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바꾸자, 선거제! ③] 중대선거구제는 왜 안 되는가 – 이론편

소선거구제를 위한 변호


여기서는 소선거구제의 장점과 중대선거구제의 단점을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고,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선거 제도나 투표 방식 또한 살펴본다.

단순함이 주는 미덕

한 선거구에서 당선자 한 명을 가린다는 사실은 생각 외로 장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 지역구 의원은 비교적 좁은 면적에 사는 적은 인구수의 유권자를 대표할 수 있고, 지역 주민들은 여러 의원 찾을 필요 없이 지역구 의원만 찾으면 된다. 유권자와 의원 한 사람 간 관계 구조가 단순해져서 서로 더 많이 만나거나 소통할 수 있고, 국회의원은 민의를 잘 대표할 수 있다.

덕분에 지역구 국회의원은 강한 지역성을 띠게 된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은 중대 사안에 대한 여론이나 지역 현안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국가 중요 정책을 추진할 때 여론을 전달할 수 있는 한편,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를 국정에 반영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한국 지역구 의원들은 이 특성이 더욱 강조된다. 한국 특유의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작은 사업 하나 추진하려고 해도 돈과 권한이 없어 사업 대부분을 중앙정부와 협의하거나 국비 지원에 의존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럴 때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자체와 정부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지역구민들은 원하는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어 좋고, 국회의원은 지역구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지나쳐져서 쪽지 예산이나 특정 상임위 쏠림 현상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지방 분권이 촉진되고 국회의원이 지역구 당선에 몰두하는 환경을 줄인다면 차차 나아질 것이다.

단순함이 주는 또 하나의 장점은 책임을 물기 쉽다는 점이다. 만약 의원이 일을 잘하지 못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표를 안 줘서 낙선시키면 되고, 이런 환경 덕분에 신인 정치인이 중대선거구보다 쉽게 진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총선마다 초선 의원이 절반 가까이 육박하고, 물갈이가 잘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0년(16대) 이후 국회 내 초선의원 현황. 막대 그래프는 의원수(왼쪽 축, 단위는 명), 꺾은선 그래프는 국회 내 초선의원 비율(오른쪽 축, 단위는 %,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이다. 가장 높았던 때는 17대(2004년) 국회로, 열린우리당 돌풍과 민주노동당 약진이 있었던 해이다.

더 많아질 거대선거구, 더 심해질 농어촌 소외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금 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만들고 싶다면, 좋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아마 선거구는 둘 이상 소선거구를 합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특별/광역시 산하 자치구나 50만 이상 자치시는 같은 행정구역 내 두 개 이상 잘게 쪼개져 있는 선거구를 합칠 텐데, 여기서는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인구 소멸 위험에 처한 소도시나 군. 이미 이런 지역은 소선거구제하에서도 적게는 두 곳, 많게는 4곳의 행정구역을 묶어 선거구 하나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고,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도 큰 불만이 있다.

국회의원 한 명이 담당하는 면적이 너무 넓어져 지역 주민 간 소통이 어렵거니와, 일부 지역은 인구 기준을 맞추려고 생활권이 일치하지 않는 지역과 묶이다 보니 더욱 반발이 크다. 그래서 지방 사람들은 최대한 현재 지역구 의석을 유지해서 농어촌 지역구를 최대한 지키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안타깝게도 인구 소멸 현상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 선거구제가 바뀌지 않더라도 농촌 지역 선거구는 면적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거대 선거구마저 중대선거구로 바꿔야 한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거대선거구끼리 뭉쳐 하나의 초거대 선거구를 만드는 것. 이렇게 되면 지역구 국회의원은 있으나 마나가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담당하는 면적이 지나치게 넓어져 국회의원이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활동하거나 소통할 수 없다. 지역 대표성은 더더욱 떨어진다.

또 다른 하나는 인접한 도시 선거구와 합치는 것. 이렇게 되면 국회의원이 담당하는 면적은 첫 번째 안보다 줄어들지만, 농어촌 지역은 상당히 소외될 것이 뻔하다. 인구가 많은 지역 위주로 선거 운동과 지역구 의정 활동이 몰리고, 도시 지역 여론이 더 많이 대표되는 현상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초거대 선거구 탄생과 중앙 정치에서 농어촌 소외라는 흐름에 기름을 붓게 될 것이다.

전국 거대 선거구 현황. 기초자치단체 네 곳이 묶인 선거구만 11곳에 달하고, 이 선거구들은 47개 선거구가 있는 서울특별시보다 몇 배 이상 넓다. 특히 가장 넓은 ‘강원 홍천 횡성 영월 평창’ 선거구의 면적은 가장 작은 선거구인 ‘서울 동대문 을'(6.01㎢)보다 900배 이상 넓다. (면적은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 총선 당시 인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인수현황, 2022년 12월 기준 인구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참고)

바보야 문제는 단순다수제야!

한국에서 소선거구제의 병폐가 유독 도드라지는 이유는 ‘단순다수제’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다수제에서는 1위 후보가 2위 후보보다 한 표만 더 많이 얻어도 당선되다 보니 당선자가 과반 지지를 얻지 못해도 당선되는 사례가 나오고, 사표가 많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소선거구는 내버려 두고, 후보가 절대다수에게 지지받을 수 있도록 투표 방법을 바꾸면 어떨까?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정도가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나라에서 먼저 도입한 결선투표제와 선호투표제는 좋은 사례다.

결선투표제는 프랑스 대선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로 잘 알려졌지만, 러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대통령제를 도입한 국가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1차 투표에서 대개 과반의 유효 득표를 얻은 후보가 없으면 득표를 많이 받은 두 명으로 결선투표를 치러 당선자를 가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선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활발한데, 프랑스는 이 제도를 의회 선거와 지방선거에서도 활용한다. 대선에서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면 총선에서 먼저 도입해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선호투표제는 두 번 투표해야 한다는 결선투표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다. 호주 의회에서 유권자는 각 후보를 지지하는 순위를 투표지에 적어내기만 하면 된다.

개표 과정은 1순위 선호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결선투표보다 복잡하게 진행된다. 최저 득표자를 탈락시킨 뒤, 각 표에서 최저 득표자보다 낮은 선호 순위로 기표가 된 후보의 순위를 한 단계씩 올리고 1위 기표수를 재집계하고, 이를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개인의 선호가 더욱 정교하게 반영되고,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얻어야 유리하기 때문에 네거티브나 진영논리를 부추기는 선거 전략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선호투표제를 도입한 호주 하원의원 선거 투표용지. 빈칸에 도장을 찍는 한국과 달리 선호 순위를 적어야 한다. (자료 출처 = 호주 선거관리위원회)

소선거구제와 환상의 짝꿍, 비례대표제

그리고 굳이 지역구 선거에 손을 대지 않아도 비례성과 다양성을 높일 방안이 있다. 그건 바로 이미 우리가 하는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제가 왜 비례대표제이겠는가?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을 가져가야 한다는 비례성을 완벽히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중대선거구제하에서 비례성을 보장하려면 선거구 단위가 커지는 것이 중요한데, 정당보다는 후보 개인이 더 중요시되다 보니 모든 후보 파악을 위해서라도 선거구 내 당선자 수를 무한히 늘리기 어렵다. 결국 비례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보다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다고 비례성 하나만 보고 비례대표제로만 뽑기에는 여러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군소정당 난립으로 인한 정국 불안정이나 국회의원과 지역 주민 간 친밀성 저하(애초에 비례대표제는 다른 의미로는 대선거구제다.)는 유권자가 체감할 수 있는 문제고, 정당 민주주의와 타협적 정치문화가 공고해야 제도가 원활히 돌아간다는 제도 특유의 한계도 있다. 이때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결합해서 뽑는다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

비례대표와 지역구를 섞어 뽑는 나라들이 대부분 소선거구제를 채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뉴질랜드, 멕시코 등이 소선거구와 비례대표 조합으로 의원을 선출한다. 일본과 한국, 대만은 중선거구제를 했다가 소선거구제로 돌아온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소선거구와 비례제가 상호 보완적 관계라는 사실을 많은 나라에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결국, 선거제 개혁은 지역구 바꾸기보다는 비례대표제 강화가 올바른 방향이다. 소선거구제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소선거구제 특유의 문제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정당들이 제도를 불투명한 방향으로 활용했고, 비례대표 의석이 전체 의석의 15%밖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적어서 비례대표제가 온전한 선거제도로서 작동하기 어려웠을 뿐이었다.

선진국 모임으로 알려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소속 국가의 입법부 선거제도 현황. 유럽은 전면 비례대표제로 의회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영미권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있다. 혼합제에서는 모두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조합으로 선거를 치른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한 국가는 아일랜드 단 한 곳인데, 이마저도 비례대표제의 변형으로 구분하는 학자가 많다. (양원제 국가는 하원을 기준으로 분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