만의 우쭐함도 지니고 있었어서, “디즈니”, “마블”, “천만영화” 등등은 구태여 찾아보지 않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쯤에 ‘한번 가서 봐 주고 오는’ 엘리트적인 심산을 혼자 품고 있기도 했다. “그런 영화들은 어차피 나 말고도 봐 줄 사람 많으니까, 나는 남들이 안 봐 줄 것 같은, 근데 누군가는 좀 봐줘야 할 만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아 주련다” 하는 입장으로 굳이굳이 각종 독립영화관과 “아트하우스”를 순회 방문했더랬다. 써 놓고 보니 참 너무 고매해서 우스운데.
이 생각이 최근 1년간 좀 많이 깨졌다. 정확히는 1년 4개월인데, 외국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을 좀 가져 봤던 것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처음 본 영화는 나이트 M 샤말란의 <트랩>이었다. 어떤 각본을 써도 결국 반전 스릴러를 출판해 버리고 마는 감독이 가족영화(희극이든 비극이든) 장르에 도전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라고 감상을 정리했었는데, 그렇게 정리를 해놓고 나서 얼마 지나자 ‘현타’가 크게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게 아니었지 않았을까? 확실히 그 영화를 상영관에서 봤던 모든 관객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크게 허탈한 웃음을 웃어 버렸지만, 그 웃음이 과연 영어 음성과 중국어 자막을 힘겹게 따라잡던 나와 그밖의 나머지 (영어를 쉽게 알아듣고, 이런 영화일 것을 좀더 자세히 미리 알고 왔을) 다른 관객들과 정녕 같은 것이었을까? 아닐 거거든.
좀더 시간이 지나자 이 이격감이 비단 특정한 장르, 기획, 감독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불가피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모아나2>를 IMAX로 보았고 <서브스턴스>를 (지금은 부도 청산 폐관된) 싱가포르 유일의 독립영화관에서 보았으며 <주토피아2>를 태국에서(!) 보았지만, 그렇게 한 편 한 편 보면 볼수록, 이런저런 영화들에 대한 내 식견이 딱히 유별날 게 없음을 더더욱 잘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공감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편수로만 치면 남들의 두 배, 세 배는 더 영화를 봤을 텐데도 그랬다. 겉으로는 늘 하던 대로 SNS에 20자평을 남기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점점 더 창피하게 초조해져 온 게 사실이다. 이게 뭐지? 나 지금 뭐라고 토독토독 지껄이는 거지? 나 왜 이렇게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이게 맞아?
(물론 원인을 모르지 않는다. 영화를 훈련으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노가다’와 헬스장 피트니스의 한끗 차이는 훈련 의도에 있다. 어떤 근육을 어떻게 ‘조져서’ 능력을 키운다는 이론과 계획과 의지를 가지고 실제로 수행을 해야 피트니스가 되지 안 그러면 그냥 달밤의 체조일 뿐인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겠지. 일단 보고 많이 보고 찾아서 보고 하는 건 말할 것 없는 기본에 속하고, 이론, 계보, 실무의 디테일, 업계의 경향 등까지 신경써 가면서 봐야 비로소 ‘시네필’ 명함을 찍을 수 있는 것일 테다. 이런 훈련이 없다 보니, 화요일 낮에 장노년 관객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던 심은경의 <여행과 나날> 상영관을 들어갔어도, 고작해야 ‘음.. 뭐.. 풍경 좋네..’ 정도로만 주섬주섬 정리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일 게다.)
그래서 오늘 여의도 쇼핑몰 지하 3층 영화관을 걸어나오면서는, 오늘 아침 어렴풋이 스르르 깨달아지던 것을 글로 적어서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었다. 이실직고를 해야겠다고. 나는 영화를 좋아한 게 아니었고, 영화관을 좋아했던 거라고. 영화관에 가는 것을, 영화관에 앉아 있는 것을, 영화를 찾고 예매를 하고 기상 알람을 맞추는 걸 좋아했던 거라고. 난 시네필은 고사하고 영화를 많이/잘 아는 사람조차도 전혀 아니라고. 영화는 핑계고, 영화관에 가고 싶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영화를 그렇게 많이 봤던 것뿐이었다고.
영화관은 좋다. 일단, 내가 아는 바로는, ‘자기 좌석’을 골라서 미리 살 수 있는 경험이 이 세상에 별로 없다. 고속 버스, 비행기, 콘서트 등등을 생각해볼 때 가장 움직임이 적고 가장 가격 대비 효율적인 것이 영화관이다. 게다가, 그런 경험들 중에서 비교해 보자면, 영화는 선택지도 월등히 많고 그렇게까지 지루하지도 않고 인생에 꽤나 도움이 된다. 최대 3시간 정도를, 내가 평생 생각도 해본 적 없을 이야기며 상상도 못 해봤을 광경으로 데려갔다가 고스란히 잘 돌려놔주지 않는가. 심지어 그 1~3시간의 시간은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고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가 지금 영화관이라서요’ 문자하면 대부분의 상대방은 꼼짝없이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려 주곤 하던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하루 중 6시간 정도가 애매하게 붕 뜨면, 영화 상영 일정을 찾아보는 것이 한 가지 버릇이 됐다. 영화 한 편 보며 그 앞뒤로 쓰는 시간까지는, 이상하게도, 버리는 시간 같지 않아서 좋았던 것이다.
물론 영화 자체도 좋아는 한다. 하지만 단지 그 시청각예술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실은 그냥 넷플릭스, 웨이브, 디즈니플러스 등등을 이용하면 된다. (실제로 상기 3개 서비스를 모두 구독 중이다. 라프텔은 싱가포르 나가면서 끊어 놨었고, 쿠팡플레이는 불매 중이고, 티빙과 왓챠는 별 이유 없이 안 보고, 애플TV는 여전히 고민만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서비스들을 거의 섬네일/포스터 보는 용도로만 쓰고, 진짜로 진지하게 보고 싶은 것들은 (터무니없는 푸대접을 받아 가며 턱없이 비싼 값을 내고) 굳이 영화관을 찾아서 가서 보고 있다. 지금까지의 변명은 ‘아이패드로 보면 집중이 안 된다’, ‘음향 등등 제작의도가 최대한 구현된 곳에 가서 보려고 한다’ 따위였다. 근데 이게 변명이지. 이제는 순순히 인정이 된다.
그 대신 그냥 솔직하게 말하려고 한다. 그냥 극장이 좋은 거라고. 그 어둡고 조용한 곳에 두세 시간 죽치고 앉아서, 유일하게 주어지는 시청각 자극의 멈춤 없는 일방향 진행에 몸을 맡겨 놓고 멍청히 있는 것이 좋다고. 남 눈치 안 보고, 나 혼자와, 혹은 나와 제작위원회 간의 ‘옳아도 나 혼자 옳고 글러도 나 혼자 그른’ 대화를 주고받으며, 좋았으면 좋았는 대로 나빴으면 나빴는 대로 돈 낸 만큼은 최대한 얻어내고 오는 과정이 좋다고. 그거 하고 싶어서 영화 보러 간다고. 그걸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영화일수록 더 영화관 가서 보려는 것뿐이라고. 그게 다라고. 사실 영화 자체에는 조예도 없고, 남들보다 몇 편 더 보기야 봤지만 솔직히 말해서 뭐가 뭐고 누가 누군지 그닥 잘 모르겠다고.
정직하게 써놓고 보니 좀 후련해지는 것도 같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일에는 그 자체의 쾌가 있는 법이다. 이 글의 최소한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분께 제언을 하나 드리자면, 여러분도 이런 정직한 자기 분석/반성을 하나쯤 해 보면서 새해를 맞아 보시는 건 어떨까 한다. 뭔가를 좋아하는 건, 그게 아무리 안 ‘그럴듯’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딱히 부끄러울 것이 없다. 뭔가를 잘 모르는 것 역시 그렇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부끄러울 일이 있다면, 뭔가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럴듯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걸 자신이나 타인에게 시인하지 못하는 그게 부끄러울 일이다. 오히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 사실과 혹시 화해하지 못했다면 빨리 화해하고, 거기서부터 차분하게 한두 걸음 나아가 보는 것이야말로,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영화 산업이 아무리 이 이상 더 몰락하더라도 한동안은 계속 영화관에 가겠지. 워너브러더스가 통째로 넷플릭스에 팔리고 롯데시네마가 전 직원 “희망퇴직”의 절망을 안기고 “미소지기”는 팝콘 지키느라 티켓을 지키지 못하고 극장에는 ‘고인물 시네필’만 남아 눈보라 속 펭귄들처럼 비싼 돈 내고 모여 앉아 추위를 버틸 거라고들 하지만, 그런 모든 ‘영화’와 관련된 사정들과 아무 상관 없이 나는 영화관에 안 갈 수 없어서 영화를 안 볼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이후의 삶도 당분간 살아가려니 한다. 지금까지는 그럴듯해 보이는 20자평을 쓰기 위해서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아는 척했던 인생이라면, 2026년부터는 그냥 영화관에 가 앉아 있고 싶어서 영화관에 가는 관객이 되려고 생각해야겠다. 공항이 좋으니까 공항으로 출근하겠다던 H만큼은 멋있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