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0개부터 5개까지
영화는 10개 안팎의 점수로 평가된다. 다수의 의견을 평균 낸 별점은 곧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0점에 가까운 영화는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수의 사람이 5점을 준 영화라면, 그래. 괜히 신뢰가 간다. 다른 사람이 좋은 영화라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간 우리는 대개 실망한 채로 극장에서 나온다.
별점은 취향을 ‘절대’ 반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잘 만든 영화라 할지라도 보기에 불쾌했거나, 맞지 않는 영화라고 느꼈다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다. 반면 영화적으로 만듦새가 좀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보기에 즐겁고, 재밌었다면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로맨스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서 힐러의 [러브 스토리(Love Story)]를 높게 평가할 리 없고, 히어로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벤져스(Avengers)] 시리즈에 별점 다섯 개를 주기는 힘들 것이다.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영화는 높은 평점을 얻게 될 것이며, 높은 평점을 얻은 영화는 다시 대중적인 영화로 인식된다. 이런 영화들은 결국 사람들을 불러 모으게 된다.
평점의 극단편향
관람객들은 극단적인 정보에 더 가중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이를 극단편향(extremity bias)이라고 부른다. ‘극단적인 정보가 일반적인 기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정보가 더욱 새롭다고 느끼고, 결국 사람들은 이런 극단적인 정보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둔다는 것(Fiske, Susan T, Attention and Weight in Person Perception, 1980.)’이다.
평점을 남기는 이들은 자신의 평점이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정보로 인식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영화는 별점을 통해 자주 과소평가되고, 자주 과대평가된다.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별점 0개, 또 5개. 영화는 오직 이 두 가지 점수로만 평가된다. 영화적 완성도와 무관하게 사회적인 이슈에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느냐가 그 영화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적 만듦새는 애초에 무관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변호인]이 그랬다. 이 영화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 중 일부를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극우 세력의 악평에 시달렸으며, 0점과 5점이라는 극단적인 평가 위에 서 있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영화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다. 허지웅 평론가는 [변호인]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변호인]의 단점은 세상에 일베가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의 단점은 세상에 여전히 비뚤어진 정의감만으로 모든 걸 재단하며 민폐를 끼치는 열성 노무현 팬덤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공모자이자 공생관계인 저들은 [변호인]과 관련해서 역시 아무런 의미 없는 소음만을 양산하며 논쟁의 가치가 없는 논쟁의 장을 세워 진영의 외벽을 쌓는데 골몰할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건 피곤한 노릇이다.” 평점란은 극우세력과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의 무가치한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걸캅스]는 어떤가. 이 영화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악의적인 0점 테러와 리뷰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불법 촬영물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이들을 추적하는 여성 경찰이라는 소재가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반대로 페미니스트들은 이에 대응해 이 영화에 별 다섯개를 주게 되었다.
[걸캅스]는 영화로서의 평가는 거의 받지 못했다. 만약 페미니즘의 이 사회의 주류 의견이라면 이 영화는 평점 2.5 이상의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만약에 안티 페미니즘이 이 사회의 주류 의견이라면, 이 영화는 그 이하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영화의 연출과 기획력, 배우들의 연기력 따위는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평가하기 위해서만 동원될 뿐이었다.
별점은 영화를 평가하지 못한다
우리가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바리에이션은 고작 열 개 정도다. 별점은 영화의 그 어떤 것도 거의 드러내지 못한다. 사회적 이슈에서 벗어난 영화라도 그렇다. 위에서 언급했듯, 별점은 취향을 절대 반영하기 때문이다. 평점이 높은 영화, 호평을 많이 받은 영화라면 이는 대중적인 취향을 담은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다수가 옳다는 미적지근한 민주주의의 법칙을 성실히 수용한 결과일 뿐.
정성일 평론가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하하하>와 <시>가 별점이 똑같으면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취향을 가진 사람이야, 라고 의아해집니다. 그건 궁금한 것과 다른 것입니다. <아바타>에 별 넷을 주면 <시민 케인>은 몇 개를 주어야 하는 거지?” (영화비평가는 무엇에 쓰이는가, 씨네21, 2010.08.17)
우리는 별점을 통해 그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대중적이라는 수준의 정보밖에 얻을 수 없다. 별점은 영화를 평가하지 못한다. 영화를 이야기해주지 못한다. 별점으로부터 이로움을 얻는 건 바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애쓰는 영화사 마케팅 담당자 뿐일 것이다. 별점은 폐기되어야 한다. 영화는 더 길고, 더 깊은 문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