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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미나> 출간 기념 북토크라는 것에 참가 신청을 했다. 슬슬 유튜브 콘텐츠가 떨어져가고 있어서 밑져야 본전이라고 응모한 게 웬걸 당첨이 되어서 합정으로 갔다. 가서 보니, 있는지도 몰랐던 (내 문해력과 주의력은 이 모양이다.) “독자 사전 질문”이란 것을 놓고 좌담하는 자리였는데, ‘내게 자본주의는 ~이다’라는 사전 질문에, 누군가가, 자본주의는 “초밥”이라고 답했다는 모양이다. 사회자와 책 저자와 좌중 일동이 이거 대체 누가 쓴 거냐고, 이게 무슨 뜻이냐고 한바탕 궁금해하며 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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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초밥은, 2만원 돈이면 한 판을 사먹는 동네 마트의 것조차도, 여전히 사치재다. “대졸 군필 풀타임 화이트칼라 정규직” 없는 세월이 길었던 집안 내력 때문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초밥은 그 자체로도 대단히 사치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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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익히지 않았으나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는 생선 순살”이라는 그 개념부터가 퍽 분에 넘치는 것이다. 2세기쯤 전만 하더라도 그런 걸 먹을 수 있는 곳은 일본 해안가 마을 몇 군데뿐이었을 테다 애초에 생선을 날로 먹는 문명이 드물었으니.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노르웨이 앞바다인지 태평양인지 모를 곳에서부터 여기까지 잘도 실어 온 싱싱한 횟감을 회쳐서, 매년 깨끗이 도정된 쌀(이것도 엄청 기계화된 첨단 문명이다)로 지은 밥 위에 얹어, 반도 내륙 지방 어딘가의 식당 곳곳에 배급하는 일을 잘도 해냈다.
그렇다. 초밥은 가히 유통 과학, 세계 무역, 문화 교류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생활 양식의 총아다. 상상해 보라. 구소련 혹 “중공”의 어딘가에서 초밥을 먹자면 과연 무엇을 해야 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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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또한 초밥은 자본주의적 세계 개변에 앞장서고 있는 문물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는 AI에게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를 그려 달라고 하면, 머리 꼬리 지느러미를 가진 연어가 아니라, 초밥 위에 얹는 그 연어가 강물을 거스르는 그림을 그려 준다고 한다. 왜? 대다수 현대인들이 촬영한 연어라는 게 온통 횟감으로서의, 상품으로서의 연어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료로 학습을 했으니 AI의 결과물이 그 모양인 건 당연하고, 나로서는, 애초에 인간들 스스로는 연어가 본디 어떻게 생겼는지 알긴 알까 싶다.
무엇(만)이 어떤 규모로 얼마나 극단적으로 양식, 남획 혹 약탈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뭐가 멸종하거나 피해를 입거나 잊혀져가고 있는지, 생태 다양성이 어쩌고 투기 자본의 개입이 저쩌고 각국의 배타적 공급망 구축 계획이 어떻고 하여간 파면 팔수록 괴담뿐일 터이다. 물론 그 괴담의 핵에는, 필요와 상관없이 이윤만 보고 움직이는 자본주의가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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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미칠 때마다, 이런 걸 좀 덜 먹으려고, 안 먹으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밥도 그렇고 이를테면 종이책도 요즘은 거의 전자책으로 대신하게 된다. (<자본주의 세미나>도 전자책으로 샀었어서, 거기에 사인을 받기는 곤란한지라, 이 북토크에는 저자의 다른 책을 들고 갔었다. 이 얘기를 해드리려고 했었는데.)
초밥을 즐기고 종이책 서재를 꾸리는 분들이 다 기후 악당이라서 그렇다든가 그게 아니고, 이 모든 것이 거부 불가능한 선택일 리가 없어서 그렇다. 초밥이 주어져 있다고 해서 꼭 그걸 사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 생각엔, 자본주의적 세계관과 생활 방식이 주어져 있다고 해서, 꼭 그걸 따라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둘 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지구의 분수에 넘치게 사치스러운 무엇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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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은 분명 깊이가 있는 전문분야다. 누군가는 ‘초밥 문화’에서 어떤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 미식을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도 그렇겠지 덕분에 우리는 잠시나마 디즈니와 스타벅스를 누렸지 않은가. 하지만 누군가가 자본주의 아닌 세상을 반대한다며 드러눕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마 초라해 보일 것이다. 초밥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시위하는 늙은 “미식가”를 상상해 보면 그건 분명 그렇지 않은가.
확실히 지금 사회에서 밥 빌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올지도 모르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반사적으로 망설이게 되는 면이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도식상에서만이라도, 자본주의 역시 꼭 우리 사회에 불가결한 건 아니라고 선언할 수 있었으면 한다. 초밥이 꼭 그렇듯이, 분명 분수에 넘치게 맛있고 즐거운 뭔가가 있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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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초밥이다” 소리를 들었을 때는 대강 이런 생각들이 막연히 떠오르긴 했는데 그래서 뭐 어쩔 거냐 싶어져서 입 다물고 90여분간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돌아왔다. “초밥 드립”의 원저자님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집필 의도의 해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북토크의 씬 스틸러를 해놓고서 노쇼를 하시다니 너무하신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