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습니다.
하나. 뇌절이 왔기 때문입니다
1996년 박희태라는 정치인이 국회의사당에서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퍼진 내로남불은 2020년대 전만 하더라도 여의도에서나 쓰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내로남불은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긴 했으나 아직 표준어는 아닙니다. 이런 말을 새로 생긴 말, 신어라고 하는데, 얼마나 오래 쓰이냐에 따라 표준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오나전’, ‘캐안습’ 같이 지금도 쓰면 그 사람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를 의심받을 정도로 쓰지 않는 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근데 잠깐? 오나전, 캐안습이 무슨 말이냐고요? 아 이제는 이 단어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시군요! 문자메시지가 본격적으로 소통 매체로 활용되고, 싸이월드 열풍이 불던 2000년대 초반에 많이 쓰였습니다. 한때는 정말 많이 썼는데 어느새인가 안 쓰는 말이 되어 있더군요.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질려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유행했던 것은 새로운 유행이 찾아오면 낡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로남불은 유행어치고 생명이 엄청 길고 정말 여러 군데에서 쓰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따금 쓰긴 했는데, 요즘은 진부하고 물려서 안 쓰고 있습니다.
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을뿐더러 단어가 상스럽습니다
흔히 사자성어처럼 부르는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문구를 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 문장이 무슨 뜻을 지녔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 뜻이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저 문장의 주어는 불륜을 한 본인이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불륜이라고 욕을 한다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불륜은 윤리적으로 지탄받아야 마땅할 뿐만 아니라 이혼 사유로 충분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그걸 간통죄라는 이름으로 처벌도 했었죠.) 본능에 충실하신 분들이야 얼마든지 벌일 수 있지만, 사회화/윤리화가 잘 된 우리는 저런 일을 잘 벌이지 않습니다. 문장 속 상황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저런 단어를 굳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정치인들의 발언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고, 그렇게 전해진 말은 어린아이들도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순수한 사랑을 꿈꿀 아이들에게 (그리고 저에게도) 저런 말을 계속 들려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내로남불과 의미가 비슷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에게 뭐라 한다.’와 비교하면 제가 괜히 시비를 건 이유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누가 봐도 직설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특히 똥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그 의미가 더욱 쉽게 와닿습니다. 똥이라는 단어가 살짝 거시기하긴 하지만, 적어도 저건 하루에 한 번씩 볼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잖아요.
셋. 단어가 변질되고 악용되어 그 가치를 잃었습니다
이 문구는 1980년대부터 사용됐는데 그때만 해도 내로남불은 소위 먹물 좀 많이 드신 분들이 쓰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여의도에서 쓰기 시작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그래요. 그때는 풍자로서 이따금 활용되었다 칩시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이 말을 어떻게 쓰고 있나요? 이제는 상대방을 낙인찍고 공격하는 단어로서 악용되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무슨 말만 했다 하면 반박이랍시고 내로남불만 되풀이하는 것이 여의도 정치판의 현실입니다. 이건 무슨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그리고 내로남불을 국회의사당에서 처음 언급한 사람은 나중에 성추행을 저질러 국회의장을 스스로 사퇴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딸 같아서 터치했다.”라는 그야말로 내로남불스러운 해명을 내놨죠. 남의 부도덕함을 지적하고자 말을 퍼뜨린 사람이 성적으로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다는 점은 모순으로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여의도에서만 맴돌던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쓰인 횟수가 샛강을 타고 한강을 탄 뒤 반도를 둘러쓸 정도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그저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제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풍자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재미도 없습니다. 어쩌면 민생, 민주주의와 같은 우리 일상에 중요한 단어보다 더 자주 보이는 것 같은 건 물론이고, 합의, 대화, 타협 같은 단어는 마치 없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아 진짜 머리가 어질합니다.
유행어는 그 시대의 현상과 문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로남불의 유행을 살펴보는 일은 퍽 씁쓸합니다. 물론 권력자들이 좀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맞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내로남불이 불려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가 부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해진 선이나 올곧은 이념 없이 그저 권력 쟁탈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 남을 공격함으로써 쾌감을 얻는 극단적 정당/정치인 지지자들, 클릭 수나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인들의 발언을 무책임하게 퍼다나르는 언론, 경제적 양극화에 이어 여론마저 갈라지는 정치/사회적 양극화, 상대방을 향한 불신이 훤히 보입니다.
내로남불은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공격하는 데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격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서는 더욱 유용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걸 알기에 다른 말들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