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니 '연장'이니 그거 사실 내용도 없고 요점도 아니잖아요.

정권 교체냐? 정권 연장이냐?


라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정권 교체를 택하겠다!


그래서 이걸로 끝?

아니다. 이 질문은 대한민국을 대표할 사람을 뽑는 처치 곤란한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함정이 잔뜩 숨어 있다. 질문이 놓은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당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여럿 필요하고, 나는 그 답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려고 한다.


정권 교체를 누가 하는데?

‘정권 교체’라는 이 선택지에는 주어가 없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소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사람들은 알아서 주어 자리에 “윤석열”을 집어넣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크나큰 착각을 불러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예비후보자명부를 검색하면, 20명이 넘는 이름이 나온다. 다르게 말하면, 거기서 이재명을 제외한 19명이 야당 후보로서 출마를 했다. 그런데도 정권 교체 대상 후보로 꼽히는 사람은 윤석열 하나뿐이다.


오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예비후보자명부. 장수생만 네 명에(심상정, 안철수, 허경영, 손학규), 의사가 두 명(최대집, 김기천)이고, 무소속 후보만 11명에 달했다.(혹여나 해서 말하지만, 무소속은 하나의 정당이 아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선거는 단 한 명의 승자를 한판 승부로 뽑는 자리이다. 스포츠 리그처럼 같은 팀끼리 여러 번 붙는 기회가 있거나 패자부활전이 있어서 한 판 져도 승자를 노릴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지구촌 모든 가정에 한국의 자랑스러운 기상을 널리 알린 <오징어 게임>보다도 더 단순하다.

또 이번 싸움은 양극화된 공성전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한 번 더!’를 외치며 친문과 진보 진영을 (나는 민주당이 진보 진영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으니…) 모아 성을 지키면, 국민의힘이 보수 진영과 부동층을 ‘영끌’해 성을 빼앗으려는 흐름 말이다. 마땅한 성주가 없었던 지난 싸움보다는 세력이 있는 자들이 훨씬 격렬하고 치열하게 붙을 것이며, 그 흐름에 맞춰 여론도 ‘민주’와 ‘국힘’으로 단순하게 양분되어 있다.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시민이나 다들 여당과 제1야당 후보에게 자연스레 이목을 집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충분히 납득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권 교체의 주체’가 윤석열만이 정답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정권 교체에 대해 선택지가 하나가 아니라 열 개, 그 이상이 놓여 있다.

어쩌면 이 못마땅함을 풀어줄 답이 그 자랑스러운 <오징어 게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징어 게임>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여러 명이 모여 여러 번의 게임을 거친다는 핵심 전개 구성은 알고 있다. 현실 투표도 그렇게 바꿔 보면 어떨까? 실제로도 투표 제도는 단순 다수제 이상 여러 가지가 있다.

  • 결선투표제: 모든 후보가 나와 겨루는 1차 투표를 진행한 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득표 1, 2위 후보가 맞붙는다.
  • 선호투표제: 출마한 후보 전원/일부에 순위를 매겨 투표한다.

특히 결선투표제는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한 뒤 폴란드, 포르투갈,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80여 곳이 넘는 나라에서 대통령을 선출할 때 쓰는 선거 제도다. 이번 대선에 어렵다면, 다음 대선에라도 꼭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선거가 단순 일대일 공성전 이상의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며, 우리는 더 자유로우면서도 꼼꼼하게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되든 어차피 정권은 바뀌는데?

정권이 바뀐다면 그 방향은 두 가지뿐일 것이다. 여당에서 여당으로, 혹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흔히 전자를 일컬어 “정권 연장”, “재집권”이라고 하고, 후자는 “정권 교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권 교체는 총 세 번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이 표현, 수사법, 개념 자체가 정말 적절한 것인지 그게 의문이다.

일단 ‘정권 교체’라는 것은 좀 말장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를 ‘교체’한다고 하면,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팀’의 선수를 경기장 안팎으로 바꿀 때나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뭔가?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고 하는 건, 실은 여당과 야당이 같은 팀이었다는 소리인가?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이 단어의 용법을 공부하다가 얼떨결에 한국 정치의 진실을 깨우쳐 버릴지.)

여당에서 여당으로의 ‘재창출’ 혹 ‘재집권’이라는 개념도,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은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교체’였던 사례가 적지 않다. 퇴임 전 대통령은 여당에서 탈당해서 무소속이 되는 일이 기본이었으며, 후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을 감방을 보낼 정도로 적폐 취급하며 단절을 강조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여당이 재집권했을 때를 살펴보면, 실질적인 의미에서 ‘여당에서 여당으로’ 정권이 바뀐 적이 있었던가 싶어진다.

  • 노태우(←전두환): 광주청문회, 전두환 동생과 측근 구속 수사, 백담사 유배 생활
  • 김영삼(←노태우): 하나회 청산, 노태우 사형 선고, 여당 내 민정당계 축출
  • 노무현(←김대중): 대북 송금 특검, 열린우리당 창당과 탄핵 정국
  • 박근혜(←이명박): 비박계 공천 학살(그리고 김무성 옥새런)

요컨대 ‘여당에서 여당으로’의 이양은 사실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여당 내 전임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 간 관계가 안 좋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국 정치는 인물/계파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이 문제다. 계파는 청와대로 보낼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 정치인들이 모이며 형성되고, 계파 좌장이 대통령이 되면 그 계파는 당권을 휘어잡는다. 오늘날 친문이 그렇고, 친박/친이/친노가 그랬다. 이러다 보니 당내에서는 권력을 놓지 않거나 뺏기 위해 ‘친대통령’ 세력과 ‘반대통령’ 세력이 수시로 갈등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천 파동’, ‘신당 창당’ 등은 이 갈등의 부산물이며, 결과적으로 ‘정권 재창출’을 말뿐인 것으로 전락시킨다.

법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한 번 5년을 하고 나면 그걸로 그만이다. 헌법에 “5년 단임” 문구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건 독재 통치를 막고 민주화를 이끄는 중요한 조항이었지만, 탄핵이라는 수단까지 동원 가능할 정도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발달한 요즘은 이 조항이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제한하고 정권 간 단절성을 부추긴다. 이 제도 하에서는 어떤 대통령이라도 권력 누수와 지지도 하락을 피할 수 없다. 집권 가능성을 높이려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무조건 현 정권과의 단절을 추구하는 편이 쉬운 길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권력을 이어받은 대통령이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려는 건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재명이 정권 잡아도 정권 교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대체로 진실이다. 저 주장을 꺼내든 뒤에도 부동산세를 깎아주려 안달인 민주당의 행보 하나만 보아도 말이다.


왜 정권을 잡고 싶은데?

묻고 싶다. 야당에게는 “왜 정권을 교체해야 하느냐”, 여당에게는 “왜 정권이 연장돼야 하느냐”고. 정말 기초적인 질문이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묻고 있지만, 그 대답은 어쩐지 쉽게 들을 수가 없다. 우리 유권자는 각종 여론조사에 응하며 수많은 질문에 답을 요구받는데, 정작 그 질문들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이 질문들은 너무 간과되고 있지 않은가? ‘정권 교체’와 ‘재집권’이라는 두 선택지에서는 오로지 전 정권에 대한 심판과 옹호의 의지만 읽을 수 있을 뿐, 막상 그렇게 뽑혀 나온 다음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겠다는 건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정권 교체’와 ‘정권 연장’의 이분법과 양자 택일 게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정권 교체나 정권 재창출에 얽매인 나머지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다. 좌파의 선택은 정권 교체라면서 보수 정당 후보자를 지지하라는 소리, 액세서리 되기가 싫어서 안 가겠다던 그 정당의 후보와 악수하는 모습 같은 어이없는 장면이 숱하게 연출되곤 한다. 후보들 자신들도 그렇다. 문재인 정권이 “부패”했느니 “불공정”하다느니 “무능”하다느니 욕할 뿐, 정권 교체 이후 국정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에 대한 전략은 찾을 수 없다. 그저 현 정권에 반대하느라 “주 52시간 근무제 폐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폐지”, “최저 임금제 폐지” 따위의 민심에 반하는 소리만 한다. 물론 그 반대편에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쪽도 명확한 국정 운영 계획을 내놓지는 않고 있고.

나는 정권 교체를 원한다고는 했지만, 정권 교체 그 자체를 위해 투표하고 싶지는 않다. 정권 교체는 수단이고 곁다리일 뿐이지 목적이 아니다. 내가 한국 정치와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불공정한 우리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대통령과 거대 양당에 집중된 정치권력을 나누고, 재벌 대기업만 잘사는 경제 구조를 바꾸고, 탄소 없이 못 사는 사회 구조를 바꾸고,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민에게 민주주의와 다양성, 평화, 공생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힘자랑과 이기주의에 빠진 국제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면 한다.

나는 이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표를 주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정권이 그렇지 못했다고 전제하면, 내 표는 그런 정권을 교체할 사람을 위한 표라고 할 수 있을 테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새해 첫날이다. 새해 첫날이지만, 마냥 신나지는 않다.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리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날로부터 2년을 갓 넘겼고, 희망찬 얼굴로 촛불을 밝혀 짙은 어둠을 물리친 지가 5년이 되었음에도 사회는 어수선함과 어지러움으로 가득하며, 정치판은 사회보다 온갖 험한 말과 의혹들로 더욱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이런 상황에서 얼굴 한번 실제로 본 적도 없고,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굳이 한 표 던지라 하니 답답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누구를 골라야 하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쨌든 누가 5년간은 이 나라를 이끈다고 하니까. 그러니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그 속에서 희망을 골라야 한다. 나는 이번에 뽑힐 대통령이 한국 사회에 꼭 희망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그를 위해 꼭 좋은 후보에게 투표를 할 생각이다.

새해에는 모든 이에게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