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부터 파도 소리까지

각자의 자장가 – 당신을 잠들게 하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잠은 훌륭한 도피처다.

고단한 하루 끝에서 잠은 우리를 현실로부터 잠깐 도망칠 수 있도록 돕는다. 때로 잠은 회복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의식은 중단되고, 뇌세포 활동의 부산물들이 청소되며, 새로운 세포가 자라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뇌는 삐걱이기 시작한다. 사고력과 판단력이 저하된다. 아, 자고 싶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이 괜히 있었겠어. 잠을 제대로 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사실 마음껏 푹 잘 수 있는 사람도 몇 없는 것 같다. 잠 자리에 들 시간에도 우리는 쉽게 잠들지 못해 뒤척거린다. 각자의 이유로 밤을 지새우고, 불면에 시달린다. 잠을 자기 위해 베개의 위치를 바꾸어 보고, 이불을 덮었다가 걷어차 보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스마트폰을 켜고, 잠을 도울만한 소음들을 찾아 헤맨다. 어릴 적 들었던 자장가처럼, 내 옆에서 조용히 소근거려줄.

다섯 명의 사람들에게 각자의 자장가에 대해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진짜 노래는 별로 없었다. 그것은 때로는 파도 소리가 되고, 때로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된다.

Moon River – Audrey Hepburn (edtre)

ⓒ [Breakfast at Tiffany’s], Blake Edwards

잡지 마감기간이었다. 집에 열한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직장에서 집까지 총 한 시간 사십 분, 경의중앙선을 탈 때는 운이 안 좋으면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냥 자기는 하루가 아까우니 간단한 맨몸 운동을 한 후 인터넷을 뒤적거린다. 워라밸을 이런 식으로라도 맞춰야지, 안 그래? 자리에 누우니 한 시, 눈을 감은 채로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가 다 되었다.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여섯시 반이다. 고작 네 시간 반을 자고 생활이 될 리가.

방이 좁아 침대를 버린 나에게 사실 가장 아늑한 침대는 출근을 위해 타는 광역버스다. 짧으면 20분, 막히면 40분 동안, 수면이 멀미인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푹 잘 수 있다. 날카로운 카드 소리, 시끄러운 엔진음이 싫어 이어폰을 꽂는다. 드럼 소리도, 전자음도 싫어 찾은 음악은 Audrey Hepburn이 부른 Moon River.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속에서 그가 기타를 치며 불렀던 노래다. 시종일관 잔잔하고 편안한 이 음악은 마음도 귀도 편안하게 만든다. 앞으로 두 시간 후면 직장에 있을 거라는 사실은 잊은 채로.

AM 2:40 – 코렛트 (윤석)

ⓒ코렛트(collet11) 마이크테스트 • 2018년 11월 9일 haksaljoah  제작 클립

술 약속은 대체로 밤이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찾아온다. 과제도 대체로 밤이다. 부랴 부랴 밀린 과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찾아온다. 성실한 대학생은 이렇게 낮과 밤이 바뀌기 마련이다. 밤에 잠 드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야 한다. 아침을 위해서다. “누가 옆에서 잔잔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면 잠에 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처럼.

고민 끝에 찾은 것은 트위치 스트리머 ‘코렛트’의 방송이었다. 늦은 밤, 중저음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소통하는 그의 목소리는 잠에 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필요 이상으로 목청을 높이지도 않고, 텐션을 억지로 끌어 올리려 애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음성은 잠이 드는 데 충분하다. 아, 그가 따분하거나 지루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시길.

Brooklyn Nine-Nine & Prison Break on Netflix (성질급한 나무늘보)

ⓒ Brooklyn NINE-NINE

유튜브와 트위치에서 다양한 오버워치 컨텐츠로 활동하고 있다. 새벽 서너 시까지 방송을 하고, 영상 편집까지 마치면 벌써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된 지 오래다. 잠에 들기 전 유튜브에 어떤 영상을 올릴지 계획하고, 다음 방송 컨텐츠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보면 꿈 속에서도 오버워치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요새는… 잘 자지는 못한다. 하핫. 기획이나 편집, 썸네일 등을 하나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결정해야 하다 보니 고민이 많아서, 아니면 밤낮이 바뀐 생활을 계속해서일 수도 있겠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틀어 놓다가 잠 든다. 최근에는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를 정주행했고, 요즘에는 브루클린 나인-나인(Brookly Nine-Nine)을 보고 있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보자고, 제발.” 시즌 4 마지막 회 시놉시스가 이상하게 와 닿는다.

파도 소리 the Sound of Sea Wave (지나쓰)

ⓒ Insomnia Clinic

하루가 괜스레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고, 직장에 출근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웹서핑을 하고. 하루를 참 마무리하기가 싫다 싶다. 잠들기까지의 과정이 싫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씻는 것도, 불을 끄는 것도, 자려고 눕는 것도 모두 싫다. 잡생각이 든다. 스스로가 싫어 습관처럼 하게 된 자기비하를 하고, 우울해 하다 보면 어느새 늦은 새벽.

그런 새벽이면 파도소리를 틀어둔다. 피키캐스트에서 ASMR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밤에 잠이 안 올 때 들으면 좋다던가. 제일 잘 맞는 건 역시 파도소리였다. 듣다 보면 바다 위에 둥둥 떠 내려가는 느낌이 들며, 서서히 잠에 든다. 철썩, 철썩 하는 소리에 몸의 긴장도, 마음의 응어리도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달까.

답을 찾지 못한 날 – 윤하 (시나)

ⓒ BOYCOLD, 윤하

잠 들기가 쉽지 않다. 자려고 눕고 나면 고민과 잡생각이 넘실넘실 몰려든다. 앞으로는 어떡하지, 내일은 어떻게 보내지. 뭐 그런 생각 말이다. 내일 일어나도 바뀌는 건 하나도 없을텐데 싶다. 답답하다. 아침에 눈을 떠봤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마 또 다시 히키코모리처럼 방 안에만 틀어 박혀 있겠지.

그런 밤과 새벽, 혹은 낮을 위로해주는 노래는 윤하의 ‘답을 찾지 못한 날’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뭐가 달라질까. 밤잠을 설치다가 문득 생각이 나. 이토록 약한 내가 무슨 쓸모일까. 답을 찾지 못한 날.” 위로가 된다. 나 혼자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줘서, 남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려줘서. 일단, 오늘은 푹 자자.

일단, 오늘은 푹 자자.


본 게시물은 인터뷰이와의 인터뷰 후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