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중교통은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헤매기만 하는가

‘ITX-마음’이 온다, 혼란과 함께


‘새 차’는 언제든 환영이다.

새 차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쁨을 준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외관이며, 몸에 나쁠 것 같아 두려우면서도 안 나면 섭섭한 새 차 냄새며, 묵은 때 없는 산뜻한 의자 등등. 이런 것들은 오로지 새 차에서만 누릴 수 있다.

새 차를 새 차여서만 반기는 건 아니다. 고속열차가 아닌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새 차는 절실하다. 고속열차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접근성, 목적지, 비용 등등을 이유로 기존선만을 달리는 일반열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만, 2003년 이후 새로운 무궁화호 객차가 들어오지 않은 사이 노후 객차가 하나둘씩 폐차되면서 무궁화호 좌석 공급량은 줄어만 갔다.

한때 기관차 10칸을 달고 다니는 무궁화호가 서울과 부산을 오간 적도 있지만, 현재는 같은 구간에 6량을 굴리는 것도 버겁다. 덕분에 출근 시간대 천안 – 서울, 구미 – 대구 무궁화호를 입석으로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김포골드라인, 혹은 서울 9호선의 악명을 그곳보다 더 비싼 돈을 내며 경험하고 있다.

마침 ITX-마음은 폐차되는 무궁화호 객차를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승객에게는 디젤기관차 특유의 소음이나 객차 복불복이 사라지고 모든 좌석에 콘센트가 있다는 점이 편리하다. 

철도회사 관점에서도 좋은 것이 한 편성당 좌석 수가 기존 ITX-새마을보다 는 것은 물론이고, 경부선이나 호남선 혹은 출퇴근 시간대처럼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때는 KTX처럼 두 열차를 하나로 묶어 운행할 수 있게 되어 특정 시간에 더 많은 좌석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기관차 견인 열차와 달리 가감속이 빠르면서 부드럽고, 열차를 회차하는 데 있어서 편리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열차 운용의 효율성이 늘어났다고만 알면 된다.)

그래 새 차는 기쁜 마음으로 환영해 줘야 한다. 예상했던 것보다 1~2년 늦게 만들어지다 보니 주말에 빈 좌석을 찾아 예매하느라 살짝 빡치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굴러가 주는 게 어딘가 싶고, 제조사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간선형 전동차라 설계상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이따금 고장 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타고 가는 동안에는 멀쩡하면 되니까 깊게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그래. 기쁜 마음으로 ITX-마음을 환영하고 싶은데, 이런 것 저런 것 다 제쳐두더라도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무궁화호가 사라진다는 불안한 예상이 점점 현실로 이뤄질 것 같기 때문이다.

ITX-마음은 무궁화호를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무궁화호를 계승하지는 않는다. 일단 이름에서부터 그 열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티를 팍팍 내는 이 열차는 프로모션이 끝나면 푯값이 ITX-새마을과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름 바꾸기나 새 차의 탄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때는 새마을호 다음가는 고급 열차였던 무궁화호, 오늘날에는 고속열차 등장과 열차 고급화로 일반 열차 중 가장 아래 단계 열차로서 녹슬어 가고 있다. 운임도 그에 맞춰 가장 저렴하지만, 좌석은 그런대로 탈 만한 데다가 속도도 제법 빠르다. 통근이나 통학, 혹은 대도시권에서는 주요 도시를 잇는 급행열차 역할을 충실히 하는 무궁화호는 서민의 발로 새롭게 태어났다.

무궁화호가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그 열차를 운영하는 한국철도공사는 정작 쓴 입맛을 다신다. 서민 반발을 이유로 무궁화호는 15년 넘게 운임을 동결하는 동안 비슷한 구간을 운행하는 시외버스는 최근 몇 년 새 여러 차례 운임이 인상됐고, 경기도 광역버스 기본요금이 무궁화호 기본요금보다 더 비싸졌다.

그 사이 무궁화호는 객차에 입석 손님을 가득 채워야 적자를 면하면서 적자 덩어리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부실 적자 공기업이라는 소리를 듣는 한국철도는 무궁화호를 계속 굴리고 싶은 의욕이 사라졌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 들어오는 열차의 등급과 운임을 높이면 만성 적자도 해소하고 적잖이 쌓인 부채를 갚을 수 있다는 희망회로를 돌릴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서민의 발이라는 찬사와 적자 덩어리라는 비판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맨 무궁화호는 쓸쓸한 은퇴를 맞이할 처지에 놓였다.

사실 최하위 등급 열차를 없앤 적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에 비둘기호가 사라지고, 2004년에는 통일호가 사라졌다. 그때 반발과 혼란이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속열차라는 신문물에 비해 이 열차들은 워낙 낡고 초라해서인지 반발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면 이번에도 무궁화호가 사라지는 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글쎄…

무궁화호가 완전히 사라지는 시점이 다가올수록 불만과 논쟁은 더욱 커지리라 장담한다. 가장 큰 문제는 요금. 무궁화호가 사라진다면 모든 열차는 ITX-새마을 요금만큼 받게 된다. 2008년에 고유가와 서민 교통비 부담 완화를 이유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의 기본 운임을 오히려 내려 버린 이래로(요금 조정 전까지 새마을호 80㎞까지 7,500원, 무궁화호는 50㎞까지 3,200원이었다.) 요금 인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ITX-마음의 등장은 사실상의 요금 인상이고, 이용객들은 요금 인상을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ITX-새마을은 기본요금 구간 이후 거리당 운임이 더 가파르게 늘기 때문에 장거리 이용객들은 더욱 버거운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무궁화 특유의 운용을 ITX-새마을과 새 열차가 어떻게 받아낼 것인지도 의문이다. 앞서 사라진 두 열차의 공백은 무궁화호가 고스란히 받아냈다. 원래 급행, 장거리 위주 노선 운행을 도맡던 고급 열차는 졸지에 완행, 단거리 노선을 온전히 감당해 내야 했다. 그래서 무궁화호는 하루에 몇 번밖에 지나지 않는 벽지 노선도 다니고, 간이역에도 선다.

이 무궁화호가 사라지면 ITX-새마을과 ITX-마음이 모든 수요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 두 열차는 무궁화호보다는 운임 상으로 상위 등급이다. 같은 거리상에 있는 무궁화호보다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고, 운행 소요 시간을 단축하려면 모든 역에 서다시피 하는 운행은 줄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다면 소규모 역들은 정차 횟수가 지금보다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철도 당국에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광역철도는 수도권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는데, 이제는 고속열차 신설로 교통량이 비교적 넉넉한 기존선을 활용해 지방 대도시권에도 통근형 전동차를 투입하려고 한다. 이게 현실이 되면 일반 열차의 단거리 수요는 상당 부분 줄어드는 동시에 해당 지역 통근 통학은 편해지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원대한 계획과 달리 광역철도가 단거리 수요를 온전히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삽을 뜬 광역철도는 대도시 생활권 일부에 불과하다. 충청권 광역철도 중 계룡-신탄진 구간과 구미-동대구를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가 전부고, 광역철도 활성화에 필요한 구간 연장은 계획만 있을 뿐 진척이 없다. 하긴 수도권 다음으로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동남권에 새로 놓이는 부전 – 마산 광역전철이 경제성을 이유로 광역전철 전동차를 투입하느니 마느니 입씨름만 하는 상황인데 뭘 더 바랄까.

결국 아무런 대비도 안 된 채 2028년에 무궁화호가 사라진다면 일반 열차 이용객들은 불편함은 오히려 늘고서 요금만 오르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다.

평택에서 서울을 기준으로 여러 대중교통 수단의 편도 비용을 비교하면 무궁화호가 얼마나 저렴한 편인지를 알 수 있다. 무궁화호보다 저렴한 것은 광역 대중교통 수단밖에 없다.

이런 불안한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다.

언론에서는 이따금 새 차 온다는 소식에 요란을 떨 뿐이고, 영감님들은 워낙에 공사다망하셔서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마 무궁화호가 없애질 때가 돼서야 무궁화호 종운 소식을 알릴 때 ‘무궁화호 충격 근황’이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어느 정부 잘못이라고 국회에서 삿대질하며 호들갑을 떨려나…

그때 가서야 호들갑을 떨어봤자 너무 늦었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우리는 무궁화호를 어떻게 할지를 지금 당장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한국철도공사가 수익성과 공공성 그 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다.

일단 한국철도는 더 이상 철도청이 아니라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공기업이래도 최소한 적자가 나지 않을 정도의 운영을 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건 경영학에서 기초 중의 기초고, 철도 회사는 표를 소비자 편익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비싸게 팔아 돈을 벌어야 생존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철도공사는 대표적인 만성 적자 공기업으로 꼽히는데, 그 이유는 공사가 내 마음대로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철도 열차가 구석구석 달리는 철도망은 전적으로 국민 세금을 들여 만든 사회간접자본이기 때문에 쉽게 민영화할 수 없거니와, 교통 약자 지원이나 벽지 노선 운행 같은 교통 복지 서비스 또한 사기업이 온전히 해낼 수 없다. 교통 공공성 확보라는 임무도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철도공사는 공사화된 이래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하나는 KTX 표를 일반 열차보다 비싸게(사실 외국과 비교하면 그렇게 비싸지도 않지만) 파는 것이고, 또 하나는 PSO라 해서 산간 철도 운행이나 광역철도 노인 무임같이 교통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를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받는 것이며, 마지막은 구조조정과 인건비 축소라는 명목으로 열차표 판매나 정비 같은 비주력 사업을 외주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방법을 동원해도 한국철도의 경영 상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15년째 요금 인상 한번 없는 일반열차는 그 상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철도공사 관할 부처는 국토교통부는 공사가 자생할 수 있는 길을 틀어막고 있다. 예로 들면 한국철도공사가 굴릴 줄 알았던 수서행 고속열차를 갑자기 등장한 SR이라는 경쟁사를 위해 뺏은 것도 모자라 한국철도 자산과 인력을 갈아 넣어 SRT를 굴리게 한다던지…


이렇게 한국철도공사가 적정한 수준으로 돈 벌 기회를 틀어막은 채 부담만 지운 사이 우리는 작지만 소중한 열차 무궁화호를 자칫 잃게 생겼다. 수익성을 희생시키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결과를 공공성 약화로 되돌려 받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아마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이렇게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