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공간 브랜드 ② 어반플레이]

요즘 뜨는 공간에는 ‘콘텐츠’가 있다?!


공간을 점유하는 데는 돈이 든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든다. 부동산의 값은 치솟고, 덩달아 전세와 월세도 놀랍도록 비싸졌다. 우리가 사는 데에는 반드시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할 공간일 수도, 몸을 뉘일 공간일 수도, 요리를 하고 먹을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공간을 '구입하거나 빌릴' 필요는 없다.

요새 누가 동네에서 논다고 그래

내게 동네는 그저 익숙한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거닐다가 떠나고, 다시 밤이 오면 되돌아오는 곳. 내가 사는 동네에 별 다른 친밀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동네의 정체성을 느낄 일도 별로 없었다. 집이건, 학교가 있던 곳이건, 자취를 하던 곳이건, 직장이 있던 곳이건 간에 말이다.

© 어반플레이 ‘2017 연희 걷다’

그래서인지 동네를 잘 몰랐다. 괜찮다는 밥집을 찾으러 멀고 먼 곳에 간 적은 있지만, 정작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보이는 간판은 죄다 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맘스터치와 같은 프랜차이즈뿐. 네이버 검색기록에도 내 동네 이름은 없었다. 거기서 거기겠지 뭐.

실제로 동네마다 있다는 차이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여기 있는 가게가 저기에도 있고, 여기서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저기에서도 마실 수 있는데 뭐. 지역이 가진 특별함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는 곳들은 ‘힙한 곳’이라는 이름이 붙어 소셜 미디어에 오르내리거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되어 간판을 내리게 된다.

만약 내 지인 중 누군가가 ‘동네’를 매개로 하는 사업을 벌이겠다고 하면 뜯어말렸을지도 모른다. 야, 요새 동네 밥집, 동네 카페 누가 간다고 그래. 정신 차려. 사람들 다 동네에 뭐가 있는지도 제대로 몰라. 그렇게 투덜투덜 댔을 게 분명하다. 지역이라는 기반은 흔들린 지 이미 오래고, 누구도 지역에 소속감을 느끼지 않으니까.

동네와 크리에이터를 연결하는 이들

‘실패 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 단정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 건 ‘어반플레이’의 성공을 본 이후였다. 어반플레이는 ‘콘텐츠 중심의 동네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동네에서 다양한 공간들을 만들어 오고 있었다. 이전에 소개한 로컬스티치와 함께 했던 ‘연남장’과 ‘연남방앗간’, ‘케비넷 클럽’, ‘기록상점’ 등이 대표적이다.

연남장은 로컬 크리에이터를 위한 라운지라는 콘셉트로, 지하의 전시장과 1층의 라운지를 통해 지역의 창작자들의 작품을 한 데 모아 소개하는 복합 문화공간일 뿐 아니라 이곳에서 다양한 창작 활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낡은 외관 속 멋진 인테리어와 이벤트, 그리고 커피 맛 덕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동네 카페이자 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 어반플레이 ‘연남장’

이곳의 커피는 어반플레이의 또 다른 작품 중 하나인 ‘연남방앗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연남방앗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쳐 메뉴인 참깨 라떼의 맛은 독보적이다. 이들은 그 이름에 맞게 참기름을 베이스로 해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할 맛을 만들어냈다.

“처음으로 기획해 운영한 공간이 연남방앗간인데, 동네의 방앗간이라는 공간이 지역 주민들이 고춧가루를 빻거나 떡을 만들고, 참기름을 내리기 위해 모여 대화하는 지역 커뮤니티이며, 공간 자체가 미디어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컬 브랜드 편집숍이자 쇼룸의 성격을 가져가고 카페를 통해 다양한 식음료를 맛볼 수 있도록 기획을 했어요. 자연스레 식음료 관료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이 중요해졌죠.”

도시에도 OS가 필요하다, 공간에도 콘텐츠가 필요하다

지난 1월, 어반플레이 임동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들려준 얘기였다. 여기서 바로 어반플레이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이들에게 공간은 멋지게 꾸미고 만들어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다. 공간은 그저 수단일 뿐이다. 지역과 주민을 연결하고, 크리에이터들이 소통하며 창작해낸 결과를 나누는 미디어 말이다.

© 어반플레이 ‘연남방앗간’

연남방앗간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들은 참기름이 가진 스토리와 콘텐츠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했다. 음료 개발 전문가, 참기름 소믈리에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과 논의한 결과, 어반플레이만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다.

“도시에도 OS가 필요하다”는 그들의 슬로건이 이해가는 지점 역시 여기다. 이들은 그 OS가 바로 ‘콘텐츠’라고 이야기한다. 이전에는 공간이 어느 곳에 있느냐, 어떤 걸 얼마나 팔 수 있느냐가 화두였다면 이제는 어떤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느냐, 어떤 콘텐츠를 볼 수 있느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는도시 02: 도시생활혁명], [아는동네 매거진], [퇴근하고 강릉 갈까요?] 등 동네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더불어 동네에서 ‘연희 걷다’, ‘동네 특가’, ‘연남 위크’ 등 동네와 더욱 밀접하게 가까워질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하는 일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공간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이 동네에 어떤 콘텐츠를 담아낼지, 그것이 어반플레이의 주된 관심사다.

코로나가 덮치고 간 자리에 남을 이들

코로나19는 구석구석, 골목골목 상권을 덮쳤다. 대기업이 구석구석 자리한 번화가부터 아주 작은 동네 식당까지 손님이 뚝 끊어졌다. 기존 상권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번화가를 찾지 않으려 한다. 어반플레이의 귀에 들린 총성은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멈추라는 뜻의 공포탄일까.

이들은 우선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 19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럴수록 사람이 다시 모이는 공간이 본질 (에스콰이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맞다. 분명 사람끼리 만났을 때만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반플레이는 그 순간을 빛내줄 수 있는 이들이다.

 ©어반플레이 ‘아는 동네 아는 인천’

우리가 지금까지 갔던, 또 앞으로 우리가 갈 공간들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의문스럽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중심에 콘텐츠, 그리고 어반플레이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많은 번화가 대신 우리 동네를 얘기하는 공간이 또 그들 곁에 있을 것이다.

임동길 디렉터의 말 역시 곱씹어볼 만하다. “코로나 이후 상권은 더욱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는 명동, 강남과 같은 기존의 대형 상권보다는 다양한 골목상권이 더 파편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유무형의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동네들이 잠재성을 가지게 되겠죠. 자연적 요소를 품고 있는 동네, 지역만의 건축적 특징을 가진 동네가요.”