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참여 기구라는 데서 활동하며 생각하고 느꼈던 청년 정책과 담론

청년이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일들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머 이건 해야 돼!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오늘은 뭔 일 없나 하는 마음으로 천안시청 홈페이지를 클릭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였고, 또 다른 하나는 ‘천안시 청년정책네트워크’라는 것이 새로 생겼다는 글이었다.

청년정책네트워크?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것에 호기심이 생긴 나머지 특유의 건조하고 딱딱한 공고문을 읽어 내려갔는데… 아니! 이거는 내가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잖아!

공고문에는 청년정책네트워크를 청년 참여 기구로 소개하며 문제 및 정책에 대한 의제 발굴 및 제안, 청년정책에 대한 모니터링 등등에 관해 활동할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누구보다도 사회에 불만 많고 참견하기 좋아하고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 시정에 참여할 기회를 선뜻 준다는 데 안 하고 베길 수가 있냐 이 말이다.

생각이 미치니 경력사항이나 직업을 쓸 때 잠깐 쭈뼛거린 것 빼고는 원서를 술술 써내려갔고, 이왕 쓴 김에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 신청서도 썼다. 며칠 뒤, 주민참여예산위원회는 떨어졌고 청년정책네트워크는 붙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떨어진 건 아쉬웠으나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열린다는 사실에 나는 살짝 설렜다.

그 설렘은 위촉식이라는 데를 가서 청년 정책이 어떻고 저렇고 얘기를 들으며 조금 흔들렸다. 분명 공문에는 천안시 ‘청년’ 정책에 관해 활동할 권한을 준다고 했는데, 나는 그 따옴표를 떼고 읽었다는 사실을 위촉장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건 내가 공문을 멋대로 읽은 게 문제니까 내 잘못 인정. 그리고 청년에 한해서 논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나는 기분 좋게 시장에게 위촉장을 받았다.

위원장이라는 사람을 뽑고, 분과위원회라는 것을 꾸린 뒤로 나는 나름 열심히 참여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분과회의와 분기마다 열리는 총회 등등 2년 내내 회의란 회의는 단 한 번 빼고는 모두 참석했다. 때로는 회의 장소가 버스로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있어도,(시청을 왜 불당동에 지어서 ㅂㄷㅂㄷ) 때로는 부산에서 입사시험 본 그날 KTX 타고 오면서까지 회의 시작 시각을 지켰다.

출석만 신경을 쓴 건 아니다. 어느 날 기사를 읽다가 청년 정책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꼼꼼히 읽었다. 의견을 공유할만한 청년 정책에 관해 사람들 읽어보라고 쪽글도 썼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회의가 시작되면 청년 정책과 관련된 아이디어나 네트워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일장 연설을 마스크나 카메라 넘어 침방울을 튀겨가며 늘어놨다. 사람들은 나를 에이스 취급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눈길을 알게 모르게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았는데, 청년정책네트워크, 별다줄해서 ‘청정넷’, 혹은 ‘네트워크’를 하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실망이었다.

용두사미 혹은 조별 과제

되돌아보니 네트워크는 전형적인 조별 과제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학교라는 좁은 사회에서 하는 조별 과제와 달리 이건 시청이 관여하고 60여 명 되는 지역 청년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고, 그 때문에 조별 과제에서 나타나는 단점이 더욱 복잡다단한 원인으로 발현되었다는 것 정도?

시청은 위원을 모집할 때만 해도 청년 참여 보장, 의견 청취 같은 단어로 청년들을 유혹(?)했으나 가면 갈수록 약속을 지킬 의지는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청정넷 출범 초기, 할당된 예산은 0원이었다고 전해진다. 모임을 굴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고, 관청이 만들어낸 모임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덕분에 모임 구성 후 빠르게 진행되어야 했던 교육이나 워크숍, 선진지 견학 등이 축소되거나 미뤄지거나 무산되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수당이라는 걸 주는데, 요즘 어린이들 세뱃돈보다 못한 액수를 줘서 저녁 밥값과 교통비를 제외하면 남는 돈이 몇천 원에 불과했다.

돈이 없으면 다른 방면으로 지원하는 것이라도 원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청정넷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내가 알기로는 2년 새 적어도 두 번 바뀌었다. 담당자마다 업무 처리 방법이나 적극성이 달랐고, 사람이 바뀔 때마다 진행 상황을 새로 보고해야 했다. 분과위원장이라는 사람은 회의만 되면 이런 문제를 토로하기 바빴다.

무엇보다도 제일 답답했던 것은 그 참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청정넷 출범 직후 2년이 다 되도록 예산 편성이나 사업 추진에 대해 의견을 듣는 자리는 결국 무산되었다. 문화예술 사업 이외의 분야는 뭘 열심히 해도 반영되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지원이 이렇게 부족했어도 우리끼리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면 조직이 어느 정도는 돌아갔을 텐데, 우리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네트워크가 출범 초에 제법 활기차게 돌아갔던 건 네트워크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적극 나서준 한 사람 덕분이었다. 그 사람은 국가 단위 청년 참여 기구에서 활동할 정도로 청년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활동했고, 실질적 책임자가 되어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를 계획했다. 그의 경험과 열정은 신생 조직이 뿌리를 내리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지방 의원으로 당선되어 네트워크를 나가면서 활력은 사라졌다. 최고 책임자는 이따금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네트워크 업무에 손을 놔버리는가 하면, 계획했던 일정들은 줄줄이 연기되었다.

이렇게 네트워크가 돌아가니 열기는 차게 식었다. 출범 1년 만에 20여 명이 단숨에 빠지고, 신입 위원을 위촉하기는 했으나 지난 9월 총회에 참석한 인원은 60명 중 10명을 간신히 넘었다. 규정상으로 한 달에 한 번 열려야 하는 분과회의를 하지 않은 분과가 있었다고 들었다. 이러니 지난해 연말에 열린 마지막 총회는 위원들은 아쉬움을 토해내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청정넷을 또 하게 된 이유

이렇게 청정넷에 불만이 많았지만, 나는 며칠 전에 시청에서 2기 위촉장을 받아 왔다. 내 기대대로 청정넷이 돌아가지 않아서 실망이 많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제법 많이 얻기도 했다. 그래도 2기는 전보다는 잘 굴러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어떻게든 내가 제안했던 것들을 마무리 짓겠다는 고집, 그리고 내가 얻은 것들이 맞물려 또다시 지원서를 썼다.

가장 큰 것은 다른 사람과 소통이었다. 생판 처음 본 사람들이 분과위원회라는 한 달에 한 번 회의하는 곳에 모이는데, 거기서 다양한 사람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것은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고향을 두고 천안에 홀로 사는 사람, 사회복지사로서 밤낮 없이 일하는데 정작 청년에 대한 지원은 없어서 서운한 사람, 2년제 대학을 나오고 여기저기 도전적인 일을 하는 사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사람, 행복주택에서 사는 사람 등등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배경, 성격 등 많은 것들이 나와는 달랐다. 생각해보면 서로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특히 나 같은 취업 준비생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자리는 그걸 가능케 하는 자리였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서로를 약간이나마 알게 된 뒤에는 내심 그 시간을 기다렸다.

청년 지원 정책을 갈구하고 절실한 청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위원들과 대화하면서 느낀 것들과 더불어 청년을 연결고리 삼아 청정넷 안팎에서 들었던 다양한 교육과 강연들에서 제법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고백하자면 이걸 하기 전까지 스스로가 청년이면서 청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가 대학을 천안 바깥에서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청년의 이미지는 인서울 대학을 다니며 홍대 거리를 다니는 인싸 청년들이나 이제 막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초짜 직장인들이 전부였다. 거기에 나는 천안이 고향이기 때문에 천안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현 상황이 익숙해서 청년인 천안 시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활동하며 천안 청년들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천안은 대학생과 삼성 계열사 공장이 있어 전국에서 손꼽히는 젊은 도시지만, 정작 청년들이 정착하기에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천안의 대학생들은 왜 정착 대신 통학을 선택하는지, 안서동에는 대학이 네 곳이나 모여 있는데 왜 변변한 대학로 하나 없는지, 얼마나 많은 청년이 오피스텔 전세 사기를 당하고 있는지, 천안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왜 천안을 떠나야 하는지, 천안에 놀거리는 왜 이렇게 없는지 등등. 내가 사는 동네에 또래들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월 31일 열린 제2기 천안시 청년정책네트워크 위촉식. (자료 출처 = 천안시)

청년이라는 외침이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IMF 금융위기 이후 청년들은 입시와 스펙 경쟁에 내몰렸고, 경쟁에서 탈락한 청년들은 기나긴 미취업, 혹은 열악한 노동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 청년들은 민주화 대신 ‘반값 등록금’을 호소하고자 거리에 나왔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주거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단체도 만들었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호사를 누리는 듯하다. 우리 사회나 정치에서 어느 때보다도 청년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이 불리고, 청년을 위한 정책이 쏟아져 나온 때가 없었다. 내가 말한 청정넷은 천안뿐만 아니라 전국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청년 기본 조례 제정과 함께 생겼다. 청년들을 위한 공간도 우후죽순 생기고, 취업 지원 정장이나 토익 응시료 지원은 기본이 되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청년센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각종 청년 정책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고, 청년 정책 상담이나 지원도 가능하다. (클릭하면 온라인 청년센터로 연결.)

하지만 우리 사회가 청년을 부르짖는 만큼 청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기에는 글쎄? 잘 모르겠다. 이것은 청년에 대한 정의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청년기본법상 청년은 만 19세부터 만 34세까지이지만, 천안은 만 18세에서 40세까지를 청년으로 보고, 보령은 45세까지도 청년이라고 한다. 정의부터가 지역마다 제각각이니 지자체마다 청년들에게 돌아가는 지원이나 혜택 또한 들쭉날쭉한 것은 당연하다.

청년의 정치/사회 참여는 매우 부실하다. 청정넷이라는 존재를 이 글을 일고서야 안 청년들이 많을 것이고, 나름대로 활동을 열심히 해도 성과는 상당히 미약하다. 제도권 정치에서 그나마 영향력 있는 청년 정치인은 이제는 청년이라 하기에는 적잖이 연세를 드셨을 뿐더러 소수 청년만을 대변하는 0선 중진이라 불리는 그 분 정도고, 국회에서 청년 국회의원은 홍일점 취급이나 받으면 다행이다.

여기에 청년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은 부려먹으려는 높으신 분들은 내 속을 더욱 답답하게 한다. 내가 보기에 청년 문제는 우리 사회의 쓰디쓴 현실들을 알뜰살뜰히 모은 에스프레소와 같다. 내 꿈을 담기에는 너무나 ‘좁고 허름한 내 집’, ‘세금, 없는 복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려운 취업’ 시장, ‘착취가 판치는 노동’ 현장, ‘독박 육아’ 등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예전에 청년이었던 현 어른들이 대부분 받았던 것들이고, 이것을 고치지 않는다면 미래의 청년들도 똑같이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문제는 청년 맞춤형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다 뜯어고쳐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어떤 언론과 정치인들은 586세대 VS (망할 놈의) MZ세대, (그놈의) 이대남 VS 이대녀 같은 이런 알맹이 없는 대결 구도만 애써 만들어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청년을 자기가 속한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만 안간힘을 쓰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는 사이 ‘이생망’을 외치는 청년의 목소리는 방구석에 갇혀버리고, 어느새 대한민국은 ‘인구 절벽’이라는 커다란 함정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렇게 현실이 답답하니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초대 청정넷 활동이 시원찮았음에도 2기도 목표 인원이었던 60명을 채웠고, 시청에서도 느낀 것이 있어서인지 1기보다는 지원을 더욱 충실히 하겠다고 공언했다. 또다시 청년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줬고, 나는 위원이 됐으니 취업 전선에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꿈틀거려 보려고 한다.

나는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오래전부터 꿈꿔왔기에, 동네 청년들을 위해 했던 내 활동들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임할 생각이다. 누구 눈에는 내 행동이 돈키호테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돈키호테보다는 내가 하는 행동이 그나마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나는 확신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