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할 말은 아니야 산이야.

“I am a feminist, 난 여자 남자가 동등하다 믿어”


산이(San E)가 그의 SNS 채널을 통해 신곡 ‘페미니스트(Feminist)’를 발표했다. 가사는 가관이었다. 몇 구절만 읊어도 주옥 같다. “I am feminist 난 여자 남자가 동등하다 믿어 (…) 책도 한 권 읽었지 (…) 여자와 남자가 현시점 동등치 않단 건 좀 이해 안돼 (…) 야 그렇게 권릴 원하면 왜 군댄 안 가냐 (…) 나도 할 말 많아 남자도 유교사상 가부장제 엄연한 피해자야.” fake that blah blah.

산이의 곡은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며 ‘환호’를 얻었다. 나무위키는 그에게 ‘위인’의 칭호를 선사했다. 그 가사가 진실되다고 믿었을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그를 ‘여성들에게 압제당하고 있는 남성들의 편에 선 용기 있는 투사’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 반대편에서는 비웃음이 넘쳐 났다.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가사였기 때문이다. 이에 Jerry K는 산이를 향한 디스곡을 내놓았다. “책 한 권 읽어본 건 똑같은 거 같던데 아웃풋이 이렇게 달러 (…) 맞는 말 딱 한 개 가부장제의 피해자 것도 참 딱한 게 그걸 만든 것도 남잔데 (…) Fake fact는 이퀄리즘 어쩌구지”

Jerry K와 함께 Daze Alive에 소속된 슬릭(Sleeq) 역시 디스곡을 발표했다. “참 뻔뻔해 저게 딱 한남 특유의 근자감 (…) 꼴랑 책 한 권 읽고 페미니스트 (…) 있잖아 요새 1호선 할배들도 안 하는 소리를 너한테 다 듣는다야 (…) 니가 바라는 거 여자도 군대 가기 데이트 할 때 더치페이 하기 여자만 앉을 수 있는 지하철 임산부석 없애기 (…) 내가 바라는 것 죽이고 간강하고 폭행하면서 피해자 탓하지 않기”

페미니스트로서 두 MC 모두, 그 곡에 대해 할 수 있는 비판을 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논란이 거세지자 산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명문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그 해명문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혐오하는 곡이 아닙니다. 곡에 등장하는 화자는 제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류의 메타적 소설과 영화를 좋아해 나름 곡에 이해를 위한 장치를 심어놨다고 생각했는데 설정이 미약했나 봅니다.”

그러니까, 이 곡 자체가 ‘제 3의 화자’를 가정하고 만든 것이며, 그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면서 남녀차별이 실존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고, 되려 적극적으로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의 목소리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가사 한 줄 한 줄을 해명, 아니 해석했다.

아마 이 곡이 ‘제 3의 화자’를 내세운 것이며, ‘그런 사람을 비꼬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는 Jerry K를 향해 내놓았던 맞디스곡 ‘6.9’의 가사로도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이 한 줄이야말로 이 디스전 해프닝의 요약이 아닌가 싶다. 정말 맞아도 되는 사람이 당연히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새벽부터 누굴 때리지 않으면 어떨는지.

“제리케이 참 고맙다 너 때문에 설명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 곡 속에 남잔 feminist라고 하지만 사실 rap 가사 내용 같이 속 마음은 여자 존중치 않는 파렴치 책 한권 읽었단 내 가사 뜻은 그만큼 소견이 좁은 화자의… 으 그만하자. (…) 이해력 딸려 곡 전체를 못보고 가사나 봤겠지 (…) 화자로 등장한 남자의 겉과 속 다른 위선과 모순 또 지금껏 억눌린 여성에 관한 내용.” 그는 꾸준히 일관되게, 가사 속의 ‘화자’와 본인을 구분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동안의 산이의 행적과, ‘미소지니스트를 비꼬는 MC’가 호응하지 않고, 오히려 대립한다는 것이다.

‘못 먹는 감’이라는 곡으로 여성을 과일에 비유하는 산이, ‘전 여자친구에게’라는 곡으로 헤어진 애인에게 ‘복수’하는 산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며 “충혈된 네 눈 홍등가처럼 빨개 (…) 병신년아 빨리 끝나 제발”이라며 여성혐오적 가사를 쓰는 산이. 그리고 이 모습에 대해 한 번도 진솔한 사과를 한 적 없는 산이. 이 수많은 ‘산이’들은 오히려 ‘Feminist’란 곡 속의 화자와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 화자를 가공으로 내세운다는 방식이 씨알이 먹히지 않는 이유다.

여혐이 드러났던 자기 곡을 꼼꼼히 짚고 넘어가는 제리케이와 비교하여 생각해 보자. “6년도 된 내 노래 수준에 멈춘 수준, get away or get updated”

그러니 곡을 듣는 여성은 그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여성혐오적 성향을 가진 수많은 남성 커뮤니티들은 그에게 환호를 건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모순적인가. 이것은 MC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의 가사는 좀 더 촘촘해야 했고, 랩은 더 치밀해야 했다. 그가 누군가를 비꼬기 전에, 스스로 진솔한 반성 먼저 해야 하는 이유다. MC로서의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성차별주의자로서의 자신에 대해서도.

물론 그의 공부는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마지막 해명문에서조차 공연한 단서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메갈 워마드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지만 그들은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성평등이 아닌 일베와 같은 성혐오 집단입니다. (…) 그게 모든 남성을 공격해야하는 타당한 이유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메갈리아를 향한 강한 부정적 인식이 여기서뿐 아니라 Jerry K에 대한 맞디스곡 ‘6.9cm’에서도 이미 드러났던 것은 물론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은 쉽다. 그 후에는 치열한 고민과 공부가 필요하다.

그가 정말 페미니즘을 이해한다면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향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껏해야 ‘그들의 방법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도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산이와 산이 자신이 비판하고자 했던 누군가는 점점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가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거울 속 자기 얼굴이 못생겨서 거울을 부정하고 깨부수는 사람은 없지만, 지금 그는 자기가 일부러 못생긴 표정을 지은 거라고 구구절절 변명하며 거울을 비판하고 있으니 말이다.


덧. 이 글은 11월 20일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그 후 편집을 위해 블로그 구석에 남겨 두었다가 그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고 그 저열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워마드의 전략의 맥락과 배경을 이해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한계를 비판하려는 것’조차 아니었다. “왜 너네는 외모 비하하지 말라고 하면서 외모 비하해?”라는 문장은 그야말로 “왜 너네는 군대 안 가?”와 다를 게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