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이 끼어 있는 고난주간인데 교계는 끔찍하리만치 조용하다.
마치,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어져 죽은 311명은 이 나라에 살던 다른 사람들보다 무슨 죄가 더 있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마치 저들은 회개하지 않지만 우리는 회개하니 하여간 다 모르겠고 우리는 무조건 안 망하고 안전하기라도 하다는 것처럼.
고난이니 죽음이니 참사니 절망이니 하는 것 그 한 주 그 하루 안에 후딱 해치워 버리면, 그 다음날 다음 주부터는 다시 또 맨날 외치던 아멘아멘 할렐루야 외치면서 오만 방정 다 떨고 살아도 아무 도덕적 사회적 죄책이 없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처럼.
4.16이 끼어 있는 고난주간인데 교계는 너무하리만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다음 주 성가대 칸타타의 “슬픔은 또다시 없다”느니 “부활의 구세주 보라”느니 하는 쉽고 간단한 노래를 부르기가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정말 그게 이 시대의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정도의 엄청난 환희이기만 한가, 혹시 우리는 뭔가를 아주 단단히 잘못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5주기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