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바꾸자, 선거제! ⑥] 의석 수는 왜 늘려야 하는가

피할 수 없다면 늘리자 의석을!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주어진 너무나도 많은 권력

2023년 대한민국 예산은 638조 7천억 원. 원래 정부는 639조 원을 쓰고 싶어 했는데, 정부안을 최대한으로 지키려는 여당과 정부 예산을 최대한 깎으려는 야당 간 실랑이가 눈에 오간 끝에 국회가 3,000억 원을 깎았다.

사람들이 그 실랑이에 주목한 사이, 국회의원 간에는 자기 지역구 예산을 더 따오기 위한 싸움도 나름대로 치열했다. 선수, 요직, 유력 정치인과의 연줄이라는 무기를 활용해 이긴 자는 당당하게 현수막을 내걸고 얼마 따왔다 자랑했고, 지역구민들도 칭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원들은 현수막에 적힌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쥐락펴락한다. 올해 예산안을 국회의원 수대로 단순히 나누면, 한 사람 혼자 2조 1,290억 원어치 예산을 담당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웬만한 대기업 1년 매출액을 의원 하나가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그리고 최종 예산안은 소소위나 3+3회동 같이 소수만 참여하는 협상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그들끼리 협상을 하며 몇 천 억 예사롭지도 않다는 듯이 깎아다 올리기를 반복했다.

8년 전 예산안은 올해의 절반을 간신히 넘는 375.4조 원이었고, 8년 전에서 올해만큼의 정도는 아니더라도 예산안은 계속 오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안 늘어나면 의원 한 사람이 쥐락펴락하는 액수는 더 커질 것이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대한민국 예산 총지출 현황. (자료 출처 = 기획재정부 열린재정)

보좌관은 국회의원의 대표적 특권으로 꼽힌다. 상근 보좌관 8명에 인턴 비서 1명을 둘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보좌관이 더 많은 선진국은 미국뿐이고, 유럽에서는 보좌관을 아예 두지 않는 곳도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에 가깝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본연의 일인 의정 활동은 물론, 지역구 관리, 의원이 속한 정당 내 활동 등의 업무도 해야 한다. 특히 이 지역구 관리라는 것이 문제인데. 이걸 잘하려면 동네 주민과 한 번이라도 더 접촉하는 것은 물론, 지역 유지가 여는 행사에 얼굴을 수시로 내비쳐야 한다. 그래야 당선이 되니까. 그래서 지방 지역구 의원들은 평일에는 국회에서 의정 활동, 주말에는 지역구에서 지역구 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보좌관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땅덩어리도 무지막지하게 넓은데, OECD 중에서 의원 1인당 국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연방의회 의원 한 사람이 혼자서 그 많은 인구와 업무를 감당하기는 어려운데 의원 수를 늘릴 생각이 없으니 보좌관 늘리기로 해결하고 있다.

하원의원은 최대 18명의 보좌관과 함께 약 70만 명의 유권자를 대변해내야 한다. 상원의원은 최대 34명을 둘 수 있는데, 의원마다 보좌관 수가 천차만별이다. 60만 명도 채 안 되는 와이오밍주와 4,000만 명에 육박하는 캘리포니아주도 똑같이 두 석씩을 배분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고 세계는

우리나라는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OECD 국가 중에서 의원 1인당 국민 수가 많은 축에 속한다. 미국, 일본, 멕시코에 이어 대한민국이 의원 수가 적은 편에 속하는데, 앞에 세 나라는 그래도 우리나라보다 인구 많고 국토 넓고 지방 자치 활발하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의원 한 사람이 많은 국민을 대표하는 나라는 아니었다. 1948년 남한에서 단독으로 총선거를 치러졌을 때만 해도 인구는 2,000만 명을 간신히 넘겼다. 의원 정수는 200명이었으니, 의원 한 사람이 국민 10만 명을 대변하도록 선거구를 구성한 셈이었고, 이 기준을 제대로 따랐다면 오늘날 국회의원은 500석이 넘어야 했다. 이후 의석은 인구 증감에 맞춰 의원 1인당 10만 명대 아래를 유지하고, 4. 19혁명으로 수립된 제2공화국에서는 하원(민의원)은 줄이지 않은 채 상원(참의원)을 새로 꾸리면서 의석수가 단숨에 300명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국민 정서를 핑계로 오래가지 못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6대 국회 의석수는 제헌 국회보다도 적은 175석으로 줄였다. 민주당 정권의 혼란을 틈타 권력을 빼앗은 그들에게 의석수 줄이기만큼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정치 개혁 의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국회를 거수기 취급하는 동안에도 인구와 경제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의원 수를 늘려갔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약 35년간. IMF 금융위기 때 고통 분담 차원에서 의석을 10% 감축한 것 외에는 큰 변동이 없었고, 의석수를 늘린 거라고는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탄생에 맞춰 하나 늘린 것이 전부였다.

국회의원 의석수 변동에 따른 의원 1인당 국민 수 변화 추이. 꺾은 선 그래프(왼쪽 축)은 역대 국회의원 의석수를, 세로 막대 그래프(오른쪽 축)은 선거가 있었던 해당 연도의 남한 전체 인구에 국회의원 전체 의석수를 나눈 값(의원 1인당 국민 수)을 나타낸 것이다. 국민 인구수는 시점에 따라 참고한 통계 값이 다르지만, 모두 통계청에서 작성한 자료를 참고했다. (1948년~1954년은 1949년 인구총조사, 1958년은 1955년 인구총조사, 1960년부터는 장래인구추계)

그러면 우리나라와 반대에 속하는 나라들은 어딜까? 바로 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이다. 유럽은 의회를 통해 민주 정치를 이뤄나가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더 많은 대표가 민주주의를 더욱 탄탄히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슷한 인구/경제 규모를 지닌 곳은 10만 명대 밑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소국들은 5만 명 아래로 떨어지는 나라들도 많다. 보좌관 없고 청렴하고 생산적인 국회로 곧잘 꼽히는 스웨덴 의회는 의석수가 349석이다. 우리나라보다 의석수가 많지만, 인구는 970만 명에 불과해 의원 한 사람이 27,000명을 대변하도록 하고 있다.

주요 국가 별 의석수 현황.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의석 수가 많은 국가를 대상으로 정리했다. 양원제 국가는 하원 의원에 국가 인구를 나눠 1인당 국민 수를 구했기 때문에, 양원 의원을 포함한 1인당 국민수는 더욱 줄어든다. (의원 1인당 국민수는 소수점에서 반올림, 국가 별 인구수는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22년 자료를 참고.)

얼마나 늘려야 하는가

대표는 많을수록 좋고,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의석을 500개 이상으로 의석을 늘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시간에 무작정 늘리면 여러 혼란이 생길 수 있고, 대한민국 인구수가 가파르게 줄어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여러 사정을 모아 봤을 때 우리나라는 최소한 이 정도의 의석수는 늘려야 한다.

1.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전제로 한다.

현행 선거제의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나 전면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왕왕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는 제도 특유의 결함 때문에, 전면 비례대표제는 지역 대표성과 유권자-의원 간 긴밀한 소통을 중시하는 한국 정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적절하지 못하다.

그래서 현행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동시에 존재하는 선거제도가 유지되어야 하며, 비례대표 의석은 지역구 의석의 절반 이상이어야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연동형이 가장 좋지만, 이 정도로 늘린다면 병립형은 차선 정도는 될 수 있다.

2. 지역구 의석은 유지하거나 늘린다.

선거제 개혁을 시도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기 위해 지역구 의석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지역구 줄이기 그 자체는 정치 개혁이라는 대의에 공감하는 여론이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통폐합되는 지역구에서 나오는 반발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농어촌은 계속되는 인구 감소로 인해 지역 소멸을 우려해야 하는 것은 물론 중앙 정치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지역구 의석 유지 내지는 1석 증가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지역구 의석을 대폭 줄인다면 그 피해는 농어촌에 집중될 것이고, 지방에서는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도시 지역도 지역구에 대해 할 말이 있다. 특히 인천과 경기는 인구가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으나 적정한 수준의 의석수를 보장받지 못한데다가, 이미 인구 상한선을 넘긴 지역이 여럿 있다.

결국 이런 여러 사정으로 지역구 253석은 오히려 늘려야 하는 실정인데, 대폭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260석 정도면 선거구당 평균 인구를 20만 명 이하로 유지할 수 있고, 숫자가 0단위로 딱 떨어진다는 소소한 장점(?)도 있다.

1과 2 두 조건을 종합한 결과, 22대 국회 정원은 최소 390석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의원 1인당 국민 수는 13만 2,379명으로 4만 명이나 감소한다.

눈치만 봐서는 정치를 바꿀 수 없다

정부 수립 75년 만에 어엿한 선진국으로 발전하면서 행정부나 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사이 국회는 200명에서 딱 100명 느는 데에 그쳤다.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쥐어진 권력은 너무나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그 권력을 쓰기도 어렵다.

그래서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왔지만,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조차 의석수 늘리기만큼은 언급을 꺼렸다. 정치 혐오, 특히 국회 불신이 심한 국민 정서에 눈치를 너무 봤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국민 정서에 편승해 의석수 줄이기에 앞장서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새 정치를 명목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을 때, 선거제 개혁을 어떻게든 저지하고 싶을 때, 노회한 정치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자 할 때 등등. 시기는 제각각이었으나 일하는 국회, 정치 개혁, 효율성 등등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곧잘 불려 나왔다.

의도가 어땠든 의석수 줄이기를 정치 개혁으로 포장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다. 국회의원 한 사람은 그 자체로 국민을 대변하는 헌법기관이자 권력기관이다. 그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자 한 사람에게 주어진 권력이 더욱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정치인 스스로를 자기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의원정수 늘리기는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것과 함께 정치 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국민 정서에 연연해하지 말고 의석수 늘리기에 대해 국민에게 솔직하고 진솔하게 진실을 알리는 한편, 국민이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많은 보좌관이라던가, 높은 세비라던가…)을 내려놓는 노력과 희생 또한 필요하다. 

※ ‘제대로 바꾸자, 선거제!’ 6부작을 마칩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