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최대한 정확히 읽어 보려고 시도한 결과를 공유해 봅니다.

<디스클로저 데이>(2026), 망해버린 세상에게 미지를 다시 조우하자고 호소하기


1. 정말 우연히도 아주 최근에 <미지와의 조우>(1977)를 난생처음 (무려 감독판으로) 감상했다. ‘너무 유명해서 안 봤지만 하도들 명작이라니 보긴 보는데, 대체 무슨 미지를 어떻게 조우하길래 그토록 명작인가 어디 보자’ 팔짱 끼고서 봤다. 막상 (맨 끝에 정말로 조우를 하던) 그 미지 자체는 김 빠지는 것이었고, 그보다는 전반~중반에 묘사되는 주인공 가족의 갈등과 감정 상태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현관문 안에서는 그다지 화목하지도 문제없지도 않은 한 가족이, 현관문 바깥으로는 문제 없고 화목한 1970년대의 백인 주거 지역 정상 가정인 체하려 애쓰는, 그런 위태한 신경증.
생각해 보면 신경 쓰이는 일이다. 제목이 <미지와의 조우>라면, 그냥 바로 미지를 조우하면 된다. 기왕이면 개쩌는 미지, 개쩌는 조우를 1분 1초라도 더 보여주는 것이 좋았을 터이다. (<죠스>야말로 개쩌는 상어턱으로 한탕 한 오락 아니었던가?) 하지만 스필버그는 그 대신, UFO는 미끼라는 양, 당장이라도 파탄 날 듯한 아슬아슬한 집안 풍경에 극의 절반 가까이를 할애한다. 왜? 소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그게 스필버그의 의도로서의 은닉 대본이었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2. 콘텐츠의 세계에서 외계인, UFO 등이 무엇의 표상인지는 이젠 제법 널리 알려져 있다. 과학이 그 존재를 누설하고 반증하는 미지의 타자, 그러므로 막연할지언정 거짓은 아닌 그것/들에 대한 집단 히스테리의 투사물. 그것은 실로 우주 선점 전쟁 시대의 과학이 쏘아 올리고 핵 전쟁 군비 대결의 집단 공포가 느슨한 초점으로 포착해 낸 할리우드의 망태기 할아버지였다. “너 자꾸 국가 방위 투명성 보장하라고 떼 쓰면 저 위에 있는 접시 아저씨가 이놈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최신 과학 상식과 일반 이성을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외계인이 설령 있을진대, 그들이 우리와 다짜고짜 “캐삭빵” 전면전을 하고 싶어할 리는 만무하다 — 소련이 그렇다면 또 모를까. 이 간단한 설정 모순은, 체제 대결이 정점에 이르고 민간의 천문학과 계측/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는 더욱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이때 나온 것이 <미지와의 조우>와 (역시 너무 유명해서 아직 안 본) <E.T.>(1982)였다. 이때를 즈음하여 외계인과 UFO에 대한 서구의 이유 없는 적대감은 적어도 은막상에서는 누그러졌으며,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킨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한다.

3. 스필버그는 그 패러다임 전환 — 감히 “대-UFO 정책기조 현실화”라고 이름해볼 수 있을까? — 내지 설정 모순 해결을 어떻게 해낸 것이었을까? <미지와의 조우>만 놓고 말하자면, 그가 한 일은 그 신경증의 ‘대상’ 대신 ‘주체’를 직시한 것이었다. “미지” 대신 “조우”에 초점을 놓고 <미지와의 조우>를 다시 보면, 영화가 갑자기 전혀 다른 줄거리를 띰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저들에게 있지 않고 우리들에게 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대상들과 만나는 법을 전혀 모른다. 심지어 우리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조차도, 그들이 조금이라도 일반 이해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언행과 목적의식을 갖기 시작하면, 그걸 마주 대하기는커녕 공포에 사로잡히고 외면하고 벗어날 생각에만 급급하다. 우리 중 특권적 정보 없이도 상식적인 행동을 취하는 용기는 극소수에게만 있으며 나머지 대다수는 믿기 어려운 낯선 사실에 대책 없이 취약하다.”
그리고 그건 냉전의 고비를 넘어가던 미국 사회가 바로 그러했던 탓에, 그런 영화를 본 뒤의 그들은 외계인과 UFO에 대한 입장을 비로소 냉정히 현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밀 병기든 외계인이든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겠으되 둘은 별개다. 전자는 무서운 적이지만 후자는 일단 조우하고 봐야 할 타자다. 영화 봤지? 걔네가 우리 죽이러 왔냐고. 애초에 생긴 것도 요따만한 게 별거 아니었고.

4. 그렇게 <미지와의 조우>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교롭게 유튜브 추천에 <디스클로저 데이>의 티저 예고편이 떴고, 그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업임을 알았을 때, 몇 가지가 ‘안 봐도 비디오’로 뻔히 예상됐다. 일단 스필버그는 전작 <파벨만스>로 본인 필모그래피를 유언장처럼 마감해 놓은 터라, 여기서부터 수행하는 작업들은 전관예우의 일환 내지는 못다 했던 소리를 끝내 다 해 보는 차원일 터였다. 한편 <미지와의 조우>를 하고 <E.T.>를 한 사람이 2026년에 와서 또 외계 존재 얘기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게 정말로 외계 존재 그 자체에 관해 더 찍을 게 남아서 그런 것일 리는 만무하다. (실제로 티저 예고편의 이미지는 <X-Files>이나 <환상특급>에 한 번쯤은 나왔을 법한 것들로 구성돼 있다. 솔직히 말하면 2시간 넘는 영화 전체가 그렇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필버그가 굳이 실무를 보고 유니버셜 픽처스가 돈을 댔다면, 아무리 그래도 아주 사기 행각은 아닐 터이고 뭐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까짓거 속아 주지 뭐. 그리고 웬걸 개봉은 생각보다 빨리 되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조조로 봤다. (차마 주말 정상 요금제로 볼 값어치는 아니라고 봤고, 대신 IMAX는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정답이었다. 너무 앞자리로 예매한 것만 빼고.)

5. 일단 좋았냐 안 좋았냐의 기준으로 말하면, 좋았는데, 안타깝게 좋았다. 영화가 실제로 구현하고 있는 장르, 들려주고 싶었을 대본, 그 기저의 문제의식이 하나도 전달될 성싶지 않아서다.
마케팅은 철저히, 설마 하니 이번에도, “외계인”의 구체적인 형상을 비밀로 해둠으로써 그게 무슨 대단히 중요한 각본상 반전 내지 스포일러 요소인 양 행세하고 있다. <디스클로저 데이>쯤 되면 스필버그의 외계인 영화에서 외계인 그 자체는 전혀 창의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 엔터테인먼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거의 법칙처럼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작사와 배급사는 그들의 “정체”를 극장에서 목격하라는 식으로 바람 태웠다. 이것이 그들의 첫째 잘못이다. (개인적으로는 <컨택트>(Arrival, 2016)보다 참신할 거 아니면 외계인 윤곽 정도는 아끼지 말고 보여줘라 싶다.) 둘째 잘못은,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본작을 “외계 문명을 만난/둘러싼 암투와 갈등” 정도로 아주 따분하게 국한하여 오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상은 무엇이냐? 본작은 어디까지나 ‘인류 공영을 위해 폭로될 가치가 있는 비밀’에 관한 영화, 아니 차라리 고전 정극에 더 가까운 무엇이다. 이 부분의 오해가 바로잡히지 않는 한, 당신이 그 145분간 다른 무엇을 헛되이 기대하든, 당신은 기어이 그걸 구경도 못 하고 극장을 나와야 한다.

6. 본작은 무언가 close되어 있던 것이 어느 하룻날에 disclose되어야 하는 상황에 관한 것이다. 이는 “공개일”이라는 뜻의 타이틀부터 메인 태그라인까지 일정 수준 두루 강조된 요점이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 그게 당신을 두렵게 하나요?” 여러분이 각본가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여러분의 주인공은 무언가 감추어져 있던 것을 폭로해야 하는 사람인데, 어느 하루를 정해서 해야 한다. 정해진 설정은 여기까지다. 자, 어떤 질문들이 떠오르시는가?

  • 주인공이 폭로하는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대체 뭐길래 그토록 거창하게 폭로해야 하는가?)
  • 왜/어쩌다가 하필 특정한 날짜에 폭로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곧바로 인터넷 아무데나 올려 버리면 안 되는 건가?)
  • 그 내용은 어쩌다가 감추어져 있었을까?
  • 왜 꼭 폭로라는 형식을 통해야만 하는 것일까?

<디스클로저 데이>의 제 1막은 바로 이 질문들을 답하는 데에 탁월하며, 오직 그 과제에만 일념을 다하는 막이다. 최신 유행 기술 떡밥, “싸이버”한 CGI, 블록을 버스팅하는 액션, 초현실적인 상상력 등등은, 이 답변에 걸리적거린다 싶을 때마다 미련 없이 벗어던져진다. 그리고 그건 심지어 크레딧 롤의 배경음악까지 그러하다. 살면서 그간 들은 중 손에 꼽게 당혹스러운 편곡이었다. “이 음악이 영화의 정서적 요약으로 기능하지 않게 하라” 같은 디렉션이라도 있었나 싶을 정도.

7. 영화의 나머지 2~3막(정확한 분기는 모르겠지만 크게 3막 구성이라고 봤다)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액션 씬들은 차라리 음모론 소재 스릴러 영화로서의 세금 신고 작업이라 할 지경이고, (크롭서클, 일기예보 씬에 나온 음성언어 등의) 이런저런 트리비아들도 설정 놀음으로 빠지는 일 없이 “지금 그게 본론이 아니잖아 정신 안 차려?” 하는 느낌으로 썩둑썩둑 절제된다. 적잖은 “실관람평”이 “스필버그는 그냥 예술 하기로 한 모양이다”라고 고개 젓는 것은 이런 연출적 결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또 하나 더 있을 거 같은데, 요컨대 “아니 외계인의 정체를 폭로한다는 영화가 외계인은 안 보여주고 뭔 창세기가 어쩌고 어린 시절의 창밖이 저쩌고 ‘철학적'(ㅋㅋㅅㅂ^^)인 소리만 하냐?” 하는 감상일 것이다. 음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 <디스클로저 데이>와 스필버그의 관심사는 외계인 보여주기가 아니었고 폭로라는 행위 자체, 그것을 둘러싸는 갈등의 가장 일반화/정형화된 형태를 탐구하는 데에 있었는걸. 그리고 그건 이념 대립의 논쟁, 어쩔 수 없이 관념어를 빌어 추상화되는 “뜬구름 같은 소리”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작업이다. 그리하여 본작은 ‘뭔가 쓸데없이 말이 많고 지루하다’ 하는 혹평을 받는 대신, 고전적이고 연극적인 색채를 얻는다. 영화 중반부터 나는 뜻밖에도 셰익스피어를, “마법 지팡이”가 등장하던 중세의 연극들을 떠올렸다. 모르긴 몰라도 이 각본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대중들을 위해서도 큰 어려움 없이 각색 가능할 것이며, 무사히 상연하여 무난히 성공할 것이다. 본작의 한 가지 야심은 거기 있었겠다고 혼자 추측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알 만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대중들이 몰라주는 길을, 아주 모르지는 않게, 택했겠나.

8. 내가 추측하는 본작의 또다른 야심은, 액면상으로는 여전히 같은, 그러나 조금 다른 차원에서 역설될 필요가 있는 어떤 주장을 견지하겠다는 것이다. 무언가 “80억 명”의 사람들을 위해 공개되어야 하는 진실이 있다면 그걸 공개하고 모두가 이에 정직하게 반응함이 옳다는 생각, “모르는 것을 두려워 말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사는 그 자체로 스포일러일까? 생각해 봤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찌 보면 이 메시지는 스필버그가 SF를 할 때마다 늘 주장된 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왔던 ET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는 실관람평은 단순히 그 디자인의 외계인의 회귀나 외계인과의 교감 따위만을 가리킴이 아닌, 이 총체적인 “메시지”를 가리킴이다.
대부분의 실관람평은 “진작에 기밀 풀려 있던 옛날고리짝 UFO 자료화면 집어넣어 가면서 이게 충격적인 비밀이랍시고 호들갑 떤다” 운운 혹평인데, 내 의견엔 이것 역시 본작의 요점을 납득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과한 비난이다. 일단 작품 내적으로는, 다시 말하는데, 본작은 폭로되는 진실/정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보다는, 그게 ‘파급력이 있을 때’, ‘공개되어 마땅할 때’ 어찌함이 옳은가를 다루는 작품이므로, 폭로의 내용 부분은 밋밋한 무늬로 채워 불필요한 주의를 끌지 않아야 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작품 외적으로는 — 이제 마지막 토픽이다! 좀만 더 참아주시길! — 적어도 스필버그의 입장에서는, 이토록 명백하고 중차대한 토픽으로서의 외계인의 실재 문제에, 어쩌다가 이 세상이 이토록 심드렁해졌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9. UFO라는 주제가 “사회적인 스트레스의 순간에 나타나는 자기 방어”(조세희)로서의 컬트에서 순수한 (음모론/유사)과학의 논쟁점으로 재배치되던 시기, UFO라는 토픽은 또한 ‘운명 공동체로서의 인류’라는 주제와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다. 이는 공교로우면서도 한편 당연한 귀결이었는데, 외계인들에게 지워져 있던 한 가지 역할 — “다들 그만 싸우고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얼른 화해해!” — 이 임무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인류 전체의 실존 위기는 점점 드물어지거나 인기가 없어져 갔다. 석유의 고갈도, “프레온 가스”와 환경오염도, “지구 온난화”도 “테러리즘”도 점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촉발하지 못하거나 힘없이 촉발하고 스러질 뿐이었다: “우리 인류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모두의 유일한 비행선 지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가 정말 그토록 서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다른가? 우리는 누구이고 장차 누구여야 하는가?”
그리하여 2026년 지금 우리는 그 어떤 충격적인 진실에도 눈 하나 까딱 않는 강철의 인스타그래머들이 된 상태다. 우습(지 않)게도,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수준으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그래서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오던 영화 밖 현실 속 비밀 중에 가장 흡사한 것은 엡스타인 파일이다. 현재 엡스타인 파일은 트럼프 치하에서 부분적으로 공개되는 중이다. 그래서 뭐? 세상이 뒤집혔나? 세상은커녕 그 어떤 정권도, 어떤 가담자도 그 죄의 값을 받은 자가 없다. 인류 최고의 부 권력 커넥션은 모두 아동성착취를 위해 존재하더라는 추악한 진실 앞에서도, 2026년의 세상은 잊고 딴청 피우고 모른척하기에 능란한 상태다. (이 좌절감은 이미 <돈 룩 업>(2021)이 훌륭하게 해설했으며, 심지어 ‘소행성 충돌’이라는, 당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명백히 임박하는 인류 공동의 실존 위기를 소재로 해서 잘 해낸 바다.)

10. <미지와의 조우>를 하고 <E.T.>를 했던 스필버그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그는 외계’인’의 존재 앞에서 또 하나의 ‘인’인 우리 인류가 무엇을 어째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지를 조우하자고, 이 신경증적인 조바심의 정체를 이해하고 진실을 보자고, 상대가 어디서 왔는지 모를지라도, 고향을 찾고 있는 모양이라면 고향으로 데려다 주자고. 무작정 적대하거나 아전인수하며 우리끼리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말자고. 우주의 경이를 직시하자고. 그리고 한때는 정말 세상이 칼 세이건이니 빌 나이니 하는 사람들의 공로에 힘입어 정말 그런 ‘인류 공영’스러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나의 아무 근거 없는 추측이지만, 스필버그는 이것이 애석하여 기어이 메가폰을 잡고야 만 것 같다. 자기 이전 작품의 셀프 오마주를 왕창 집어넣고, 가급적 익숙한 외계인 이미지를 고수하며, 관객의 태반이 이미 보았을 UFO 떡밥을 보여주는 것은 오로지 이 향수를 불러일으켜 사람들을 다시 그 담론의 장으로 불러오고 싶다는 희망이었던 거 같다.
얘들아 봐봐 이거 기억 나지 너네 이런 사진 돌려보고 그랬잖아. 봐봐 얘 E.T. 닮았지. 그때 내가 이런 영화 찍었던 거 기억 나? 이거는 내가 일부러 데빌스타워 꼭대기 씬 비슷하게 찍은 거야. 어때 생각나지? 그때 우리 이런 비디오 보면서 그랬잖아. 이 세상에 우리만 존재할 리가 없지 않냐고, 다른 문명 다른 외계인을 만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고 우리 그런 얘기 했었잖아. 기억 안 나? 왜 그래? 재미 없어? 저번에 본 거 말고 다른 외계인 없냐고? 그게 무슨 소리야 외계인 생긴 게 뭐가 중요해 외계인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 창세기의 하느님은 우리만의 하느님이 아니고 외계인들의 하느님일지도 모르잖아 지금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뭐? 모르겠다고? 이런 옛날 얘기 또 해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아니 이게 왜 옛날 얘기야 너네 대체 왜 그래? “좀 들어 봐!” (암전. 폐막.)

11. 써놓고보니 무슨 무적의 강철 쉴드를 치는 극극극호평처럼 되었는데, 전반적으로는 그리 좋은 영화/엔터테인먼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두루 위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이런저런 미독(未讀) 내지 오독 몇 가지에 대해서는 내 감상을 보태 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언부언을 좀 해보았다. 들어보니 암만해도 내 영화가 아니다 싶으신 분들은 나중에 디플이나 넷플에 올라오는 걸로 보시면 될 것이고, 이 글은 그저 이미 보고 오신 분들께 반박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