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하 n번방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이 검찰로 송치됐다. 그는 그에게 마이크를 들이댄 언론사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손석희 사장님, 윤장현 시장님, 김웅 기자님을 비롯해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이윽고 쏟아지는 질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음란물 유포 혐의 인정하십니까?” “피해자들에게 할 말 없으신가요?” “범행 후회 안 하시나요?” “살인 모의혐의 인정하십니까?” “범행 왜 하셨습니까?”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갓갓 아시나요?” “미성년자 피해자들 많은데 죄책감 안 느끼시나요?” 그는 묵묵부답, 아주 천천히 차에 올라탔다.
언론에의 짧은 노출이었지만 여기서 그의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비열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척했지만, 자신에게 성착취를 당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단 한 마디 사과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사기와 협박을 당했던 손석희 JTBC 사장,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 김웅 기자에게 사과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을 ‘사연이 많아 범죄를 저지르게 됐지만, 아무도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슬픈 한 남자’에 빙의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조커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러나 그는 악마인 적도 없었고, 악마가 될 수도 없지만, 악마인 듯 보이고 싶은 비루한, 수많은 범죄자 중의 하나일 뿐이다. 한낱 범죄자에게 그런 아름다운 내러티브 따위는 없다.
24일,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n번방 보도,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이름의 보도 긴급지침을 발표한다.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중대한 범죄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약화하지 않기 위한 취재 보도 방식 등 지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았다는 이유였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하나. 심각한 2차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피해자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것.
둘. 지나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범죄행위를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을 것.
셋. ‘남성 고유의 성적 충동’, ‘몹쓸 짓’, ‘검은 손’ 등 표현으로 가해자의 책임이 모호하고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할 것.
넷. ‘성 노리개’, ‘씻을 수 없는 상처’, ‘수치스러운 일’ 등으로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
다섯. ‘짐승’, ‘늑대’, ‘악마’와 같은 표현을 써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하지 않을 것.
여섯. 음란물 유포쯤으로 가볍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
일곱.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 성범죄를 유발, 피해를 확산한 사회 구조적 문제 제기에 주목할 것.
그러나 언론은 조회 수 앞에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다. “’박사방’ 조주빈, 무엇이 그를 20대 ‘악마’로 만들었나(머니투데이)”, “’지킬박사와 하이드’ 조주빈의 ‘이중생활’(디지털타임스)”, “’학보사 편집장’ ‘봉사단체 팀장’… 진짜 얼굴은 ‘성착취 악마’(뉴스1)” “악마의 실체를 본다? ‘박사방’ 운영자 25세 조주빈 포토라인에(스포츠조선)”, “직접 피해여성 건들지 않은 조주빈, 그렇게 악마를 숨겼다(국민일보).” 언론은 계속해서 그를 희대의 악마 혹은 파렴치한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를 ‘악마’라고 부를수록 사건의 해결은 요원해져만 갈 뿐이다. 어쩌다 나타난 악마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가 한국의 강간문화 아래 나타난 이라면 그와 같은 이가 다시 출연하는 일은 충분히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n번방의 등장에는 피해자의 잘못도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내 딸이라면 그렇게 교육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는 치들이 있다. “n번방에 들어간 이들을 처벌하면, 어쩌다 야동을 본 나의 아들과 동생이 처벌받게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는 어떤가. 이런 인식의 바닥 위에서 그의 등장은 사고가 아니라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계속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불러내는 언론들에도 책임이 있다. 그가 청소년 성상담을 한다며 ‘지식인’에 남겼다는 답글들, 그가 자원봉사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들, 이전에는 학보사 기자이자 편집장이었다는 이야기들, 그가 이전에는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었으며 학점도 좋았다는 이야기들, 그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언론은 그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뿐이다.
그가 26일 경찰에 송치되며 한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온종일 언론에 흘러내렸다. 그가 손석희 사장과,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과, 김웅 기자와 가지고 있는 관계는 ‘n번방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기사의 댓글은 벌써부터 ‘진영논리’로 가득 차버렸다. 손석희 JTBC 사장 역시 뒤가 구린 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 말이다. 사실은 n번방 사건의 ‘26만 명’에 민주당 인물들이 다소 섞여 있는 것 아니냐는 말 말이다.
‘n번방 사건’의 무척 중요한 부분인 양 쏟아낸 기사들은 결국 n번방과는 전혀 상관없는 불필요한 논쟁들만 낳고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지적한다. “성범죄 가해자를 부각하는 보도는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내러티브만 만들어준다. 디지털 젠더 폭력과 관련된 너무나 일상화된 문화적 차원의 문제를 ‘가해자가 악마다’는 식의 문제로만 보게 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더 이상 가해자의 이야기에, 가해자의 행적에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범죄자의 말은 범죄자의 말일 뿐이다. 그를 악마인 양, 비범한 인물인 양 다루는 건 여기까지면 족하다. 그는 조커가 아니다. 그는 사연 있는 악당도 아니다. 그가 성착취 기록물들을 처음 공개하고 공유했던 텔레그램 방의 이름이 ‘고담방’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우스운가.
조주빈은 자신과 n번방의 실상을 취재하던 SBS PD에게 이렇게 물었다. “PD님이 보기에 저는 악마입니까?” PD는 이렇게 답했다. “아뇨, 당신은 그저 비열한 범죄자일 뿐입니다.” 맞다. 그는 그저 비열한 범죄자일 뿐이다. 비열한 범죄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