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야근하고 토요일을 맞아 내리 15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났다. 트위터를 보는데 뭐 이런 글이 눈에 띈다.
대충 읽어봤는데 솔직히 뭐 쓰레기 같다든가 예의가 없다든가 불쾌하다든가 하는 평가보다도, 내 입장에서는, 참 복에 겨워서 배부른 소리를 해놓았구나, 하는 감상이 든다.
인턴 3개월하고 그만뒀는데 요즘 살다보니 길거리 지나다가도 ‘와디즈’이야기 듣고 카페에서 녹차를 빨아도 옆 테이블 아줌마들이 ‘와디즈’를 떠든다. 나름대로 이젠 꽤 안정적이고 유명해진 기업이 돼 버린 것이다. 전 직장 경력을 물을 때 사람들이 이제 ‘와디즈’라는 곳을 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 요즘이다.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중
그렇게 따지면 나로서는 첫 직장이, 모르는 사람 찾기가 퍽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매일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 그런 웹 서비스였다. 거기서도 뭐 맘먹고 시작하자면 ‘깔 거리’가 한도 끝도 없이 나왔었다. 하지만 그런 거 어디 가서 이렇게 맛깔나게 써본 적 없고 앞으로도 떠들지 않을 계획이다.
이 글의 타겟은 경력이 없는 대학생들 정도다. 대학생들이 회사에 오게 되면 무슨 일을 겪게될지 ‘와디즈’와 기타 스타트업 경험을 기준으로 최대한 주관적으로 적었다. 경력 3~5년차 쯤의 자신감 한창 충만한 개발자들이 보기에 아닌거 같으면 댓글로 토 달아라.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중
내 첫 회사는 현재 ‘사실상 도산’ 상태다. 이 글이 전반적으로 비아냥거리고 있는 스타트업 문화, 힙스터 개발자 문화 수준이 아니고 민법, 형법으로 비판할 여지가 있는 회사다. 하지만 나는 비판하지 않는다. ‘토 달아라’라는 글쓴이의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을 계획이다. 누가 ‘거기 요즘 좀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항상 일관되게 모르겠다고 둘러댄다. 심지어 내 체당금을 담당하던 근로복지공단 직원에게도 그렇게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사축이고 호구라서?
아니면… 원래 기업이라는 게 그런 법이란 사실을 혼자만 모르고 깨벗고 설치는 글쓴이의 젖비린내가 참기 힘들어서?
‘기술블로그’를 허영이라 생각했었던 입장에서 말하자면
기술 블로그가 아니라 기술 포르노 사이트가 아닐까? 새로 나온 이 라이브러리가 해외에서 이렇게 주목 받더라, 이 기술이 이렇게 죽여 준다… 라면서 자위하다가 끝나는거다. 물론 이런 글들이 회사의 이미지를 아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는건 사실이다. 얼마나 허영심에 찌든 바보 같은 회사인지 알 수 있게 해주지.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중
솔직히 시인하자면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입사할 수 없는 곳들, 내가 지원해서 탈락했던 곳들의 기술블로그는 특히나 더 아니꼽게 보였다. 투자금 받아 쓸 데가 없어서 이런 거나 적어 올리며 세월 놀음하는 힙스터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정말로, 자기네는 이런 최신 기술 쓴다고 뻐기는 장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다르다. 한 회사에서 1년 이상 있어 보니 좀 알겠는데, 무슨 강좌 차원에서의 글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기술블로그 이력들은, 자기네들도 처음 보고 다른 사람들도 별로 본 적 없는 이슈들을 쳐내느라 일껏 고생한 이후의 비망록 내지 작업일지 같은 것이라는 게 요즘의 내 관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요즘 내가 회사 내부 레드마인에 남기고 있는 것들도 대부분 ‘어쩌라고 싶은’ 길다란 SQL 코드 한두 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코드 한두 토막이 아니다. 내 귀중한 30대의 하룻밤, 1주일, 족히 몇 달을 소진해서 간신히 얻어낸, 현 시점에서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믿을 수 있는 자료이며, 그 결과 지금 내 밥줄과 회사의 서비스 운영 일부를 책임져 주는 바 이 업무의 정수(精髓)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자라면 누구나 의당 얼마간은 갖고 있는 의협심이라는 것 덕분에, 어떤 회사 개발자들은 짬을 내서 외부에 공개해도 될 만한 그런 정답과 정수들을 다른 개발자들과 공유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기술블로그들이다. 오히려, 외부에 공유해도 좋을 수준으로 자기네 서비스 내용을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이면, 꽤나 훌륭한 기술기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운영하는 기술블로그라면, 심지어 담당자까지 있다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인가?
물론 자기네 서비스의 분수에 맞지 않는 허풍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바닥은 다소 힙스터리쉬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회사의 모든 기술블로그를 허영으로 매도하는 태도가 용인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다소 과장되이 와전되고 있는 ‘개발 바닥’에 악영향만 줄 뿐이다.
내 신입 시절이 이랬었더라면 소원이 없겠다
일단 처음 입사하면 신입에게 맡기는 일은 거의 100% ‘발표’다. (중략) 게다가 경력 10년차 20년차 앞에서 내가 아는걸 발표를 해야한다니 부끄럽고 압박감이 다가 올거다. 근데 그 사람들도 진짜 모른다. (중략) 그리고 발표 뒤엔, 🏆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보다 더 진부한 내용을 듣게 될거다. 첫 2주 정도 이렇게 공부하고 발표가 끝나고 나면 아마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줄 것이다. (중략) 당연히 다 만들고 나면 또 발표 해야함.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중
이것 하나만은 정말 말하고 지나가야겠는데 숫자가 틀렸다. 신입에게 자기가 만든 걸 발표해 보라고 맡기는 회사는 100%가 아니라 0.1% 정도로 있다.
나머지 99.9%의 회사에는, 신입이 들어가면, 이런 걸 한다.
- 자기 자리 컴퓨터 및 개발 환경 세팅 알아서 하기
- 선임자와 옆 자리 개발자에게 물어봐 가며 DB, 서버, VPN, git 저장소(재수가 없으면 SVN, 더 재수가 없으면 FTP, 더 재수가 없으면 그냥 개발용으로 떠 있는 원격 윈도서버!) 확보하기
- readme.md는 고사하고 인라인 주석 하나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며, 라이브러리/의존성은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고, 사내 정보 공유용 문서는 방치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기
- 그러거나 말거나 타 부서에서 들어오는 일감 처리 시작
사실 저 대목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 느낀 것은 질투심이었다. 눈물 나게 부러운 얘기다. 누가 내 코드를 라인별로 읽어준다고? 내가 뭔가 로직을 잘못 짰거나 기존 서비스와 갈등 나도록 만든 부분이 있으면 짚어 줄 거라고? 진부하게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는 자리가 정기적으로 있다고? 공부할 시간을 줘 가면서? 그러고 나면 실서비스에 영향 없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시켜 준단 말이야? 내 신입 시절이 저랬었더라면 정말 여한이 없을 거 같다.
내 신입 시절의 가장 큰 고통은 ‘내 코드가 혹시나 장애 일으키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었다. 내가 만들지 않았고 내가 전부 다 알지 못하는 서비스를 내가 난입해서 막 수정하고 그걸 아무도 들여다봐 주지 않는데 당연히 불안하지 않겠는가? 결코 나만의 고충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글쓴이의 회사는 최소한 이 불안만큼은 신입 인턴들이 느끼지 않도록 해 주기로 한 모양이다. 정말 문명적인 대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싫다는 사람들은, 나로서는, 그 바깥이 얼마나 야만인지 몰라서 저런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직 충분히 문명화되지 않은 업계
야만이라고? 최신 기술 다룬다는 개발이란 직종이 ‘야만적’이란 말인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곳 velog도 그렇고 여느 블로그에서나 떠드는 ‘무슨 기업에서의 0년차 신입 개발자로서의 회고’ 따위의 (중략) 글 들의 내용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1. 대학생 때 뭔 짓거리 했는지 간단하게 소개하고 본인은 실력 없는 병신 개발자라고 최대한 밑밥을 깐다.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중
2. 대기업 또는 유망 스타트업에 운좋게 합격했다고 기만한다.
3. 학생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 차이에 대해 설명하며 ‘프로’로서의 한 발을 내 딛기 위해 더욱 힘내자고 다짐함.
4. 정작 중요하고 궁금할 내용은 사람들이 댓글로 질문하게 됨. 답변은 ‘비밀 댓글’로 써 두거나 ‘메일 보내 드렸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글쓴이는 자신을 ‘운 좋게’라고 평가하는 개발자들이 “기만”을 하고 있다고 볼드까지 쳐 가며 쳐대고 있다. 되물어보고 싶은 것은, 그러면 뭐라고 했어야 불만이 없으셨을 일인가? “대기업 또는 유망 스타트업에 들어갈 만한 실력과 자격이 있어 네놈들 따위와는 달리 당연하게 합격했다”라고 실토했어야 했는데 운이라고 가식 떨었으니 존나 까줘야 한다 그 말인가?
그래 뭐 말 나온 김에 잠깐만 좀 냉소적으로 냉정해져 보자. 누가 한 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은 순전히 노동력이라는 제품의 수요와 공급, 질과 양에 관해 합의가 이루어져 발생하는 지극히 경제적인 사건이다. 엄밀히 말해서, 어떤 취업자도 정말로 운에 의해서만 취업하는 것은 아니다. 다 그럴 만해서 취업하는 것이다. 나도, 글쓴이도, 글쓴이가 죽어라고 코웃음치는 “신입 개발자로서의 회고” 따위나 쓰는 이들도 모두 다.
그런데 왜 개발자란 인간들은 (실제로) n년차가 되면 다 ‘돌이켜 보니 운이었다’ 같은 말들을 많이 남기는가? 여기서부터는 내 이론인데, 그것은, 아직 개발이라는 직군이 산업 분과로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생각해 보시라. 예컨대 인사과 신입으로 입사해서 4년째가 된 이들이 ○런치, ○로그 같은 곳에 뛰쳐나와 “인사과 4년차 신입이 하고 싶은 말” 같은 거 쓰냔 말이지. 유난히 프로그램 개발자들, SNS 마케터들 그리고 스타트업 사장님들만 그러고 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엔) 이 직군들엔 다른 공통점들이 더 있다. ‘맥’과 같은 예쁜 것에 천착하고, 잡스, 워즈니악, 조너선 아이브 등을 진지하게 존경하는 대신 델, HP, 시게이트, 마이크로소프트와 인도, 베트남, 중국의 무명 깃허브 기여자들은 개무시하며, 자기 직군만의 고충과 잣대와 레전드와 세계가 있다고 SNS를 향해 매일 호소한다는 것이다. 누가 물어본 적도 없고, 이제 딱히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아래 인용이 서술하는 현상은 그래서 일어나는 일이다.
원티드나 기타 Job 사이트를 가 보면 알겠지만 사무실 사진도 그럴듯하게 찍어두고, 팀원들 실실 처 웃는 모습도 사진 척 걸어두고 1주일에 한 번 조기 퇴근, 퍼질러 잘 수 있는 수면실 등 특별한 복지를 강조한다. 특히 SW 스타트업이라면 우리 회사오면 개발자로서 ‘성장’ 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 할텐데 성장은 개뿔 니 불만만 성장 할테니 이런 말에 현혹 되지 마라. 그 다음으로 더 병신 같은 회사는 아예 ‘우리와 함께 성장’하자고 할텐데 긴 말하지 않겠다.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이건 현상이고 그 원인은 자못 심각하며 그래서 이걸 비웃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원인이 뭐냐, 이 분과가, 이 업계가 아직 체계화하지 못한 거다. 일반 주제, 각 주제별 매뉴얼, 흔히 마주치는 장애물과 그 극복 방법 등이 이미 다 밝혀져 있어서, 그냥 배운 대로 알려진 대로 입 다물고 업무 처리만 하면 되는 분과가 아직 못 된 것이다. 그런 게 가능할 만큼 충분히 일반화, 표준화, 계량화되지 못했으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뭘 하게 되느냐? 정량적인 것이 안 되니까 정성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인용글에서도 볼 수 있는 바, 그게 바로 “운”과 “씨발…”이다.
보통 연차 좀 있는 개발자들 답변은 99% “그건 회사마다 천차 만별이죠 ㅎㅎ” 같은 좆같은 답변들 뿐인데 대학생들이 그걸 몰라서 묻겠냐? 네이버나 카카오 개발자는 “그건 부서마다 천차 만별이죠 ㅎㅎ”라고 할거다. (중략) 그 어떤 개발자도 속 시원하게 “아 회사 일이요? 아 씨발…”라고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중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가 꼽 주고 있는 바, “그건 회사마다”, “회사? 씨발…” 하는 개발자들은 다 아싸라든가 “창의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든가 하는 이 매도는, 지극히 부당하고 현실 감각 없는 전제 위에서 전개되어 씨알이 먹히지 않는 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바닥의 체계화를 정말 가로막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개발이란 분야도 충분히 산업화 가능하다고 믿는다. 개발 역시 매뉴얼에 따른 업무 처리가 가능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어떤 ‘꼴통’이 들어와도 서비스를 계속할 수 있고 어떤 ‘구루’가 퇴사해도 서비스를 굴릴 수 있다. 그게 되어야 비로소 이 분야도 산업 같은 산업이 될 것이고, 사람들은 더 이상 “자바 둘 타세요” 같은 농담을 개발자들에게 던지지 않을 것이고, 개발자들 역시 자기의 노동력에 확신을 갖고 일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개발이란 분야의 체계화는 필수 과제라 할 것이다. 앞서가는 곳들은 단위 테스트, 운영 환경 표준화, 배포 프로세스 같은 것으로, 우리처럼 후진 곳은 SI라는 업종으로 이 과업을 달성하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퇴사했다는 그곳 역시 그곳 나름의 방법으로 ‘어떤 신입이 들어오든 충분히 실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실무를 글쓴이는 이렇게 소개해 버린다.
너무 기대를 부풀었다가 막상 입사 했는데 니가 처음에 할 일은 “1억명의 요청을 감당 할 수 있는 멀티 스레드, 비동기 이벤트 드리븐 서버를 만들어야 한다!”가 아니라 “이 서버에 MySQL 설치 해 보세요.”다.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중
무슨 영국 시트콤 한 대목처럼 어깨를 으쓱해 주며 “도대체 달리 또 뭘 기대한 거야?”라고 대답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뭐에 실망한 것일까? MySQL 설치가 존나 쉽고 간단한 일이라서 실망한 것일까? MySQL이 이벤트 드리븐하지 않아서 실망한 것일까? 방금 설치한 이 DB에 커넥션이 한 1억개는 붙어줘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실망한 것일까? “최소한의 병신 걸러내기”를 통과했더니 MySQL 설치 같은 병신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실망한 것일까?
이렇게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하면 아무리 큰 일을 맡아도 충실하지 못한다. 원론적으로도 그렇거니와, 특히 연구개발 직종의 일에는 경중이랄 것이 없고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가, ‘일은 그냥 일이니까 매뉴얼대로 요건에 맞춰 처리하면 된다’라는 산업적이고 시스템적인 마인드가 그 분야를 산업다운 산업으로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글쓴이는, 하필이면, 그 마인드 빼고는 다 갖춘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백엔드 개발자에 가까웠으므로 백엔드 일거리를 떠오르는 대로 말 해 보겠다.
<와디즈 SW 인턴의 넋두리> 중
– REST API endpoint 하나 더 만들어서 response 구성하기
– 그리고 니가 그거 만드는데 쓴 라이브러리 관련 세미나 하기 (이게 특히 좆같음)
– Python으로 만들어진 서버 Go로 바꾸기
– 그리고 니거 그거 만드는데 쓴 Go 프레임워크 관련 세미나 하기
– 반복
(물론 파이썬, Go에 비할 바 못 되는 쓰레기 같은 PHP니까 무시하고 싶겠지만) 같은 백엔드로서, 그리고 매주 5일 출근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참담한 언사에는 차마 낯도 들지 못하겠다. 그치? 뭐 국회의원도 하는 일 별거 없다.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법 복사해서 다른 법 하나 더 만들고, 그거 관련해서 세미나 열고, 기존 법을 요즘 사람들에 맞게 고치고, 그거 관련해서 또 공청회 열고, 이걸 반복한다. 특히 공청회가 좆 같겠지, 말이 그렇잖아?
이런 태도로는 “Round Robin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이메일 서버 속도 개선”한 일도 그냥 까짓거 뭐 학부때 경험 대충 살려서 대충 잘 했던 그런 일이 돼 버리고, “출근 첫날 내가 사용할 PC를 직접 드라이버를 들고 조립”하는 일도 집에 가고 싶게 만드는 도저히 용납 못할 부당 업무 지시가 돼 버린다. 이런 사람이 개발자로 살면 첫째 그 자신이 항상 불만족스러울 것이고, 둘째 그 주변 사람들이 뭘 본받으려다가도 그만둘 것이며, 셋째 이 업계의 발전에 정말 하등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성숙한 업계에 필요한 것은 “기술 블로그”를 화려하게 뒤덮은 최첨단 기술을 황홀하게 늘어놓으며 세간에 이름을 떨치는 워즈니악 한두 명이 아니다. 성숙한 업계는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모두 중요한 일로 간주하는 태도, 그 각각에 대해 어떻게 하면 된다는 매뉴얼, 그리고 그 매뉴얼대로 일을 수행해 성과를 내고 그 과정을 공연히 트집 잡지 않는 무명의 다수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그걸 못 하는 한 그 업계는 언제까지고 사옥 인테리어, 별의별 복지, 있어 보이는 채용공고 등으로 노동력을 유혹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치다. 쓰게 받아들이고 개선하거나 그냥 아예 참견을 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 몰랐다는 것처럼, 당신네들만 모른다는 것처럼, 혹은 업계 꼰대들이 감춘다는 것처럼 욕설 섞어 가며 지랄 염병할 일은 아니다. 웬만큼 속물이 아니고서야는.
맨 앞에 5일 내내 야근했다고 적은 건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쓴 소리가 전부 어떤 주니어 PHP 사축 개발자의 세뇌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을 거 같아서다. 좋다 그래 판단은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두 가지만큼은 정말로 항상 참인데, 갓 입사한 사람이 코딩을 어떻게 했는지를 세미나까지 열어 가며 들어 주는 회사는 정말 드물다는 게 첫째이고, 글쓴이의 글보다는 이 글이 좀더 성의가 있으며 이 업계에 건설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게 둘째이다.
내가 와디즈 직원이 아니었기를 참 다행이다. 이렇게 복에 겨운 소리만 늘어놓는 사람이랑 실무를 같이 할 뻔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